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엄마도 꿈이 있어.
세 돌이 지났다고 해서 없던 정신이 한순간에 제자리로 돌아오진 않았다. 그저 오늘이 몇 월 며칠인지 조금 더 빨리 기억할 수 있게 되었고,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아이들 준비물과 집에 떨어진 생필품이 뭔지 파악하는 게 조금 더 빨라졌을 뿐이다.
그래도 기억력이 조금 더 좋아지자, 실수가 많이 줄어든 것은 큰 수확이다. 실수가 줄어드니 내 자신이 기특하게 느껴지고, 무언가 새로운 장소나 새로운 것에 도전해봐도 되겠다는 한 조각의 자신감이 피어오르기도 한다.
그때쯤부터 매주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다. 어느 주말 오전, 우연히 찾은 도서관 어린이실에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야기 선생님께서 엄마와 함께 와서 올망졸망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셨다. 이야기는 힘이 있다. 그 천방지축 어린이들이 침착하게 책장 넘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한 가지에 몰두하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잠깐이라도 뒤에 비켜나서 쉴 수 있는 꿀 같은 시간이었다.
우연히 찾은 그 보물 같은 동화 읽기 시간은 나에게 토요일 오전의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아이에게 그 시간은 엄마가 뒤에 앉아서 자기를 든든하게 바라봐주는 것과 동시에 이야기 선생님께서 읽어주시는 책도 읽고 그림 그리기, 만들기 활동도 하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매주 토요일 도서관에 가자고 난리였다. 이야기 선생님을 만나러 가야 한다고, 먼저 나갈 채비를 하고 엄마를 재촉했다. 그동안 아이들과의 외출은 항상 전쟁이 따로 없을 만큼 정신 사나웠는데, 아이들이 먼저 준비를 마치고 나를 기다리다니. 도서관에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아이들은 도서관에 가는 것이 재미난 이야기와 흥미로운 공작 활동뿐만 아니라, 엄마와 함께 새로운 공간에 가서,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에 즐거움과 안정감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말 아침, 아이들에게 엄마가 아이들이 기쁨을 찾는데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며 늘 흔쾌히 도서관에 가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놀랍게 나의 꿈도 그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 날도 여느 주말 오전과 다름없는 하루였다. 아이들은 차분한 도서관에서도 늘 에너지가 넘쳤다. 로비에서 분주하게 이곳 저곳을 헤집고 다니는 아이들을 진정시키던 내 눈에 들어온 포스터가 있다.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와 나도 아이 다 키워놓고 이런 것 꼭 참여하고 싶다. 너무나 도전해보고 싶지만, 그 꿈이 너무 높게 느껴져서 오히려 포기하는 것이 빨라진 그런 기분이었다. 감히 꿀 수도 없는 꿈. 글을 쓰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앞으로 20주간 수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참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던 꿈 앞에서 내 발걸음도 멀어졌다.
잠깐의 감상에서 빠져나와 나는 다시 육아의 일상에 푹 빠져들었다. 워킹맘의 주말은 정말 한 시간과 같이 빠르게 지나간다. 하루 세끼는 왜 그리 자주 다가오는 것이며, 주중에 하지 못해 쌓아둔 집안일은 자꾸만 눌러대는 초인종처럼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곤 시간이 오후 2시 50분이 되었다. 아까 오전에 보았던 글쓰기 수업은 매주 토요일 오후 3시에 수업이라고 하던데 그 수업을 들으러 가는 사람들은 지금쯤 모두 교실에 앉아서 수업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겠지? 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하다. 난 분명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생각해서 빠르게 잊어버리고 집으로 왔다고 생각했는데, 내 무의식 속에서는 “그 수업에 꼭 참여하고 싶다. 글이 꼭 쓰고 싶다.”라는 깊은 열망이 잔뜩 기지개를 켜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 속마음을 발견한 나는, 그 길로 바로 준비를 하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착해보니, 20회 수업 중 그 날이 이미 3회째 수업하는 날이었고 대기자가 있을 만큼 인기가 많은 과정이었다. 나는 도서관 사서님께 청강이라도 할 수 있는지 여쭈어봤고, 기적적으로 한 자리의 여유가 있어서 교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날의 교실 느낌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약간의 베이지색을 섞은 듯한 편안한 흰색 빛깔의 교실, 적당히 기분 좋은 설렘이 교실을 꽉 메우고 있었다.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교실답게 그 두근거리는 떨림이 내 온몸을 감싸는 느낌이었다.
그 잔잔한 파도 같은 설렘과 떨림은 나를 조금씩 변화시켰다. 글을 쓰기에 앞서 나는 어떤 사람이며,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혹은 내가 안 좋아하는 것은 뭔지, 하나하나 천천히 생각해보는 삶으로 서서히 옮겨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