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재입대 꿈을 꾸듯 유독 수능을 다시 치는 꿈을 자주 꿨었다. 난 분명 대학교를 졸업한지도 꽤 지났는데???? 하면서 절망적인 마음으로 성적표를 받아들거나 시험을 치는 꿈. 때론 수능이 아닌 모의고사나 내신 시험으로 시험의 레퍼토리만 약간 달라지곤 했었다.
어제 꿈은 비슷한 결이지만 약간 달랐는데, 꿈속 교실에서 이번 학기에 전과 비교해 성적이 가장 크게 오른 1등을 발표하겠다고 말했고, 놀랍게도(??)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잠깐 공부를 잘 했던 중학교 시절 빼곤 내신이 바닥을 치던 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성적을 받았던 대학교 시절엔 경험할 수 없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꿈속 시험 성적 통지표엔 과목별 잘 본 사람의 목록이 아마도 점수 순서대로 매겨져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속에서 나는 모두 1등을 하지는 못했지만 5위권엔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뿌듯한 마음으로 엄마아빠에게 자랑을 해야겠다며 생각하는 순간 스르르 잠에서 깨어났다.
왜 하필 전교 1등도 특정 시험의 1등도 아닌, 전 학기 대비 가장 성적이 많이 오른 케이스로 1등을 꿈 속에서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곧 20대를 마무리하고 서른을 목전에 둔 지금 (쓰면서도 안 믿겨서 머리가 띵하지만) 이제야 내 삶의 크고 작은 실천들이 내 내면에게 인정을 받은 기분이었다.
어제는 샤워를 하다 말고 거울을 보며 나에게 말했다. 우울증과 불안장애 진단을 받고 도망치듯 예전 회사를 뛰쳐나왔을 때도 너는 너 자신을 책임지려고 노력했구나. 정말 고생 많았다고. 프리랜서 생활이 뭐 별건가 싶기도 하지만, 마음이 아프면 아픈대로 꾸준히 일을 하고 매일 자리를 박차고 나와 뭔가를 했다. 그게 그렇게 스스로에게 고마웠다.
불안하고 힘든 건 너무 많았지만 과거의 흔들리던 시절을 짧고 길게나마 함께 스쳐간 인연들에게도 감사함이 밀려들었다. 위스키를 가르쳐준 그에게, 밥을 사 주고 일을 주었던 선배에게, 그리고 이제는 멀어졌지만 서점에 가면 늘 만날 수 있는 이름들에게 부족한 내가 당신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어서 고마웠다고.
삶이 갑자기 드라마틱하게 달라지는 일은 잘 없고
약간의 기대는 해도 아마도 비슷한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 문득 그 꿈 이후로 설명할 순 없어도 갑자기 지금의 모든 것이 괜찮아진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