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가득 채운 친구 생각

by 옛골소년

아침 일찍 투표를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아내와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단둘이 걷는 길,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아내와도 1미터 이상의 거리를 두고 걸었다.ㅎㅎ 두 손을 꼭 잡든지, 팔짱을 끼든지 했을 연예 때에 비하면 1미터의 거리는 20여 년을 함께한 사람과 같이 걷는 길에서 느껴지는 안전거리처럼 느껴졌다.ㅋㅋ

손잡고 팔짱 끼지 않더라도 서로 도망가지 않을 안심 거리라고 할까. 투표소로 향하는 다른 부부들의 모습은 어떨까, 대부분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남자가 앞서고 여자가 뒤따라 가고, 연륜이 있을수록 지나칠 정도로 멀게 안전거리를 두고 걷는 것 같았다.ㅋㅋ, 결국 투표소 앞에서 모두에게 명확한 거리를 정해주었다. 1미터 간격으로 줄을 서시오!..., 체온을 체크 후 손소독제를 바르고 비닐장갑을 끼고, 코로나19가 별의별 경험을 다하게 한다.

그렇게 투표소 앞에서 줄 서기가 시작되었고 나와 아내도 1미터라는 거리가 정해졌다. 사랑하는 만큼의 안전거리를 두어야 했다. ㅋㅋ, 투표를 막 시작하려던 중에 아버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설마 아들의 소중한 투표권 행사에 개입을 위해 전화를 하신건가...ㅋㅋ, 20대 초반엔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하지만, 이젠 그럴 나이가 아니다. 투표를 마치고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모친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로하신 모친의 목소리로 건강 상태를 가늠해 본다. 다행히 생기 있는 목소리로 며느리의 생일이 지금쯤 아니냐는 얘기를 하셨다. 며칠 전에 지났다고 하니 안타까워하시며, 옆에 있는 며느리와 짧은 안부 인사로 아쉬움을 전했다.

아내에겐 두 번의 아픔이겠구나. 사실 며칠 전 아내의 생일을 잊고 있다가 처남의 문자로 알게 되었다.ㅠㅠ, 그런데 오늘 모친이 지나친 생일을 다시 상기시켜주셨다. 왠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뒤따라오는 아내와의 거리가 더 멀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앞으로 다가올 내 생일도 그냥 지나칠 것 같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ㅠㅠ, 내년에 꼭 잊지 않고 미역국 끓여서 챙겨줘야지!..., 아내는 꽃을 사진에 담느라 나와 점점 멀어진다. 사람보다 꽃이 더 좋을 때다.

잠시 후, 밴드에서 친구의 생일 알림이 울렸고 바로 축하문자를 보냈다. 가끔씩 이 친구를 생각하면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듯했다. 90년 초, 고등학교와 대학 동기인 친구와 군 입대를 위해 지원서를 함께 냈다. 그런데, 군번도 나란히 부여받고 훈련소 생활도 같이 하고, 3개월의 통신 특기병 교육도 같이 받았다. 많은 힘이 되었지만 힘들어하는 서로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면 그렇게 측은한 마음이 많이 들지 않았을 텐데...

힘든 과정을 겪을 때면 같이 군에 지원했다는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친구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었고 나의 고통이 친구의 고통이었다. 통신 특기병 교육이 끝나갈 즈음 자대 배치에 대한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다. 조금이라도 고향과 가까운 부대에 배치받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냥 정해주면 좋았을 텐데 생각지 않은 선택의 기회는 서로를 경쟁상대로 만들어 버렸다. 한 명만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같이 군 입대를 하게 된 두 번째 후회를 했다.

전혀 모르는 남들과 경쟁이라면 머리 터지게 들이댔을 텐데..., 더디어 교육이 끝날 무렵 선택을 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그런데, 친구는 벌써 집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을 지원했으니 나 보고 얼른 고향과 가까운 곳을 택하라며 다그쳤다. 나란히 부여받은 군번에서 한 번호 빠르다며, 고참 명령이니까 그렇게 하라며..., 내가 군번이 빨랐더라면 그렇게 했을까..., 만약 그랬다면, 변함없이 내가 가까운 곳으로 가고 친구를 멀리 보내 버렸을 것이다.ㅋㅋ

그렇게 친구에게 마음을 빚을 졌다. 30여 년이 다 되어 가지만 기억이 생생하다. 자대 배치를 받고 가던 기차에서 고향집이 보였기 때문이다. 기찻길을 앞에 둔 고향집에서 바라보았던, 그 기차에 자대 배치를 위해 몸을 싣고, 기차에서 바라보았던 고향집의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런 지랄맞은 광경이 펼쳐질 줄이야...

고향집을 지나 한참을 달린 후 먼저 기차에서 내렸고, 아직 갈 길이 한참 남아있던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기차에서 나를 바라보았던 친구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손을 흔들 수도 없었다. 나를 뒤로하고 멀리 가야 됐던 친구에게 너무 미안했기에..., 군 생활에 대한 기억은 자대생활의 기억보다 훈련소를 나와 기차에 오른 후 친구와 헤어졌던 구간의 기억이 더 진하다.

육군에 비해 편하다는 얘기를 듣고 공군에 지원했지만 친구와 나는 작전 통신병으로 3교대 근무를 했다. 그리고 전역 후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남들은 군대 가서 몸을 튼튼하게 만들어서 온다고 했지만, 불규칙한 교대 근무로 인해 위장병을 만들어서 전역했다. 그리고, 한동안 30개월 장기 공군방위라는 놀림을 당했다. 그래도 길었던 군 생활과 교대근무 비번일을 이용해 책을 많이 봤고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리고 졸업 후 고향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친구는 인천에서 직장을 다녔다. 몇 년이 지나, 서울로 올라가 살게 되었고 친구는 고향으로 내려와 살게 되었다. 그렇게 전역 이후에는 같은 곳에 살 운명이 아니었나 보다. 만약 남녀의 이야기였으면 얼마나 애틋했을까.ㅎㅎ, 그렇다면 같이 군대 간 얘기는 다른 것으로 각색해야 되겠지.ㅋㅋㅋ

친구는 같은 계모임 총무를 하고 있고 가끔씩 그때의 추억으로 농담을 건넨다. 내가 고향과 멀리 떨어진 서울에서 살고 있는 게 고향과 가까운 곳에서 군 생활했던 벌을 받는 것이라고...ㅋㅋ, 같이 살고 있는 마누라 생일을 잊은 것과, 친구에게 문자로 생일 축하해 주는 것으로 시작된 추억의 소환으로 시작된 하루의 단상이 너무 길어진 것 같다.

#투표 #생일 #생일축하 #친구 #군생활 #커피인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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