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김치 전용 냉장고가 있다고 하면 내 아랍 친구들은 무척이나 놀라곤 한다. 그리곤 김치를 왜 따로 보관해야 하는지 묻는다.
나는 내가 아는 지식을 총 동원해서 김치를 최적의 상태로 발효시켜 가장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김치냉장고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그럼 그들은 마치 날 ‘김치 마스터'처럼 본다. 같이 김장도 하자고 한다.
그럴 때마다 난 웃으며 수줍게 웃으며 대답한다.
"내가 한 김치보다 마트에서 파는 게 훨씬 맛있어."
^^
한국에 살 땐 한 끼라도 김치를 안 먹으면 난리가 날 것같이 김치김치 하는 어른들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매년 할머니 댁 마당에 모여 다 같이 그 고생을 하는 게 안타깝기도 했다.
그깟 김치가 뭐라고.
그러나 나는 그렇게 40여 년간을 가스라이팅 당했는지 이곳에 오자마자 제일 먹고 싶은 게 다름 아닌
김치였다.
매콤하고 알싸한 마늘과 고춧가루향 그리고 짭조름한 젓갈냄새 그것들이 한데 모여 어우러져 내는 맛의 하모니가 미치도록 그리웠다. 특히 아삭아삭 잘 익혀 약간의 산미까지 더해진 그 익숙한 맛이 그리웠다.
하루면 한국에서 보낸 택배를 받을 수 있는 시대 (물론 택배비가 킬로당 만원이 넘긴 하지만)에 한국산 김치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한국 마트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각종 대기업 김치가 진열되어 있고 중국마트에도 (어딘가 미심쩍어 사 먹어 본 적은 없는) 배추김치를 판다. 시즌이 되면 해남 배추에 제주 월동무도 들어오니 마음만 먹으면 김치를 만들 수 있다.
20년 전 유럽에서 김치가 너무 먹고 싶지만 재료가 없어서 양배추에 고춧가루만 넣어 김치를 만들어 먹었다는 선배들의 이야기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김치를 구할 수 있으니 이제는 이 걸 끝까지 맛있게 먹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김치냉장고를 사가지고 아부다비로 들어왔다. 한국에 살 땐 김치 떨어질 때마다 친정이나 시댁에 쪼르르 달려가 김치를 얻어오면 되니 필요 없었는데 여기 오니 김치냉장고가 이리도 요긴하게 쓰인다.
더운 날에 쉬이 상해버리는 과일과 야채를 싱싱하게 보관해 주는 기능은 말할 것도 없고 (주부들이라면 알겠지만 냉장고에 보관하는 과일과 야채는 이렇게 오래 선도가 유지되지 않는다.) 곡물칸도 요긴하다. 한국마트에 들여오는 한국쌀을 여기에 보관하면 도정한 지 시간이 좀 지나도 밥맛이 끄떡없으니 요술 상자가 따로 없다.
김치 없이 못 사는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아져서 이곳의 가전 매장에서도 김치냉장고를 만날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