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찾은 마음상담실

듣고 싶은 말을 듣고 온 기분

by 바이올렛


"정말 감성적인 분이시네요. 창의력이 높고, 네 가지 유형 중에서 가장 지적 수준이 높은 유형이에요. 꿈과 목표가 강한데에 반해 현실이 불안정하네요. 공동체 생활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사회적인 가면이 모든 것을 압도할만큼 아주 커요. 이렇게 창의성과 기획 능력이 높은 사람이 자아를 표현하지 못하며 살고 있으니 지금 이렇게 힘들만합니다. 작가라는 직업은 가지고 계신 성향과 아주 잘 맞아요."


도형심리검사라는 것을 처음 해봤다. 내가 그린 간단한 도형 몇 가지를 보고는 나의 성향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해주셨다. 거의 10년만에 심리상담실에 다시 발길을 했다. 새로운 상담공간의 새로운 상담사분이었다. 나의 인적사항에 대해서 빈칸을 채워서 써넣고, 동그라미, 세모, 네모, 그리고 알파벳 S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3개 그리고, 나머지 선택받지 못한 도형을 1개씩 그리는 심리검사를 시작했다.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그림을 함께 그리자고 제안을 하기도 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오늘 흰종이를 마주하며 내가 선택한 알파벳 에스를 아주 콩알만하게 네모칸 밖에 소심하게 써넣었을 뿐이다. 네모도 콩알만하게 가운데에 그려넣고, 세모는 삐딱하게 기울여서 그보다는 크게, 마지막으로 동그라미는 모든 것을 둘러쌀만큼 크게 그려서 마무리했다. 내가 그린 소심한 그림을 보고 나의 심리를 기막히게 설명하시는 상담사님이 신기했다.


그 신기한 자리에서 나는 휴지를 어마어마하게 쓰고 나왔다. 상담은 50분으로 제한되어 있고 시간을 내어 어렵게 찾아온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마음이 바빴다. 술술 이야기하지는 못했다. 한 문장을 말하고 목이 콱 막혀서, 또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내야했다. 요즘 세상에 자기 이야기 하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남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 상담실에서는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리고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아무런 평가를 듣지 않아도 된다. 전부 '괜찮다'라고 하시는데 그게 이상하게 힘이 된다.


정말 듣고 싶은 말을 모두 듣고 나왔다. 더이상은 테스트 기간처럼 느껴졌던 휴직이 아니라 정식적인 '퇴사'를 해도 괜찮겠다는 말. 그리고 휴직기간 중 도전한 것 중, 앞으로도 가장 이어서 하고 싶은 일인 '전업작가로 살아가기'는 나의 본성에 꼭 잘 맞는 일이라는 말. 그 두 가지를 들었다. 결국 그 두 가지는 내가 점쟁이에게 찾아가서 내 운명에 그렇게 쓰여있다고 말하길 바라던 것이었다. 그것을 상담사의 입에서 듣고 온 것이다. 나는 타인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을 그토록 기다려왔다.


왜 나는 자신에게 그렇게 말할 수 없었는가? 자신감이 없었다. 퇴사와 함께 가난이 엄습해올까 두려웠고 드라마에서 보던, 삶에 지쳐 팍팍하게 변해가는 여느 아낙이 될까 겁이 났다. 이렇게 근로자의 마음에 적신호가 들어오면 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바로 상담사와 대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환경에서 제 발로 걸어나오려는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손에서 놓고 심리적, 본질적, 철학적 자유를 누릴만한 배포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


그러니 퇴사 이후를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세상이 절단나는 일만 남을 것 같은 그 까만 시간을 감히 상상도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오늘 눈물을 그렇게 쏟고 도형을 그리고 나와서는 신기하게도 그 어둡고 흐리던 미래를 아주 조금은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작은 새싹 하나가 돋아나는 순간이다.




지난주에 팀장님께 퇴사 이야기를 꺼냈다가, 다시 한 번 신중하게 생각해보라는 말을 듣고는 그대로 주저앉듯 나의 선택에 확신이 없는 미궁에 빠져살던 나였다. 그런 내가 팀장님보다 한단계 더 상급자인 상사와 우연히 마주쳐서 대화를 하다가 근황을 밝히게 되었고, 이어서 '퇴사'를 해야겠다는 의사를 말했다. 현재 어떤 곤란하고 난처한 상황에 놓였는지 공감해주셨고 그동안 마음이 참 힘들었겠다는 위로도 받았다. 높은 분이어서 다닥다닥 붙은 책상이 아니라 별도의 공간이 있는 장소였지만 어쨌든 회사라는 공간에서 그렇게 대책없이 눈물을 쏟으며 이야기를 하는건 처음있는 일이었다.


오늘은 상담사와 직장 상사, 이렇게 두 분의 눈을 보고 대화하며 그동안 압박감과 외로움, 무기력감에 짓눌려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던 퇴사후의 삶에 대해서 조금씩 생각을 이어붙여볼 마음을 낼 수 있었다. 우선 책의 원고 하나를 완성하고, 아이들이 겨울방학을 하면 온 집안이 들썩거리게 정리에 한 번 집중해봐야겠다는 생각도 했으며, 노트북을 싹 정리해서 남편에게 넘겨주고, 나는 최신형 노트북을 사서 그것을 앞에두고 더욱 향기로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즐거운 상상도 했다. 이 정도의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원래도 그런 성향이지만 더욱 고립된 삶을 살고싶어졌다. 오늘 오랜만에 수년전에 함께 근무하던 직원들을 만났는데 몇 년간 개인적인 연락을 하지 않았던 그들조차도 그동안의 유튜브 활동, 책 출간 소식까지 자세하게 알고 있는 것을 보며 세상이 얼마나 좁은지 다시금 실감했다. 아무리 멀리 도망가고 싶어도 알고리즘의 세계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보며 앞으로는 소셜네트워크 활동은 더욱 신중을 기해야겠다 싶어졌다.


자랑하고 싶고 뽐내고 싶은 나의 특정한 면모에 꽤나 심취해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인플루언서 비슷한 것이 되어서 주목받고 사랑받고 지지받고 싶다는 욕구가 점점 커졌었다. 나의 잘 깎아진 면만 사진 찍고, 영상으로 찍어 선보이고, 바로 그 옆에 붙은 숨기고 싶은 면은 용케 감추며 몇년을 살아왔다. 하지만 복직과 함께 모든 활동은 자연스럽게 접을 수 밖에 없었고 나는 다시 제로베이스에 섰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 역시 아무도 남을 모른다. 그리고 이젠 누구 한 명을 아는 것에도 신중을 기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어쩌면 또 한 번 내 삶을 선택하고 만들어나가야 하는 경로로 접어든지도 모른다. 쓰고 싶은 책이 결국 내 삶의 방향을 선택할 것이고, 나는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이기에 다시 출간을 목표로 글을 쓴다면 온갖 욕구는 끊어야 할 것이다. 더욱 수도승에 가까운 삶을 살며 얼마 안 되는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삶으로 기꺼이 들어가고 싶다.


점쟁이에게, 상담사에게, 혹은 나를 아는 지인들에게, '인정의 말'을 듣고 싶었었다. '너는 할 수 있다.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 된다. 그쪽으로 가도 무사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내가 나에게는 작은 응원의 말조차 건네기 어려웠다. 자꾸만 왜 그랬냐고, 좀 잘 할 순 없었냐고 다그칠 거리만 생각났다.



압력밥솥으로 한 밥에다가 유부초밥을 만들기 위한 가루와 식초양념을 넣고 잘 섞어서 유부 안에다가 밥을 넣어 딸이 완성한 요리를 가져왔다. 딸은 예쁘게 만든 유부초밥을 접시에 담아 자기 먹을 몫을 자꾸만 나에게 내밀었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엄마에게 주고 싶단다. 내 밥을 먹고 있던 중이라 배가 부르지만 딸이 만들어주는걸 또 먹었다. 배가 불렀고, 마음도 너무나 불렀다.


딸은 가장 좋은 것은 늘 나에게 주려고 한다. 또한 내가 무거운 짐을 들지 못하게 자꾸만 무거운 것을 모두 저에게 달라고 손을 내밀어 잡아챈다. 내가 이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행복을 상상도 하지 못했을텐데... 상담사와 이야기를 하다가 딸과 아들이 내게 건네는 마음 뜨끈해지는 문장들을 털어놓았다.


"아빠랑 엄마가 안 만났더라면, 우리도 지금 세상에 없을거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태어나지 않았을거야."

"그러니까 엄마랑 아빠,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만난 것에 감사해야돼."


반면에 나는 문과와 이과 중에서 이과를 선택했던 나의 결심을, 대학 역시 공대를 선택했던 것과 직장 역시 대학 전공을 살려 지원하고 꾸준히 한 직장을 다녔던 것, 이 모든 것을 후회하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내가 인생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후회하는 동안 한 가지 놓친 것이 있다. 내가 지금 걸어온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직장일을 하며 알게 된 결혼 전의 남편을 만날 확률은 0이라는 사실. 그러면 정말로 아이들이 말한대로 그 보석같은 두 존재를 낳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까지 생각이 이르자 나는 상담사 앞에서 여러번 세뇌하듯 이렇게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제가 내린 모든 결정은 옳아요. 저는 제 아이 둘이 저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며 사는데, 아이들의 말을 생각하다보니 제가 살아온 모든 과거의 일들이 마땅히 그랬어야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랬기에 이렇게 아이 둘을 낳아 인생을 배우고 감사를 느끼며 살아요."


그러니 앞으로 내가 내릴 어떠한 결정도 다 옳을 것이다.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결정을 내릴 것이다. 자꾸만 남의 시선을 기준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더이상은 부모님의 만족, 세상의 기준을 갖다 붙일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에서 하고 싶다고 하는 것에 무게를 실을 것이다. 그리고 어른답게 멋쟁이답게 책임지는 법도 알아갈 것이다.


결국 내가 나를 응원하는 마음을 먹고 싶어서 먼 길을 돌아서 왔다. 너는 할 수 있다고, 퇴사 후에도 우려하는 것처럼 두려운 일은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심지어 그런 날이 오더라도 마땅히 극복할 방법 또한 분명히 있을거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나의 시력, 능력, 감성, 자신감에도 한계가 있으니 꼭 쓰고 싶은 곳에다가 쓰고 싶은 방식으로 한 번 써보자고 이야기하고 싶다.


어쩌다가 이야기가 여기까지 나온 것일까? 마음의 힘을 길러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날을 맞이하기 위해 노력하는 요즘이다. 한 명의 노력이 개인의 희노애락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꼬박꼬박 써둔 괴로운 마음의 기록에서 어느덧 웃음꽃 만개한 행복한 글 묶음으로 변하고, 그것이 썩 괜찮게 읽히는 날을 꿈꾸며 주워담지 않을 글을 오늘도 발행해야겠다.


"민더야, 유부초밥 잘 먹었어. 고마워.

다음에도 또 만들어줘.

맛있게 먹고 엄마도 기운 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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