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없는 사람이 어디 따로 있을까?

마흔부터는 축제처럼 살고 싶어.

by 바이올렛


실없는 사람이 되었다. 사직서를 제출했다가, 다시 거두어들였다.


2022년 10월은 마음속 땅끝마을 여행을 알차게 했던 시간이다. 매일 땅이 꺼질 것처럼 걱정을 했고 가슴이 불안으로 두근두근했으며, 절망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한두달을 보냈다. 그리고 오늘 날짜로 많은 것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오랜만에 복직한 후배가 내 자리에 찾아왔다. 아이 둘 키우며 회사 다니는 것이 하도 힘이 들어서 회사의 애 딸린 선배들은 모두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가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했다고 하며 동그란 눈을 하고 온 것이다. 누구든 툭 건드리면 눈물이 후두둑 떨어질 것 같은데도 꾹 참고 다니는 중이라고 대답을 해주곤 다음주에 함께 밥을 먹자고 운을 뗐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그들의 힘듦을 들어주고 따뜻한 밥으로 마음을 달래주는 것 뿐이다. 자식을 키우며 직장에 다니는 일은 고되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귀를 여는 것이 내 임무라 생각한다.


모두에겐 말할 수 없는 아픔이 있고 특히 개인의 수치감과 연결된 이야기는 조금이라도 꺼내기가 쉽지 않다. 나도 그런 아슬아슬한 부분이 있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 아는 비밀스러운 정체를 하나 가지고 산다. 매뉴얼대로 정해진 일을 해내는 직장에서의 내 모습이 있는가하면, 직장에 있는 사람들에겐 절대로 알리고 싶지 않은(들키고 싶지 않은) 또 다른 면도 잘 키우고 싶다. 왜냐하면 그게 좀 더 진짜 나와 가깝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그 모습 때문에 아주 힘이 들었었다. 엄격한 기준에 나를 맞춰보니 나는 자꾸 마음에 상처가 났다. 그러다 몸도 아파졌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을 보내고 나는 가장 바닥으로 내려 앉았다. 우스운 사람, 실없는 사람이 되어서 한동안은 또 먹잇감을 노리는 군중의 입방아에 오를 수도 있다.


'사직서를 냈다가, 철회했다고? 그게 무슨 애들 장난이야?'


물론 정확히 위와 같이 말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런 무모한 행위에 대해 책임져야 할 부분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 것까지도 감수하며 또 직장생활을 이어간다.




하는 일 마다 잘 되는 것 같고, 깔끔한 일처리에 더욱 깔끔한 감정처리까지. 참 '저렇게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만한 주변인들이 많다. 자꾸만 내가 만들어서 걱정거리를 짊어지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적당히 지내다보면 자꾸 어깨 위가 무거워진다. 전부 내가 얹어놓은 마음의 짐인 것이다.


'되고 싶은 내 모습'을 참 여러 번 그리면서 살아왔다. 그리니까 진짜 되긴 되었다. 하지만 급격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내가 있는 환경에서도 받아들여줄 것인가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주 가볍게 생각했다. 대한민국, 내가 사는 도시, 내가 다니는 직장, 나를 존재하게끔 하는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나는 갑자기 '이방인'이 된 것이다.


'원래 이런 애가 아니었는데...'


몇년간 새로운 일을 해보겠다고 부단히 설치고 다녀보았다. 그로 인해 나는 변했을 수 있지만, 내가 있던 자리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에 탈이 제대로 났었다. 다시 회사와 나 사이를 '동기화' 한다. 단자를 꽂아서 내가 회사의 규정에 맞추는 쪽을 선택했다. 9시에 접속하고 퇴근 시간에 해제한다. 최대한 되고 싶은 자아상, 갖고 싶은 내 모습을 침해당하지 않으며 그 사이에서 기쁨도 행복도 누리고자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가슴에 가득하던 꿈이 대부분 사그라든 상태이다. 직장인으로서는 꿈을 가질 수 없다. 아침엔 눈을 뜨고 싶지 않고, 밤엔 잠들고 싶지 않다. 몸은 천근만근이고, 집안일은 분명히 눈에 보이지만 손으로 움직여서 하기엔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남편도 나와 똑같은 상태이다. 그도 먼 거리를 출퇴근하며 젊음을 짜내고 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현실의 수레바퀴를 힘겹게 굴려가는 중이다.


그와중에 꿈은 무슨 꿈이냐?!

내가 꿈을 품을수록, 현실은 더 팍팍해져간다. 군소리없이 직장에 다녀야 퇴직금 액수도 올라가고, 매월 들어오는 월급에도 차질이 발생하지 않는다. 여러모로 보아도 나만 입을 꾹 다물고 살면 온 세상이 평화로운 구조다. 그렇게 나는 월급생활자가 되었고, 그 생활이 앞으로 몇 년 더 남았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이렇게 쓰는 일이다. 쓰고, 버티고, 쓰고, 또 버틴다. 오늘도 이만하면 충분했어. 그리 나쁘지 않았네. 시간은 어차피 흐를 것이고, 언젠간 퇴직하는 순간이 올 거야. 애쓰지 말자, 적당히 살자. 꿈을 품지 말고, 책을 가까이 하지도 말자. 좋은 책을 읽으면 또 마음에 꿈이 들어올 수 있으니까, 자꾸 철학책 같은거 어려운거 찾아서 읽을 생각말고, 맛있는거 먹고 소소하고 수수하게 일상을 누리면서 살자.


마음에서 꿈이 사라지면 큰일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거죽뿐인 내 몸을 간신히 이끌며 그럭저럭 살아내고 있다. 이것도 삶이다. 배부른 영혼의 허기가 너무 싫지만, 나는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니 가난한 행복을 선택할 수 없다. 이번에 그에 대한 상상을 구체적으로 많이 해봤다. 절망적인 것은 이쪽과 다르지 않다.


삶은 행복인가? 불행인가? 모르겠다. 그런 잡생각을 할 시간도 없고, 기운도 없다. 이번에 잠시 휴식기를 가지면서 온 집안의 물건을 엄청나게 버렸다. 몇년을 묵혀왔던 짐들이 쏟아져나왔다. 차곡차곡 테트리스 게임처럼 쌓아왔던 온갖 종류의 물건들을 보니 유난히 곪아터진 부분들이 드러났다. 그런 모든 면이 나를 구성한다. 내일은 또 회사로 가면 주어진 일에 나의 시간을 오롯이 쏟아야한다. 9시부터 째깍째깍 시간은 흘러간다.


마흔살부터는 축제처럼 살고 싶었다. 꼭 퇴사 후부터 가능한 것은 아니다. 직장인이지만 내가 누릴 수 있는 작지만 소중한 기쁨을 좀더 적극적으로 찾아야지. 또 얼마간은 이 생활에 군말없이 적응해낼 수 있도록 말이다. 이렇게 조직 생활 부적응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는 또 밤을 맞고, 아침을 맞을 것이다. 하지만 삶에 있어서만큼은 조금도 물러섬이 없이, 크고 넓게 보자면 내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절대로 잊지 말자.


'엄마도 꿈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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