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차리고 잠자기

by 옛골소년

늦은 저녁식사로 집에서 먹는 막걸리 한 잔은 좋은 소화제라 생각하며 들이켜 봅니다. 식탁 옆을 지나치던 딸아이가 한 모금하고 맛을 봅니다. 처음에 비하면 막걸리가 조금씩 입에 맞나 봅니다. 딸아이의 손에 잡힌 작은 잔에 채워지는 양이 점점 많아집니다. 그렇게 간만의 막걸리 한 잔에 예전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알코올 적응력은 외가 쪽 유전자를 타고난 딸아이는 아빠보다 주량이 높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중딩인 딸아이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막걸리 한 잔을 하지만, 술을 처음 접한 때나 지금이나 저는 늘 한결같습니다. 조금만 들어가도 금세 얼굴이 붉어지고 정신이 몽롱해집니다. 그래서 딸아이의 알코올 적응력에 기분이 좋습니다!ㅎㅎ

직장시절 한때는 주량이 업무능력과 같이 평가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술을 잘 마셔야 큰일을 할 수 있고 승진에 가점이 되기라도 하듯 술은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무기가 되었습니다. 술을 잘 먹지 못하는 직장시설 내내 술자리가 너무 불편하고 힘든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퇴직을 하고 나서야 술이 애초부터 나하고는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굴이 금세 붉어지는 안면홍조 현상을 두고 술이 잘 받아서 그렇다!, 처음에만 그렇지 먹다 보면 하얗게 돌아오니 먹을수록 괜찮아질 것이다!..., 같이한 선배와 동료들 간에 이 논쟁은 단골 술안주처럼 시작되곤 했습니다. 그렇게 먹을수록 주량이 늘어난다는 말에 제대로 걸어서 들어가지 못하는 횟수가 점점 많아졌습니다.

집사람은 잠귀가 참 밝습니다. 날 때부터 그랬는지 저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알코올에 의한 안면홍조의 수수께끼와 같이 알코올 부적응 코골이 남편을 신경 쓰지 말고 잘 잤으면 하는 바람이 가득했었기에 그때는 그렇게 궁금했습니다. 술 먹고 늦게 오는 건 생각도 안 하고 "당신은 잠귀가 쓸데없이 너무 밝은 거 아냐!"ㅎㅎㅎ

술이 한창이던 직장시절, 술에 만취가 되어 들어가서는 조용히 씻고 방으로 향하면 집사람은 기가 막히게 인기척을 느끼고는 "지금 몇 시인데 기어들어(?) 오냐"라며 나지막이 공포스럽게 속삭였습니다."ㅋㅋ", 그리고 잠시 후 나의 코를 막으며 "IC 정말..., 제발 정신 좀 차리고 자!..., 시끄러워 죽겠어!", ㅠㅠㅠ

술에서 들깬 정신으로 집사람에게 간밤에 들었던 정신 차리고 자는 방법에 대한 절대 풀리지 않는 숙제와 드르렁거리며 코고는 소리와 술 냄새에 한숨도 못 잤다는 투정으로 아침부터 머리는 뒤죽박죽이 되었고, 그 공포스러운 자리를 피해 허겁지겁 밥을 먹고 도망치듯이 다시 직장으로 향하곤 했습니다.

퇴직 이후로는 그런 모습이 없어졌지만 한때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거실에서 바로 엎어진 적도 허다했습니다. 그러면, 아이들과 집사람이 질질 끌며 방으로 옮기던 흑역사가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몇 번 본 아이들은 아빠가 집에 기어들어온다는 엄마의 표현이 절대 과하지 않은 표현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ㅎㅎㅎ

그렇게, 술을 멀리한 세상이 계단 난간의 도움 없이 직립보행을 가능케 했고 직장시절 내내 해결할 수 없었던 '정신 차리고 자는 방법'에 대한 숙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고정수입을 포기한 퇴직으로 코골이는 세월과 함께 가는 동반자처럼 미쳐 해결하지 못했지만, 술과 함께 엉망이었던 삶에 비하면 건강과 가정의 평화와 같은 소중한 걸 얻게 된 것을 지난 추억으로 더듬어 본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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