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잊고 있던 꿈, 이제 다시 시작한다
40대가 나에게 준 첫인상은 “나의 세대를 다음 세대로 넘겨주는 시기”였다. 그래서 허무했고, 두려웠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나의 삶은 온전히 나 자신이 중심이었다. 공부와 일에서 허점이 생기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고, 외부에서 보이는 나는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이었지만, 집에서는 “공부 말고는 제대로 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그럴 수 없었다. 이제 가장 중요한 목표는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일과 육아의 공존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가 되었다. 문득,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달려왔나 하는 비관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출산 전날까지 무탈하게 근무했고, 지도 교수님은 여성가족부에서 상을 줘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제왕절개 수술 후, 병실에서 논문을 수정했고, 심지어 근무하던 병원에서 출산했기에, 인계했던 환자의 소식을 궁금해하며 찾아보기도 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던 나였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순간, 나의 세상은 외부와 단절되었다. 내가 출산한 시기는 롯데타워가 준공되던 즈음이었다. 그해 마지막 날, 베란다에서 불꽃놀이를 보며 혼자 엉엉 울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나에게 롯데타워는 간절하게 바랐던 외부와의 연결고리였다.
90일간의 육아휴직이 끝나고 바로 복귀했다. 그런데 병원은 내가 떠나 있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그대로였다. 무서웠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지만,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디론가 이끌리듯 소아정신과 전임의 과정에 지원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서였을까? 그래도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나는 ‘그래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 것’이라는 허황된 자신감을 채울 수 있었다. 이후 아이와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개원을 했고, 내 삶의 70%는 아이에게 맞춰져 가고 있었다.
그렇게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나는 4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아이는 별 탈 없이 잘 자라고 있었고, 병원도 안정적이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문득, 아이가 성장한 후의 내 삶이 궁금해졌다. 그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지만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지금처럼 작은 진료실에 앉아 같은 일을 반복할 생각을 하니 온몸이 가려운 느낌이 들었다. 비상이었다.
나는 분명 이루고 싶은 꿈을 다 이룬 것 같았다. 정신과 전문의, 듬직한 남편, 예쁜 딸아이, 부족함 없는 친구들, 나름 안정적인 경제적인 상황.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나는 무엇을 찾고 있는 걸까?
그 순간 깨달았다. 한 가지, 이루지 못한 꿈. 아니,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한 꿈.
바로 작가였다.
우연한 기회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렇게 갑자기, 나는 글을 쓰고 있다.
아이에게 넘겨주었던 나의 시간, 이제 다시 내 인생으로 바통이 돌아왔다. 다시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이 생겼다. 이 변화가 내 40대를 새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앞으로의 시간이 더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