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다비에서 만난 다민족 다인종 어린이들의 식단
자, 지금 여기에 다음의 어린이들이 집에 놀러 왔다고 가정해 보자.
1. 이슬람을 믿는 가정에서 자란 아랍 어린이
2. 베지테리언 가정에서 자란 영국 어린이
3. 힌두교를 믿는 가정에서 자란 인도 어린이
4. 한국 어린이
당신은 이 어린이들에게 간단하게 점심을 대접해야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면서도 쉬운 음식은 무엇일까?
이 어린이들을 모두 만족시킬 메뉴는 단 하나.
바로, 피자!
그것도 치즈 토핑만 올라간 마르게리따 피자이다.
그러나 간혹 아랍 어린이 중에 빵에 대한 거부 (혹은 글루텐 알레르기)가 있는 어린이가 있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 피자와 함께 감자튀김을 놓아주면 된다.
위에서 이야기한 아이들의 조합은 종종 우리 집에 놀러 오는 나의 아이들의 친구들이다.
이곳에서는 누군가를 초대할 때, 특정 음식에 제한이 있는지 미리 물어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그러한 제한사항이 있을 때 먼저 말하는 것에도 스스럼이 없다.
UAE에 가장 많은 인구 비율(약 30%)을 차지하는 인도인의 경우, 모두 힌두교를 믿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다르게 다양한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ㄷ이슬람을 믿는 사람도 많은데 이것은 인도 남부 지역의 바닷가 마을들이 무역의 통로가 되면서 이슬람이 전파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곳의 사람들은 혼혈이 많아 미남 미녀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UAE로 많이들 이주해 와서 살고 있다.
힌두교를 믿는 사람은 소를 먹지 않고 이슬람을 믿는 사람은 돼지를 먹지 않는데 간단히 이렇게만 나눌 수가 없다.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 중에는 살생을 금한다는 이유로 베지테리언의 길을 걷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물론 소, 돼지 모두 다 잘 먹는 힌두교 신자도 있다.
유럽 사람들 중에서는 건강상의 이유로 엄격하게 채식주의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어보면 누구는 계란을 먹고 누구는 안 먹고 누구는 또 빵에 든 건 먹고 누구는 생선은 안 먹고 종류가 엄청나게 다양하다.
그러니 여기서는 뭘 어떻게 먹고 안 먹는지에 대한 '주류' 자체가 없다. 개인의 종교와 선호도에 따라 극도로 세분화되어 있으며 이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러한 부모님의 신념을 따르며 성장한다.
나의 아이들은 저체중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서 자랐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내내 그게 내 잘못인 것만 같아 마음에 걸렸다. 앙상한 몸에 큰 주삿바늘을 꽂고 울고 있는 아이를 보며 '내가 너무 키가 작아서 아이들이 자랄 공간이 부족한 건 아니었을까.' 하며 자책하고는 했다.
또래보다 작게 태어난 아이들은 당연히 영유아검진에서도 하위 1%였다. 나는 영유아검진 시기가 돌아오면 늘 불안했다. 마치 성적표를 받는 기분이었다. 아이가 한 끼라도 안 먹고 버팅기는 날이면 신경이 예민하게 곤두서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키뿐 아니라 몸무게조차 또래를 전혀 따라가지 못한다는 담당 의사 선생님의 소견에 대학병원에 가서 온갖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중 하나가 영양상태 조사였다.
나는 영양사 선생님 앞에 앉아서 내가 하루에 얼마만큼을 먹이는지를 설명했다.
그때 선생님은 나에게 음식 모형을 보여주며 하루에 탄단지를 매끼 이만큼씩을 먹이라며 설명해 줬다. 그리고 나는 그 양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아이의 밥에 집착하는 엄마였다. 만약 이러한 나의 경험을 이곳의 친구들에게 이야기한다면 그녀들은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신기하게도 내가 만나 본 베지테리언 아이들은 우리 아이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크기도, 팔뚝이 훨씬 두껍기도 하다. (물론 유전자의 영향도 있지만 말이다.)
아이의 식단에 집착하던 나는 이곳에 와서 그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지켜보며 단백질을 꼭 고기로만 섭취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도, 아이들이 생각보다 생야채를 잘 먹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한 그 어떤 삶도 함부로 바르다, 아니 다를 평가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고귀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세상의 평균을 따라잡고 그에 맞춰가야 한다는 강박을 벗어났다.
이 사회가 나에게 준 가장 큰 교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