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점검원의 방문

by 옛골소년

고2가 된 아들의 온라인 개학이 시작되었다. 중3이 된 딸내미는 일주일 전에 먼저 개학을 했다. 각자의 방에서 핸드폰을 접속하여 학교에 갔다. 집에서 과연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질까, 교실에서 수업할 때에 비하면 집중력이 훨씬 떨어지겠지만 모두에게 동일한 조건이고 남매가 같이 집에 있으니 한편으론 걱정이 조금은 줄어드는 듯했다.

친구들도 같은 조건이고, 할 수 있는 최선의 조건에서 스스로의 집중력을 테스트하는 좋은 기회라며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본다. 선생님의 부담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아이들의 집중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최대한 재미있게(?) 수업을 진행해야 될 것이고, 부모가 동영상 강의를 참관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

출근 준비를 할 때 딸아이가 재미있다는 듯 선생님의 강의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핸드폰을 눈으로 가져왔다. 그렇게 선생님의 얼굴도 보게 되고 때론 인터넷 강의에 다소 어색한 선생님들의 모습도 보게 된다. 어색하지만 코로나19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온라인 개학이 익숙해버리기 전에 오프라인 개학이 되었으면 한다.

카페에 막 도착했을 때 아들내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카톡이나 문자 대신 전화를 한 것으로 보아서 뭔가 일이 있는 듯했다. 가스점검원의 방문에 현관문을 열어주어도 되는지 확인 전화를 한 것이었다. 본의 아니게 온라인 수업 시간에 집이라는 교실로 누군가 들어와 방해를 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아들의 목소리엔 신경질이 섞여있었다.

얼른 문을 열어주어 가스 점검을 받으라고 했지만, 아들은 사전에 얘기도 없이 갑작스럽게 방문해서 현관문을 열어달라는 가스점검원의 요구가 쉽게 이해되지 않은 듯했다. 더군다나 보일러실은 아들의 방을 통해 들어가야 했다. 정리되지 않은 개인의 공간을 생판 모르는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해 주어도 괜찮다며 아들을 설득했지만, 그렇게 아들과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가스점검원은 되돌아 갔다고 했다. 그리고 아들과 조금 더 통화를 했다. 부끄러운 건 무엇인가 잘못한 것이 있을 때 생기는 감정이지 정리가 되지 않은 방을 보여주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도 분간 못하는 나이는 아닐 텐데,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들의 목소리는 왠지 힘이 없어 보였다. 낯선 사람을 여동생과 단둘이 있는 집으로 들이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기회가 있을 때 경험을 쌓아야 한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아빠를 대신해 낯선 사람과 마주해 보라고 했다. 그러나, 아들은 사전 연락을 하지 않고 방문한 것에 집착했다. 가스점검원이라는 직업의 특징이 그렇다고 설명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전화를 끊고 나서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에서 오고 갔다. 덩치가 아빠보다 커진 것만으로 아들의 감정 표현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순간 답답함으로 다그쳤던 장면을 생각해 보았다. 오늘 느닷없이 자기의 공간으로 들어오려는 가스점검원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낯섦이 아들의 어떤 감정을 자극한 것일까...

3개월 넘게 학교를 가지 않았으니 학생 신분의 망각을 깨운 온라인 개학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정말 자기방이 더러워서 보여주기 싫었던 걸까,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며 전화 통화 끝까지 집요하게 얘기했던 가스점검원의 사전 연락 없는 방문 때문에 화가 났던 것일까..., 잠시 예전 직장 생활의 잔상이 떠올랐다.

일요일 늦은 오후가 되면 으레 신경이 날카로워졌었다. 그래서 화를 잘 냈었다. 다음날 회사 가는 부담으로..., 오늘 아들의 감정이 그런 것이라면... 아직까지 월요일의 끔찍했던 부담이 생생하다는 것이 어쩌면 아들의 온라인 개학도 내가 느꼈던 월요병과 같지 않았을까, 그런 이유에서라면 시간이 해결해 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고 또한 이해도 된다. 학교나 직장이나 가기 싫은 건 애나 어른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것 같다. 누군가에 의한 해결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스스로 짊어지고 가야 되는 것이니까 어쩔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자기 방이 더러워서 보여주기 싫었다는 것과 사전 예고 없이 방문한 게 싫었다는 것은 변명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얼마 전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자전거를 선물해 주었을 때 엄마 아빠가 없는 상황에서도 거실에서 자전거를 조립하는 낯선 아저씨에게 거부감 따위는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에는 거부감 따위는 전혀 없었다.

마지막으로,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샤워를 하고 반바지와 반팔 티를 입은 채로 따뜻한 방에서 겨울을 나고, 라면을 끓여 먹고 했던 게 가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라는 것을, 당연한 것을 망각했다면 다시 상기시켜주어야겠다. 같이 있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면 공존의 존재를 부정하는 실수를 범하는 것이라고 말해 주어야지.

혼자 생각했던 것 중에 해당되는 게 있는지 퇴근 후 아들에게 물어봐야겠다.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다른 이유도 있겠지..., 사춘기 후유증에 의한 그냥 화가 난 것이라면 어떡하지... 가스 점검은 받아야 되는데...ㅠㅠ, 그래서 아들의 생각이 궁금하고 퇴근이 몹시 기다려지는 오후다.

#가스점검원 #가스점검 #온라인개학 #학교가기 #부담 #커피인뜨락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할아버지 손님의 무용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