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가보는 곳의 설렘은 차멀미로 고생했던 아픔으로 가득했습니다. 지금은 뱃멀미 말고는 하지 않지만 멀미약을 먹지 않고서는 차를 타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큰형을 따라나섰고, 대학생인 작은형의 자취방을 가기 위해 대구로 향했던 여정의 기억은 지독한 차멀미로 시작하였습니다. 시외버스의 울렁거림은 그리 심하지 않았고 약기운으로 꾸역꾸역 버텨냈지만 시외버스 정류장에 내린 후 시내버스를 타고 가던 중간에는 몇 번을 버스에서 내려야 했습니다. 미안함에 큰형의 눈치를 보는 고등학생 막내는 멀미의 고통과 매스꺼움으로 머리가 깨질 것 같았고 눈물과 콧물은 얼굴을 덮었습니다. 누가 봐도 딱 티가 나는 촌놈의 모습이었습니다. 30여년 전, 대학생인 작은형의 자취방에 대한 기대로 가득했던 막내의 눈에는 설거지거리로 쌓여있는 그릇들과 먼저 마주했습니다. 연탄보일러 냄새의 익숙함은 시골집과 큰 차이가 없음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되레 측은함마저 들었습니다. 첫 대면의 자취방에 대한 인상은 집 나서면 고생이라는 말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형의 눈에도 그런 광경이 달갑지 않은 듯 굳은 얼굴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자취방 문을 열고 들어간 공간에서 막내가 느낀 서글픔이 전해졌는지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큰형은 라면 봉지 하나를 집어 들고는 방바닥에 힘껏 내동댕이 쳤습니다. 순간 터져버린 라면 부스러기는 좁은 자취방을 가득 채우고 잠시의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막내의 눈은 멀미 다음으로 펼쳐진 라면 부스러기를 보며 집 떠나면 고생길이라는 생각이 스쳐지나 갔습니다. 막내는 부서진 라면의 잔재를 치우며 큰형의 눈치를 봅니다. 큰형은 말없이 설거지를 시작했고 막내는 본의 아니게 형의 자취방 방바닥을 청소하고 있었습니다. 뭐가 큰형을 그토록 화나게 한 것일까, 분명 설거지거리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방을 치우는 내내 이런 분위기로 과연 집 떠나온 막내의 작은형 자취방 탐방기는 무사히 끝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반가워야 할 작은형의 등장은 막내의 눈에는 걱정으로 가득했습니다. 작은형은 반갑게 나와 형을 대합니다. 막내는 행여 부서진 라면을 작은형이 보기라도 할까 봐 흔적을 싹 감춰버렸습니다. 큰형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동생들과 저녁밥을 먹었습니다. 밥을 먹는 내내 막내의 머릿속은 온통 부서진 라면 부스러기 들로 가득했습니다. TV도 없던 자취방에서 잠들기 전까지 어떻게 이 삭막함을 어떻게 견뎌야 하나, 잠들기 까지의 기억은 사라졌지만 그렇게 멀미의 후유증과 라면 부스러기를 생각하며 형들 사이에서 잠이 들었던 기억은 생생합니다. 다행히 부서진 라면의 기억은 그날뿐이었고, 다음날은 대학교 캠퍼스도 같이 구경하고 사진도 같이 찍었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그날들의 사진은 고향집 어딘가에 고이 추억으로 보관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형들의 자취방 탐방기는 짧게 끝이 났고 다시 고향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작은형과 같이 버스에 올랐습니다. 어린 막내의 머릿속엔 형들이 싸우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 걱정 때문이었는지 고향집으로 오는 버스에선 멀미를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작은형과 두 살 터울인 큰형은 지방국립대를 졸업하고, 서울로 취업의 문을 두드렸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번번이 실패하였고, 형들의 동거는 큰형이 취업 준비를 위해 대학생인 작은형의 자취방에 잠시 얹혀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늘 공부 잘하던 큰형과 비교되었고 가끔은 학교에서도 큰형의 동생으로 불렸던 스트레스는 작은형의 보이지 않던 짐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큰형과의 동거로 작은형의 부담감은 어떠했을까... 형제의 동거는 그렇게 1년 가까이 이어졌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누가 더 많이 참고 살았을까 형들의 일 년이 몹시 궁금하였지만 물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로 취업이 먼저 된 작은형은 큰형에게 큰 금액은 아니지만 가끔씩 용돈을 주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큰형이 내동댕이 친 라면은 설거지 거리를 치우지 않은 작은형에 대한 미움이 아니라 자신에게 표출한 분노의 일부였을 것입니다. 막내는 그후로도 큰형의 분노를 가끔 보았습니다. 대학 재학 중 줄곧 장학금을 받았던 큰형의 첫 번째 시련은 동생 자취방에 얹혀살며 지방대생의 서울 진입 문턱이 쉽지 않음에 대한 좌절에 대한 극히 일부의 표출이었습니다. 장남으로서 형으로서 자존심 강하던 사람이 현실의 벽에 부딪치고 상처받으며 참고 살았던 것을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여덟 살 차이가 나는 큰형과는 오랫동안 거리가 있었습니다. 삼형제 모두 결혼을 하고 나서 취중에 했던 얘기가 기억납니다. 장남의 심적인 부담과 부모님의 기대치에서 오는 무게감에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기 전에는 모를 것입니다. 아무리 설명을 한다 해도 역할을 바꿀 수 없으니 앞으로도 모르고 살 것입니다. 막내의 눈에는 조금 보였습니다. 보이는 게 다는 아닐 테지만 형제마다 느끼는 부담이란 게 보였습니다. 비교당하는 둘째의 삶과 의도적인 비교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는 떠밀림에 그렇게 했던 첫째의 삶이 조금은 보였습니다. 지나고 보면 부질없는 것이었을 수도 있었고 그런 부질없음이 삶의 원동력이 되었지도 모릅니다. 삼형제의 비슷해 보이지만 달랐던 부모님에 대한 생각, 멀게만 느껴졌던 나이차가 이제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것은 부모님의 연로해지는 모습이 같아 보임에 좁혀지는 느낌입니다. 부모님은 가족의 중심축입니다. 언젠가는 부모님을 대신해 큰형으로서 중심축이 되어 가족을 이끄는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해봅니다. 형이고 장남이니까... #큰형#작은형#장남#둘째#막내#참아야지#커피인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