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의 사과, 들어보셨나요?
얼마 전 친구가 화가 난 얼굴로 씩씩거렸다.
"oo에서 물건을 샀는데, 처음부터 작동을 안 하는 거야. 그래서 고객센터에 문의를 했거든.
그런데 사과를 듣고 나니 더 화가 나는 거 있지!"
그녀는 핸드폰을 내밀며 답답한 듯 말했다. 화면 속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불편을 끼쳐 드려 유감입니다. 하지만 사용자의 부주의일 수도 있습니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 말투. 묘하게 기분이 나쁘다.
사과인 듯 사과하지 않는, 은근 슬쩍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의도.
바로, 슈뢰딩거식 사과이다.
이 개념은 물리학자 슈뢰딩거의 사고 실험에서 유래했다. 상자 속 고양이가 살아 있으면서도 죽어 있는 것처럼, 어떤 사과는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사과하는 듯하지만, 한 문장만 덧붙이면 책임이 사라진다.
사례 1: "유감입니다. 하지만 제 잘못은 아닙니다."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유사한 사례가 많았습니다."
이건 뭐지? 다른 사람이 괜찮으면 나도 괜찮아야 된다는 건가?
아니면, 내가 예민하다는 건가?
어린 아이들이 엄마한테 혼날 때 이런 말을 종종 한다.
"다른 애들도 다 했어요!"
그러면 더 크게 혼났는데 말이다.
사례 2: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기분 나빴다면 죄송합니다."
얼마 전, 유명인의 사과문에서 이런 문장을 본 적이 있다.
"제 말에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요."
이 것 역시 사과하는 척하면서 상대를 예민한 사람으로 만드는 전략이야다.
네가 예민해서 기분 나빠진 거야, 라는 느낌을 준다.
이런 사과가 반복되면 사람들은 결국 신뢰를 잃는다. 사과는 단순해야 한다.
✔ 잘못을 인정한다.
✔ 책임을 진다.
✔ 변명 없이 사과한다.
✔ 재발 방지를 약속한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서로 다짐했다.
사과할 일이 생긴다면, '슈뢰딩거식 사과'는 절대 하지 않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