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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민 Oct 29. 2020

기버(Giver) : 내 안의 어른아이 키우기

작년에 결혼을 준비하면서 부모님(재혼가정)과 가족들 간의 관계가 재성립 됐다. 나의 기나긴 사춘기를 끝마친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부모님과 내가 서로를 전보다 편하게 눈 맞추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됐기 때문이다.


서른이 돼서야 부모님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면서 그들 또한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걸 인정하게 됐고, 부모와 자식이 아닌 사람대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울 미래를 그려보니 집 문제, 경제문제, 양육문제, 가정교육문제, 학업문제, 노후 문제, 식사문제 등등 감당해 나가야 할 것들이 많았다.


우리 엄마는 어떻게 나와 동생을 혼자 키웠지!? 우리 엄마는 어떻게 폭풍 같은 여자의 인생을 견뎠지!?


우리 엄마는 일도 하고 집안 살림도 하면서 엄마와 아빠의 역할을 혼자 다 하니 나와 동생을 정서적으로 돌 볼 겨를이 없었구나 하면서 지난날의 엄마를 이제야 이해하게 됐다.


또한 지금은 엄마가 나를 키워야 하는 양육비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나서 그런지, 내가 결혼을 해서 그런지 내가 잘 살기를 바라며 이런저런 조언도 많이 해주고 특히 신랑에게 정말 잘해준다. 나랑 잘 살라고 말이다.


내가 10대 때는 엄마가 생존에 필요한 옷은 사줬지만 멋 부리고 다닐 옷이나 신발 사주기를 부담스러워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나와 신랑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됐다.


그러니 지난날 엄마가... 그때는 정말 없어서 그런 거였구나. 형편상의 문제였구나 하면서 섭섭하고 억울하고 분통했던 마음의 응어리들이 다 사르르 풀어졌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기까지 나는 아팠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친구네 집에서 한 달을 살았다.

엄마는 일터에 가 있고, 동생은 이모네 맡겨지고, 11살 어린애가 혼자 집을 지키기에는 밤이 너무 무섭고 낮은 너무 외로웠다. 그래서 친구랑 논다는 핑계로 그 집에서 한 달을 얹혀살았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집에 감사인사 한 번을 제대로 못 드렸다. 우리 엄마는 아마 지금도 내가 친구네서 한 달 살았던 것을 모를 것이다. 그때 나를 돌봐준 그 친구네 부모님께 참 감사하다.


중학생 때 늘 술 마시고 하소연하는 엄마의 얘기를 들어주느라 새벽에 갑자기 깨야할 때가 많았고, 불면증과 생리불순을 앓았다. 늘 같이 울어줘야 했고 달래줘야 했다. 엄마가 계속 죽을 거라고 얘기하고, 나보고 짐 싸서 친아빠에게 가라고 소리치기 일수였는데 어느 날은 정말 차라리 그래 버려라 하면서 나쁜 생각도 했었다. 내가 몸을 팔아 나가서 살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한 번의 결정으로 평생을 망칠까 두려워 그저 참았다.


이런 내가 학교에 가면 연예인 얘기 말고 다른 얘기는 할 게 없었다. 중학교 1학년은 연예인 얘기로 잔뜩 친해졌는데, 중학교 2학년 때는 각자 가족들과 있었던 얘기들이나 여행이나 어떤 특별한 추억들을 나눴는데 나는 늘 할 말이 없고 외롭고 힘들었다. 같이 다니는 친구에게 늘 힘들다고 말하니 그 친구는 나를 너무 싫어했다. 그 친구도 다닐 사람이 없어서 나와 다녔던 것 같다.


부모님이나 가족들과의 대화가 나는 거의 없었다. 밥먹어라 정도의 생존대화는 있었지만 정서와 감정을 나눌만한 대화도 없었고, 집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몰랐다.


그리고 의논이라는 걸 몰라서 무용수행평가때 음악담당이었던 친구가 만든 음악이 안맞는다며 그 친구의 수고도 몰라주고 내 맘대로 바꿔서 반에서 왕따같은 존재가 된 적도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자격지심에 반장이 됐는데 일머리가 안 돌아가고, 거절할 줄 몰라서 반에서 잘 노는 애들이 피자 파티하자고 하면 다른 애들 경제 수준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돈을 걷어 피자파티를 했다. 체육대회날 부반장 하고 같이 의논해서 반티와 소품을 찾고 반애들과 결정해도 됐는데 그것도 어려워서 애들 앞에서 힘든 척 우는척했다.

눈물이 나지 않았고 애들도 척하는 걸 느꼈지만 내 앞에서 표현하지는 않고 위로해줬던 것 같다.


다행히 중학교 2학년 때 엄마 같은 좋은 친구를 만나 공부하고 우정을 쌓으면서 그 어려움들을 이겨냈고, 고등학교 때는 야간 자율학습이 오히려 내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어 성적도 많이 올랐다. 그래서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에 가고 시간의 자유가 주어졌을 때 나는 무너졌다. 나 자신을 책임감 있고 야무지고 인격적인 사람이라며 인식하고 있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러지 못했다. 동아리 회장을 맡아서 많은 1학년 후배들을 동아리로 끌어들여 그들에게 밥을 사주고 돈 대주는 사람이었지, 그들을 진심으로 아껴주고 대해주지는 못했었다. 많은 사람들로 나의 겉모습과 능력을 부풀려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동아리 2개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회장을 맡은 동아리는 너무 힘들고 사람들도 별로라며 너무 많은 욕을 다른 동아리에게 했다. 그게 나는 욕인 줄도 몰랐다. 내가 욕한만큼 회장 역할 못한다며 뒤에서 욕도 많이 들었다. 호프집에서 내 친구가 내 욕을 들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부회장이었던 동기 오빠는 나를 한대 치고 싶다고 직접 말한 적도 있었다.


직장에 취직해서도 성인 ADHD처럼 상황인지가 잘 안되고, 일할 때 실수도 많이 하고 많이 느렸다. 상사가 일을 잘못했다고 지적하면 이성적으로 내가 무얼 잘못했는지 생각하기보다 나를 지적한 감정에 대한 불만만 가득했다.


첫 직장의 폐배로 말미암아 두 번째 직장에서는 보다 잘 생활했지만 이렇게  나 자신을 깨닫고 오기까지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중반 인생의 멘토를 만나 인생과 나 자신에 대해 들여다보게 되고, 또 여러 가지 인생의 경험들을 통해서 나만의 세계관을 깨고 나와서야 이런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다.


어렸을 때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어떤 일을 할때 의논하면서 같이 하는 것을 알았더라면. 감사하는 것을 배웠더라면. 그때 연예인에 의존할 게 아니라 정말 선하고 좋은 영향을 주는 책들을 많이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내 불편한 감정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다루어졌더라면, 내가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얘기하고 욕하는 게 잘못된 거라는 걸 진작 알았다면, 내가 입이 가벼운 사람이었다는 걸 진작에 알았다면 소중한 사람들을 놓치지 않고 지금과는 또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을까 종종 생각한다.


나는 30대가 돼서 지난 10대, 20대를 생각하면 이불 킥을 날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예전에는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하며 자책에 빠졌지만, 지금은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괜찮아.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용서해줘."

"그때의 나를 용서해줘."

"그때는 참 철면피로 잘살았다! 그때 이 정신이었으면 아마

 못 살았을 수도 있어. 지금부터 잘하자!"


사람 대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들을 이제야 깨닫게 됐지만, 깨닫기까지 나의 기본이 안된 인성으로 혹은 사람에 대한 불신으로 주변 사람에게 상처 주고 스스로 상처 받았던 시간들이 참 많았다.


내가 오늘 얘기하고 싶은 것은 양육자들로부터 온전한 정신과 정서의 재산을 받은 사람은 내면부터 강하고 건강하게 클 수 있지만, 양육자의 부재 또는 가정폭력이나 방임에 처한 사람이라면 그로 인해 여러 가지 신체적이며 정신적인 반응들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양육자의 입장에 있다면, 아이에게 관심과 대화로 삶을 풍요롭게 만들도록 도와주세요. 그게 재산입니다. 생존을 위해 하는 대화는 기본이고, 삶의 경험과 감정들 그리고 경제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문제와 이야기들 등 그게 아이에게 큰 재산이 됩니다.


양육자가 없다면, 나 홀로 커야 하는 사람이라면 좌절하지 말고 도서관으로 가세요. 도서관에서 심리학자, 경제학자도 만나고, 부모도 만나고 친구도 만나세요. 다만 악당들의 책은 빼고요. 당신의 정신이 당신 몸의 부모가 되어 당신을 가르치게 만드세요. 당신에게 가장 선하며 좋은 것들을 선물해주세요. 그것이 당신의 진짜 재산이 됩니다.


부모가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있다.

부모가 있어도 없는 사람도 있다.

자기 자신이 부모가 되어주면 된다.


나 자신이 좋은 기버(giver)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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