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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골소년 Apr 18. 2020

외로움은 그리움이 되어 나를 흔든다

내가 스스로 변화를 주는 삶을 살자

사회적 거리두기가 길어질수록 그 사이의 외로움을 잊기 위해 옛 기억을 더듬는다. 곧 바닥을 들어낼 것 같은 인내심, 외로움은 점점 더 그리움으로 변한다. 그리움의 잔상으로 안 좋았던 기억보다 좋았던 기억을 끄집어 내는 것이 뇌의 순기능이라면, 내가 무엇 때문에 회사를 박차고 나왔는지를 잊게 하는 역기능의 부작용에 빠질 때도 있다.

딱 하나가 바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하나가 문제의 복합적인 것에 정점을 찍게 되었고, 불안하고 화가 난 상태에서 이성을 잃은 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공포감에서 탈출을 시도했다. 그렇게 미치도록 싫었던 직장 생활을 상기시켜주는 후배가 있다. 오늘도 직장 후배의 전화에 봄바람에 나뭇잎 흔들리듯 맘이 흔들린다.

언제나 그렇듯이 내가 없는, 이젠 나와 상관없는 회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친구는 나를 단련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는 듯 잊을 만하면 과거를 들춰내며 흔들어 댄다. 요즘 외로움이 부쩍 커져서 그런지 오늘의 흔들림은 여느 때에 비해 배가 된다. 흔들리면 내 마음이 초라하지 않게 균형감각을 바로잡느라 안간힘을 쏟는다.

이 친구와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은 회사 얘기가 대부분이다. 잊지 않고 안부를 묻는 것에 오히려 고마움을 가져야 할 일이지만 외로움에 허우적대고 있는 기가 막힌 타이밍에 걸려오는 전화는 거북할 때가 있다. 그렇다고 불안하거나 화가 나 있는 상태는 아니다. 오히려 퇴사는 내 맘대로 할 수 없었던 곳에서 유일하게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박차고 나올 수 있었던 조직생활 부적응의 최대 선물이라고 위로하며 살고 있다.

그러면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유일하게 지금의 나를 괴롭히는 스트레스다. 더 이상 눈과 손이 가지 않는 옷과 물건들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머뭇하는 것에 비하면 20년 가까이 몸에 밴 조직생활의 잔재가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시간은 훨씬 더 오래 걸릴 것이고 버려지는 고통이 클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행복해지리라 믿고 있다.

오늘도 외로운 마음의 상태를 후배에게 들켜버린 것 같은 부끄러움에 조금 민망할 정도라고나 할까. 그런데 내가 던지는 무덤덤한 말투에서 고스란히 외로움이 전달되는 기분이다. 하지만 이런 묘한 기분도 숨길 필요가 없다. 지금껏 감정을 구체화하지 않고 숨기는 데에만 급급했기 때문에..., 이제는 드러나는 감정을 구체화하지 않으면 모두 가짜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게도 위로가 되고 직장 후배에게도 위로가 되는 말을 찾고 싶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온 지금이 외롭다고 느껴지고, 직장을 다니고 있는 후배의 시간도 외로움의 시간으로 가고 있는 것에 대한 위로가 되는 말을 생각해 보았다. 순간 이것도 쓸데없는 강박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미 전화 통화로 위로가 되었다. "살아 있냐"라는 인사말로 시작되는 생사확인 안부전화가 얼마나 큰 위안인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해결 능력이 없으면 그냥 들어주고 위로의 말한마디 건네는게 최선이다.

이 친구는 나를 흔들었던 것이 아니고 자기가 흔들리는 것을 나에게 보여주었던 것일 수도 있다. 직장 밖 세상의 흔들림의 정도는 어떠한지 몹시 궁금할 것이다. 직장은 울타리로 보호를 해주는 곳이다. 대신에 언제, 팔려나갈지 잡혀 먹힐지 모르는 곳이다. 울타리 밖의 세상도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방어막 없는 전쟁터와 같았다.

나는 직장의 선배로서 인생의 선배까지 되는 굴레를 벗어나고 싶었고 이 친구는 인생의 모델이 되기 위한 친구가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모델을 잘 못 선택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이것도 나만의 지나친 강박일 수 있다. 어찌 됐던 잊을만하면 잊지 않고 가끔씩 흔들어 주는 후배가 너무 고맙다. 흔들수록 그만큼 더 강하게 버틸것이다. 남에 의해 바뀌는 삶이 힘들었기에 이제는 내가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는 삶에 행복해야지.

전화기를 잡으면 생각나고 부담 없이 전화를 할 수 있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부모님을 제외하면 가족 중에도 그런 사람이 거의 없다. 그렇게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이 있다는 자체만으로 위로이다. 그런 사람에게 전화가 걸려오면 그때의 감정을 최대한 구체화해서 전달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나는 가짜다. 행복하든 외로움을 느끼든 위안이 되는 사람에겐 나를 흔들어 대는 만큼 나의 감정을 최대한 구체화하여 전달하자. 더 이상 무엇을 숨길 것도 없다.

전화를 끓고 나서 책을 하나 집어 들었다. 얼마 전 지인에게 받은 책들 속에서 지인의 오래전 웃고 있는 사진 한 장이 나왔다. 의도한 것이라면 대단한 센스를 가지신 분이고, 의도치 않은 것이라면 그 책을 읽는 내내 그분과 같이 있다는 느낌으로 책갈피가 되어 나를 미소 짓게 할 것이다. 이 사진 한 장이 오늘의 흔들림을 잡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순간 돌려드려야 하나 망설임도 있었지만 책 속에 그냥 간직해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내 손에 있어야 가치가 더 있을 것이고, 언젠가 이 책을 다시 펼치는 날에 지난날의 그리움을 잡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핸드폰으로 공유하고 저장되고, 의미 없이 넘쳐나는 사진보다 오래전 인화된 사진이 한 장이 주는 진함이 책과 함께 오래갈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리움에 흔들리지 않고 단지 미소 짓듯 추억할 수 있는, 허우적거리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외로움을 즐기리라.

#외로움 #그리움 #흔들림 #즐기다 #행복 #행복해지기 #즐김 #커피인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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