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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골소년 Apr 20. 2020

홀 아니면 짝으로 갈라진 세상

 비 내리는 주말 오후, 유리창으로 보이는 빗줄기에 시원함을 느낀다. 비가 그치면 맑은 하늘이 주는 상쾌함은 눅눅해진 기분도 말려버리는 상쾌함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난 올듯 말듯 약 올리는 흐린 하늘이 주는 처짐보다는 비가 오는 하늘이 더 좋다. 비에 흠뻑 맞은 식물의 미소와 함께 카페로 들어오는 우산 속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오랜만에 손위 동서와 처형이 카페에 들렀다. 비 오는 고즈넉한 풍경의 삼청동 카페에서 아내와 같이 넷이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카페를 통째로 이야기방으로 즐기는 호사를 누리기로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더 연장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정말 좋은 말인데..., 그래, 아무 생각 말고 그냥 즐기자!.

 더 길어질 기다림과 외로움은 이왕이면 맑은 하늘로 채워졌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해 본다. 비가 내려도 좋다. 비에 맞은 식물이 커가는 것을 보며 희망을 키우면 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이 난 뒤, 맑은 하늘과 부쩍 커진 식물들이 주는 변화는 그동안 축축해진 기분을 말려버리는 상쾌함으로 다가올 것을 기대하며..., 팍팍한 현실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버팀목이 되어 주던, 위인전을 읽고 써 내려간 초등학생 때 독후감 후기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다짐을 써 본다.

 가족이 만나서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매번 같았다. 아이들 커가는 얘기, 부모님 늙어가시는 얘기, 먹고사는 얘기 등등, 단지 집이 아닌 카페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는 새로운 것인 양 커피 한 모금으로 시작하여 잔이 몇 번씩 비워질 때까지 이어졌다. 가족의 이야기는 다른 장소와 다른 시간에서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시작된다.

 간혹 미처 알지 못했던 드라마틱 한 삶의 내용의 단면을 자세히 엿볼 수 있는 기회도 있다. 한 부모에서 나온 가족의 이야기는 같은 듯하면서도 서로 달랐다. 다름은 서로의 삶의 의식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등장인물의 급격한 변화 없이 느리게 보이는 드라마 같은, 서로 다른 삶의 이야기를 거북하지 않을 정도로 각색하여, 주고 받으며 끌고 나가며, 공감이 되는 것만 자기 것으로 가져가면 된다.

 얘기가 길어지면 온갖 소재거리가 다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며칠 전 치러졌던 선거 얘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시작하면 자칫 감정싸움으로 번져 나갈 수 있는 위험하지만 재미있는 소재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인해, 가족이든 친한 사람이든 가끔은 가치관의 차이로 이방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서로 다른 지름길로 목적지를 가듯,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를 밀고 당기며 가다 보면, 결국 같은 목적지인 행복하게 잘 사는 세상을 꿈꾸며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단지 가는 방법이 다름을 쿨하게 인정하면 된다. 처해있는 상황 또는 경험치 등에 따라 선호하는 길이 분명 다르다. 하지만 가족들간에는 재미보다는 리스크가 더 큰 소재라고 생각한다. 자칫 말다툼으로 번질 소지가 농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한 사람과 정치 얘기가 시작되면 바로 정리를 해버린다. 이번에도 그렇게 했고, 위험한 소재라는 이유가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는 한계의 아쉬움이라는 것을 매번 느낀다. 우리의 삶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결정들로 가득하다. 동전이 바닥에 서있을 확률은 전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을 지도 모른다. 던지면 앞뒤가 정해지는 것에 비하면 동전을 세우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동전을 세우듯 어려운 소재가 먹고살기도 팍팍한 삶에 들어와 가족마저 편가르기 하는 것이 아주 거북스럽다. 아무리 해박한 정치적인 지식과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아주 위험한 소재 거리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가족 간의 평화 유지를 위해 화재를 다른 것으로 전환시켜 버렸다. 다르다고 틀린 것이라며 주장하는 누를 범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구슬이나 동전을 가지고 홀짝, 삼치기 놀이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홀짝 놀이가 주는 선택의 기회와 삼치기 놀이가 주는 선택의 기회로 느껴지는 상실감은 분명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놀이 방법의 사소한 차이지만 기회의 폭이 넓은 즐거움(?)으로 삼치기 놀이를 더 선호하지 않았을까. 홀짝 놀이보다는 선택의 폭이 넓은 삼치기 놀이로 인해 나와 친구들은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관대해졌을 수도 있다. 정치도 삼치기 놀이처럼 선택의 폭이 넓은 재미있는 게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재밌는 생각을 해본다. 아직까지 우리 가족은 정치얘기를 맘편하게 하기엔 동전을 세우는 것처럼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할 것 같다.

#홀짝 #도아니면모 #이분법 #삼치기 #삼치기놀이 #노력과인내 #커피인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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