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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랍 애미 라이프 Feb 22. 2024

엄마, 단무지는 싸지 말아 줘.

국제학교를 다니는 아이가 내게 부탁을 해왔다.



중국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제법 튼실해 보이는 무가 있어 집어드니 한국 무처럼 꽤나 묵직했다. 득템 한 기분으로 룰루랄라 집에 돌아와 이걸로 뭘 해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시작했다.



'깍두기를 담가볼까?

아니야. 지난번에 중국산 무로 담갔던 깍두기는 영 아니올시다였어.

망해도 기본은 가는 단무지로 하자.'


노랑 단무지를 만들려면 치자가 필요하지만 여기서는 구하기 어려워 대신 사프란을 털어 넣었다. 다행히 색이 예쁘게 잘 우러나왔다. 숙성시킨 뒤 먹어보니 맛도 일품이었다. 신이 나서 아이의 도시락에 단무지를 가지런히 넣어주었다. 노란색 덕분인지 오늘따라 도시락이 한층 빛이 나는 기분이었다.


치자 대신 사프란을 넣어 색을 낸 단무지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하굣길에

"오늘 점심 도시락은 어땠어? 맛있었어?"

라고 내심 기대하며 물었는데 두 아이가 흠칫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다. 작은 눈알을 데구루루 굴리며 나의 시선을 애써 피하는 것이 아닌가.


평소라면 '어. 맛있어서 다 먹었어.'라고 하거나 '너무 맛있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다 못 먹었어.'의 대답일 텐데 우물쭈물하고 있는 걸 보니 뭔가가 있는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한 아이가 어렵게 입술을 떼었다.

"엄마... 너무 맛있었는데 단무지는 싸지 말아 줘."

"왜???????"

"아니... 냄새가...."


하고 우물쭈물 하자 다른 한 명이 말을 이어갔다.

"친구들이 단무지에서 방귀 냄새난대. 내가 도시락 열자마자 애들이 '윽! 이거 무슨 냄새야?'하고 코를 움켜쥐었어. 그래서 내가 이거 내 도시락에서 나는 냄새야.라고 말해주니까 다들 우르르 몰려와서 냄새를 맡고 내 단무지를 손가락으로 만져댔어."


"헉. 정말 그런 일이 있었어?"

"어. 다들 이게 뭐냐고 난리였어."

"그래서 선생님이 이건 Yellow pickled radish라고 하고 다들 자리에 앉으라고 했어."

"아이고 그런 일이 있었구나."

"어. 애들이 자꾸 방귀냄새라고 하고 손으로 만져대서 하나도 못 먹었어"










집에 와 아이 도시락을 열어보았다. 아이는 도시락통에 있던 단무지를 간식통에 덜어서 닫은 뒤 남은 밥을 먹었단다. 냄새를 없애기 위한 나름의 조치였다. 간식통에 담겨 있던 그 단무지에서는 확실히 아이가 말한 그 냄새가 났다.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미안함이 올라왔다. 그 후로 단무지는 아이들 도시락에서 영원히 퇴출되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과 함께 학교를 다닌다. 25명 남짓한 교실에는 약 10여 개국에서 온 아이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학교의 공식적인 이야기에 따르면 전체 학생들의 출신 국가가 100여 개에 다다른다고 했다. (이중 혹은 삼중국적을 가진 아이들도 있기 때문에 전체 학생들의 국적은 훨씬 다양해진다.) 그러다 보니 학교 급식이 이들 모두의 식단을 만족시킬 수가 없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이유다.  




식단표


고학년으로 올라가면 급식을 먹는 아이들이 종종 있다고 하니 나도 이제 좀 도시락에서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급식 식단표를 요청해 보았다.


파스타, 스파게티, 파스타, 버터치킨....


식단표를 보고 있으니 급식 업체가 얼마나 머리를 싸매고 식단 고민을 하는지 느껴졌다.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 글루텐, 유제품, 계란, 콩, 생선을 따로 표기했다. 한국에서는 계란이나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은 종종 보았는데 여기서는 견과류 알레르기를 비롯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알레르기를 가진 사람들도 만나 보았다. (그중 하나가 오렌지 알레르기였다.)


급식판에 밥과 국 그리고 반찬 세 가지를 먹는 게 국룰인 한국 엄마가 보기에는 '이걸 밥으로 먹어?'라고 생각이 드는 메뉴이다. 알레르기와 종교색을 배제하고 차릴 수 있는 음식은 대체로 이탈리안이나 빵류 혹은 인도 카레들 뿐이기 때문이다.





(음식에 관한 이야기는 4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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