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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민 Dec 14. 2020

Hey, 오지랖

오지랖도 적당히

나이가 드는 게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태어난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봐야 한다.

세월에 따라 반드시 깨닫게 되는 소중함들이 있기 때문이다.


철없이 나이만 든 사람은

속은 그대로인데 늙은 자신을 보며 깨달을 것이다.

'철없이 살아왔구나. 갖춘 것 없이 살았구나.'

'지금부터라도 뭐라도 하자.'


철들며 나이가 든 사람은

'그때 그 사람이 이렇고 저래서 그랬구나. 이해된다.'

긍휼함과 아량이 넓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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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로 시작하는 이유는

최근 오지랖 지인과의 사연을 통해서

나는 얼마나 오지랖 넓은 사람이었는지

내가 얼마나 무례하게 살아왔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불 킥하고 싶고 후회도 됐지만 이제 와서 어찌하랴

그 시간 속에 나의 무례함을 묵묵히 받아주고 넘어가 준

지나간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미안할 뿐이다.


이러한 마음이 있어 오지랖 지인의 상황도 이해는 됐다.

저 사람이 모르니까 저렇게 말을 하고,

나보다 어른이지만 이 부분에서는 미숙하구나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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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에 친한 언니가 있었다.

같은 대학교 동문의 선후배로 만났고

그 언니는  내 고민을 잘 들어줬었다.

인간관계 문제, 경제문제 등 조언 또한 잘해준 언니 었다.

언니가 취업하면서 물리적인 거리는 멀어졌지만

종종 연락하고 지내며, 생일에는 소소한 선물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6년 정도를 알고 지냈다.


그러다 서로 결혼상대를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됐다.

커플 데이트도 해보고 연락도 잘 주고받았다.


언니는 내가 어떤 곳에 가정을 꾸렸는지 보고 싶어 했고,

본인이 가정을 꾸린 집에 초대하고 싶어 했다.


언니가 30대 초반에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경제공부와 실천을 열심히 해서 일찍 집을 샀다.

지금은 전셋집에 살지만, 새 아파트 한 채를 소유하고 있었다.


우리 가정은 월세집이고 지금 형편에 맞춰 오래된 아파트 17평에 들어가 살고 있었다.


나는 지금 집이 둘이 살기는 좋지만 집들이할 정도는 아니기에 주변 친구들에게도 집들이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었고, 이 언니에게도 별로 집에 초대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오지 말라 소리는 못했었다.


어느 날 토요일이었다. 언니가 보고 싶다고 커플 데이트를 하자며 가능하면 내가 있는 지역으로 오겠다고 했다.

만나서 에버랜드를 갔다가 중국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 8시, 에버랜드에서 언니네 집까지 가면 10시쯤 될 것 같았다. 너무 늦었다 생각해 헤어지려고 했는데 언니가 우리 집에 와보고 싶다고 했다. 한 번 오기 힘드니 들리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


우리 집 도착 밤 9시 30분, 언니는 여러 가지 과일을 집들이 선물로 줬다. 잠깐 얘기를 나누고 돌아갔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언니가 카톡이나 전화를 할 때마다 집 얘기를 시작했다.

"(앞으로) 아기 키우려면 큰 집으로 이사해야 되지 않냐"

"아기 키우려면 아무래도 큰 집이 좋다"

등등...... 연락할 때마다 그랬다.


언니의 마음은 이해가 갔다.

나쁜 의도로 상대방을 깎아내리기 위함이 정말 아니었다면

나를 위하는 말이고, 아무 사심 없이 사실을 얘기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몇 개월 만에 내 임신 소식을 듣고 연락해서 축하한다고 말하며 또다시 "아기 키우려면 이사해야 되지 않냐"라고 말하는 그 언니를 보며 이건 아니다 싶어 얘기했다.


언니에게 사람마다 말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말이다. 언니가 말하는 게 "이런 집에서는 애기를 못키우겠다"고 들린다고 말했다.


니가 나쁜 의도는 아니겠지만 언제부터인지 또 오랜만에 연락해서도 집 이사해야 되지 않냐고 하는 걸 보면서 언니가 나를 평소에 어떻게 생각하길래 볼 때마다 그렇게 얘기하는지 불편하다고도 말했다.


어떤 가정은 지금 이 집에 다섯 식구가 다고,

집마다 경제상황은 다 다른 거라고 알려줬다.


언니는 본인이 주택에 관심이 많아서 얘기했던 거고 나쁜 의도는 없었지만 오지랖이었다며 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나는 이런 일을 길게 끌고 싶지 않아 사과를 받아줬고 잘 지내라고 인사하고 마무리했다.


언니는 미안함의 표시였는지 카카오 선물로 아기 배냇저고리 세트 선물을 보냈다. 다른 마음에서가 아니라 언니에게 물질적인 건 그만 받고 싶어서 안 받으려고 했지만 꼭 받으라는 언니에 말에 그래야 언니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받았다.


서로에게 시간이 필요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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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언니와의 관계에서 느낀 것은

사람을 잘 알고 대해야 한다는 것과

겉과 속이 다른 건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언니와 커플 데이트로 놀이동산에 갔을 때 언니는 놀이기구에 관심을 보이며 말했다. 나는 언니가 놀이기구를 타고 싶어 하는 줄 알고 바이킹을 바로 타러 갔는데, 언니가 바이킹을 타고 너무 힘들어해서 미안했다.... 솔직하게 타고 싶지 않고 다른 걸 보고 싶거나 걷고 싶다고 했으면 그렇게 했을 건데 미안하기도 했지만 답답하기도 했다.


언니와 나는 언니가 제시한 의견대로 축의금을 주고받지 않기로 했으나, 먼저 한 달 앞에 결혼한 언니가 내가 결혼할 때 축의금을 줬고 나는 받았다. 괜히 받은 것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한쪽만 너무 받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언니가 집들이 때 아무것도 사 오지 말라고 했다.

몇 차례나 강조하기에 아무것도 사지 않으려고 했다가

예의상 티슈와 섬유유연제를 사 갔는데 예의상이라도 고맙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어 내 손이 민망했다.


이렇게 내 입장에서 글을 썼지만

솔직히 그 언니가 내게 해 준 것도 많았다.

지역이 달라 언니네 집에 놀러 가면 재워주고, 밥도 한상 가득 반찬도 여러 가지에 생선구이까지 해주던 언니였다. 뷔페에 가서 저녁을 사주기도 했다. 나는 언니에게 얻어먹고 받은 게 훨씬 많았다...


받는 위치에만 있지 말걸...

나는 그때 왜 감사하며 나도 언니에게 베풀 줄 몰랐을까

지금 후회할 뿐이다.


언니에게 받은 게 많아서 불편한 오지랖을 참고 싶었지만 매번 그런 식의 대함을 참기가 어려워서 선을 그었다.

선을 긋기는 했으나 그 방법밖에 없었을까 하면서 한편으로는 나도 그 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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