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돈가스에 진심인 사람

이키가이, 살아가는 이유

by 김소연 트윈클

여행을 가면 항상 동네 사람들의 ‘진짜 맛집’을 찾아다닌다. 관광지 중심이 아니라, 골목길 어딘가에서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곳.

오사카에서도 그런 가게를 찾았다.

작은 골목길에 자리 잡은 허름한 돈가스집.

유리문엔 직접 손으로 만든 메뉴판이 붙어 있었고,

가게 안에서는 기름이 은은하게 퍼지는 따뜻한 냄새가 났다.

자리를 잡고 앉자, 아은이가 메뉴를 훑어보더니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엄마, 메뉴가 돈가스 밖에 없어."

나는 메뉴를 한 번 보고, 주방을 바라봤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께서

반쯤 닳아버린 도마 위에서 돼지고기를 다듬고 있었다.


돈가스에 깃든 진심

보통 가게에서 주문을 하면 금방 나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할아버지는 돼지고기의 두께를 꼼꼼하게 확인하더니, 칼집을 내고 빵가루를 골고루 묻혔다.

온도계를 여러 번 들여다보며 기름 온도를 맞춘 후에야, 마침내 돈가스를 튀기기 시작했다.

기름 속에서 돈가스가 부풀어 오르는 걸 보면서

아은이가 내 손을 툭툭 쳤다.


"엄마, 할아버지 표정 좀 봐."

나도 모르게 시선을 주방으로 돌렸다.
할아버지는 돈가스를 한순간도 눈에서 떼지 않고,

미세한 색 변화를 살피고 있었다.

마치 중요한 시험을 앞둔 학생처럼, 신중한 얼굴이었다.

드디어 완벽하게 튀겨진 돈가스를 꺼내 접시에 올렸다.
마지막으로, 예리한 칼로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단정하게 썰어낸 뒤, 우리 앞에 내어 주었다.

그리고 짧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키가이 데스(生きがいです)."

이키가이, 살아가는 이유

아은이가 젓가락을 들다 말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키가이가 뭐야?"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음… 삶의 의미 같은 거?"
적당한 한국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은이는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으며, 이해가 잘 가지 않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럼 행복이랑 비슷한 거야?"

"꼭 즐겁거나 신나는 건 아니야.

그냥… 그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 같은 거지."

아은이는 씹던 걸 삼키고 다시 물었다.
"할아버지한테는 돈가스가 이키가이야?"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평생 돈가스를 만들어오셨잖아. 그래서 더 맛있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그게 보람되니까 계속하는 거고."

아은이가 한 입 더 먹고 작게 웃으며 말했다.

"음… 진짜 맛있긴 하다."

그에게 돈가스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건 살아가는 이유, 손님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이었다.

우리는 마지막 한 입까지 감사히 먹었다.
그리고 가게를 나서려는 순간, 아은이가 말했다.

"엄마, 다음에 일본 오면 또 여기 오자."

나도 그랬다.
단순히 돈가스가 맛있어서가 아니라,
여기엔 누군가의 이키가이가 가득 담겨 있었으니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