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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종종 친구들 모임이 있을 땐 선배의 차를 얻어타고 집에 올 때가 많았다. 집에서 꽤 먼 곳에서나 늦은 저녁 버스가 다 끊긴 시각에도 걱정 없이 오면서 신세를 많이 졌다.
어제도 오랜만에 신세를 지면서 많은 얘기를 했다. 고등학교 시절 얘기, 모임 얘기, 회사 얘기, 연애 얘기, 인생 얘기까지. 차 없이 쭉 뻗은 올림픽대로, 빙빙 도는 듯 하지만 출구가 있는 내부순환로, 그리고 경부고속도로를 타면서 이야기의 길도 그처럼 막힘없이 술술 풀려나갔던 듯 하다.
최근 느꼈던 죽음에 대한 생각과 삶의 권태로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결국 이 상태를 벗어나려면 '재밌는 일' 이 필요하단 결론이 났는데, 과연 재밌는 일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봤는데 아직 생각은 잘 안 난다.
여름 자락에 한 번 크게 불어닥친 폭풍우를 맞고 나서 마음도 몸도 더디지만 조금씩 회복이 되는 중이고... 이제야 다시 또 글을 써볼 용기를 내는데 결국 생각해보면 내 이야기를 나를 이해하고 잘 아는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듯 하다. 그렇게 써지질 않다가 오늘 이렇게 글을 쓰는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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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어제 친구 생일 모임의 주제는 '죽음을 생각하는 생일 파티' 였다. 친구는 검은 자켓+ 투피스 차림으로 등장하고, 일부는 컨셉에 맞게 고딕 풍의 검은 드레스에 올블랙 패션, 잠옷 코스튬을 입고 나타났다. (아마도 잠이 죽음과 제일 가까운 상태일테니) '장례식' 이라 이름붙인 음악 플레이리스트에 가만히 몸을 맡기고 생전 처음 보는 향종이에 불을 붙이면서 나는 한 3년 넘게 내가 놓지 못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쪽이 나에게서 떨어지는 건지, 아니면 내가 놓는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잔향을 진하게 남기고 사라지는 이 종이처럼, 모든 것이 아름답게 마무리가 되기를.
각자가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나누는 시간에 자주 죽음을 생각했으면서도 막상 그 방법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았던 내 상상력의 빈곤함을 탓해보며, 간신히 몇년 전 글은 안 써진채로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했는데 눈이 너무 와서 버스에 갇혔던 날의 기억을 되살려봤다. '활자에 깔려 죽어버릴 것 같다' 는 건 글쟁이다운 기발한 표현이라 칭찬을 받긴 했으나 역시 재밌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이 너무나 흥미로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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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와서. '죽음' 이란 개념은 정신건강에 있어 위험한 지표이면서, 수많은 곳에서 삶의 희망을 억지로라도 주입시키게끔 만드는 요소인듯 하다.
하지만 우리가 어제 했던 기묘한 파티와 이야기들처럼,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삶을 즐기는 사람들의 삶 저편엔 그만큼이나 밀도 높은 죽음에 대한 생각이 있음을 확인하는 일은 흥미로웠다. 사실 흥미로운 만큼이나 큰 위로가 되었다.
이미 요절하기엔 늦은 나이라고 자주 얘기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던 최고로 품위있는 죽음을 유예당한 만큼 언젠가 닥칠 멋진 죽음을 위하여, 조금이라도 더 재밌는 일을 찾아보기로 생각한 어제와 오늘이었다.
그리고 선배와는 둘 중 누구라도 재밌는 일이 생기면 만나서 꼭 이야기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