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 화면 같은 생활에서 달력을 봅니다. 그래도 꾸역꾸역 채워지는 한 달이 아이들에겐 개학이 가까워지는 채움이고 지긋지긋한 3월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나에게는 비움입니다. 같은 달력을 보는 서로 다른 마음입니다. 아이들의 완전히 달라진 생활패턴이 이젠 뭐라 할 수도 없는 생활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늦은 저녁을 먹고 소화가 안된다며 이방 저방 돌아다녀보지만 발 닿는 곳이 새로운 것과는 거리가 먼 정지 화면입니다. 아들은 밤 12시가 되면 샤워를 합니다. 개운한 기분으로 잠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분으로 거실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켭니다. 그나마 제일 넓은 곳이니 답답함이 조금은 덜한가 봅니다. 오랜만에 마주 앉아 얼굴을 마주해 봅니다. "아들아!, 너는 하루 중 언제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니?", 지금의 갇힌 생활에서 행복하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은 듯하지만, 몸을 따뜻하게 씻어내리고 노트북 앞에 앉은 아들은 젖은 머리가 가려운 듯 벅벅 긁어가며 지금이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새벽 1시가 다 되어 가는 이 시간이 아들에겐 제일 행복한 시간입니다. 평소에는 자야 될 시간이 행복한 시간이라니..., 머리에는 큼지막한 헤드셋 이어폰을 두르고 얼굴도 모르는 SNS 친구들과 소통을 합니다. 실시간은 아니지만 시차를 두고 문자로 소통을 합니다. 같은 것에 공감하는 SNS 친구들이 있다는 게 한편으론 다행입니다. 아들은 음악을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노래를 리메이크도 해보고 흉내 내어 만들어 보기도 하고, 자기가 만든 음악에 누군가가 답글을 달아 놓으면 그것을 읽어보고 좋다는 평가에 그 순간만은 입이 히죽거리고 어깨가 들썩이고 귀가 즐거운 모양입니다. 아빠의 말도 들어야 되니 머리에 두른 헤드셋 한쪽을 귀에 살짝 비켜 걸고는 마냥 좋아라 합니다. SNS친구의 칭찬문자는 아이의 음악에 거름이 되어줍니다. 친구와 몸을 부대끼며 노는 놀이가 아닌 것에 애처로움도 있지만 좋아하는 공간과 시간에서 SNS 이웃과 허기짐을 채워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대견하게 보입니다. 이것도 일종의 사회생활의 시작인가?, 세월이 많이 변했습니다. SNS 이전과 이후의 환경이 아빠의 놀이와 아들의 놀이에 방법은 다르지만 결국 사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잠시 후, 아들은 유튜브를 켜고 모험의 세계로 떠날 준비를 합니다. 새벽시간에 짜릿한 경험을 대리만족하는 흉가체험이라는 채널로 아빠와 같이 가보자고 제안합니다. 곧이어 공포를 체험하는 유튜버의 모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커튼이 움직이고 사물이 떨어지고, 유치하지만 미리 설정된 것에 흥분하며 아들의 손에 땀이 나는 모양입니다. 아빠보다 키만 더 컸지 아들의 눈은 흉가체험에 푹 빠져 있는 마냥 어린아이였습니다. 흉가에 있는 TV가 켜지는 모습을 보며 아들은 신기하다는 듯 아빠에게 공포체험의 무서움에 대한 동의를 구합니다.ㅋㅋㅋ, "아들아!, 이거 모두 설정이고 거짓이야!, 유튜버가 준비를 많이 했네!, 그리고 연기도 수준급이고!", 아니나 다를까 구독자가 많다고 합니다. "야!, 이거 보지 말고!, 차라리 인왕산 수성동 계곡 등산로 입구에 있는 공중 화장실에 가서 오줌 한번 싸고 와봐", 아들은 시계를 보며, "이 시간에?, 난 못해", 벌써 새벽 1시가 넘어 2시가 다 되어 갑니다. "사실, 아빠도 못 가겠다".ㅋㅋㅋ. 그럼, 아빠가 새벽시간대의 정말 짜릿했던 경험담을 얘기해 줄까!", 아들은 아빠의 얘기에 궁금해집니다. "아빠는 초딩, 중딩 때 친구들과 삼삼오오 특공대를 조직해서 새벽시간에 사과나 밤을 서리하러 갔었단다", "밤은 산에 가면 있잖아?, 음!, 그렇긴 한데, 농사짓듯 키우는 밤도 있었거든!, 밤알이 엄청 굵고 맛있어!, 사과를 훔치려면 과수원 울타리를 뚫고 들어가야 되는 난관도 있고 스릴도 만점이고!", ㅋㅋㅋ, 아들은 "서리"라는 단어가 생소합니다. "아빠!, 그건 도둑질 아냐?, 걸리면 어떡해?, 음!, 잡히면, 기억에 없다는 거짓말 대신 그냥 인정하면 돼!, 그때는 그게 가능했단다. 배고프던 시절 남의 과일이나 곡식을 훔쳐 먹는 장난이 가능했던 시절이 있었지!, 지금은 경찰서에 잡혀갈 일이지만ㅋㅋㅋ", "그때는 잡힌다 하더라도 인정한 대가로 손들고 모기한테 헌혈하는 고통만 참으면 용서가 되었거든!". "거짓말하지 마", 아들은 믿지 못하는 눈으로 아빠를 쳐다봅니다. 군것질 거리가 부족하던 시절 움쳐먹는 게 용서가 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추억이 되었지만! "거짓말 아니란다!. 거짓말은 기억을 하지 못하거든!, 아직도 기억에 또렷하니 모두 사실이야!, 그리고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라는 말은 다른 아저씨들이 청문회장에서나 하는 얘기란다!,ㅋㅋㅋ". "그리고 거짓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정말 머리가 나쁜가 봐!, 죄다 기억을 하지 못한다고 하니!ㅋㅋㅋ". 아들이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으면 아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주는 어떻게 달라진 세상이 올까요?..., 같은 새벽시간대에 다른 경험으로 거짓말 같았던 사실을 얘기해 주는 아름다운 추억거리 하나쯤은 있었으면 합니다. 어느 듯 서리했던 추억을 아들에게 해주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사람끼리 공유했던 "정"이라는 감정은 정지 화면처럼 더디게 남아 있었으면 좋으련만..., 세상은 느린 듯 빨리 변해 가고 있습니다. #서리#밤서리#사과서리#거짓말#추억#정#기억#추억#유튜브#유튜버#흉가체험#커피인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