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움직이는 모든 것
나에게 일이란?이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처음에는 내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집안일도 분명 일이잖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진료실에서 종종 묻는 “무슨 일 있으셨어요?”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때 문득, "일"이라는 단어가 정말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어에서 "일"은 직업(work)이나 업무(job)뿐만 아니라,
사건이나 중요한 상황(event or incident)에도 쓰인다.
영어에서는 각기 다른 단어로 표현되지만,
한국어에서는 하나의 단어로 묶여 표현되니, "일"이라는 단어가 참 다정하게 느껴진다.
그 안에 우리가 살아가는 수많은 순간과 노력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다양한 의미를 가진 걸까?
그 이유는 '일'이라는 단어의 중심에
'노력'과 '변화', 그리고 '과정'이라는 공통된 요소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시간을 들여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변화를 만들어 내며,
그 모든 것을 '일'로 여기게 되는 것 아닐까?
집안일처럼 반복적이고 익숙한 것들도 그렇고,
갑작스레 다가오는 사건이나 어려움도 결국엔 그걸 해결하는 우리의 노력으로 인해 '일'이 된다.
또 "일"은 새로운 상황이나 변화에도 쓰인다.
"일이 생겼다"라는 말에서 보듯, 변화는 항상 새로운 '일'로 우리를 찾아온다.
그 변화에 적응하고, 그 안에서 길을 찾는 과정이 우리에게 또 다른 '일'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언어의 효율성도 한몫했을 것이다.
한국어의 이 다정한 특성, 하나의 단어로 많은 의미를 품을 수 있는 언어적 효율성 덕분에,
우리는 삶의 여러 순간들을 '일'이라는 말로 따스하게 묶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일'은 단순히 직업이나 노동을 넘어,
우리 삶 속의 다양한 활동과 변화들을 다 담아내는 단어로 자리 잡게 된 것 같다.
흥미롭게도, 프로이트 역시 인간의 심리적 건강과 성숙을 위해 "일"을 중요한 요소로 보았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에너지를 생산적인 방향으로 발산하고,
자아 실현과 자존감을 키우는 데 있어 일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일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사회에 기여하며, 의미 있는 성취를 경험한다.
또한, 프로이트는 "일"과 "사랑"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랑이 관계 속에서 우리를 충만하게 해준다면, 일은 우리를 성취감과 자아 실현으로 이끈다.
이 균형이 무너질 때, 우리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무슨 일 있으세요?"와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 속에서도 우리는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두 질문 모두 '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참 다르다.
"무슨 일 있으세요?"는 상대방의 감정 상태와 그 변화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 안에는 상황을 파악하는 것 이상의 염려와 공감이 담겨 있다.
반면에, "무슨 일 하세요?"는 그 사람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묻는 말로,
우리가 삶을 통해 어떻게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지를 엿보는 질문이다.
이 두 질문의 차이는 우리가 '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리고 그 '일'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차지하는지를 보여준다. "무슨 일 있으세요?"는 감정적인 사건이나 경험을 묻고, "무슨 일 하세요?"는 사회적 역할이나 직업적 활동을 묻는다. 이 두 질문을 통해 우리는 '일'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다채로운 의미를 품고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나에게 '일'이란, 단순히 내가 직장에서 하는 일이나 집안일을 넘어,
내 삶 속에서 내가 마주하고 풀어가야 할 모든 사건과 과정들을 담고 있는 단어이다.
때로는 힘든 업무가, 때로는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나에게 찾아와 나의 '일'이 되지만,
그 모든 것을 통해 나는 나의 하루를, 그리고 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