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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골소년 May 01. 2020

변함없는 부부의 궁합

5월이 시작되는 첫날, 근로자의 날이었습니다. 자영업자의 길로 접어들고 나서부터는 쉬는 날이 아니라 평일과 다르지 않은 그냥 일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쉬는 날의 상실감은 카페로 찾아오는 손님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내가 만들어준 달고나 없는 달고나 커피를 한잔해 봅니다.

작은 것에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요즘 들어 행복감의 정도가 물질에서 오는 것이냐 정신에서 오는 것이냐를 쉴 틈 없이 생각해 봅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근로자였을 때 누리던 행복감과 자영업자일 때 누리고 있는 행복감의 정도를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차츰 알아가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기준으로만 비교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나빠진 것에만 집착하고 살고 있다면 지난날의 상실감에 빠져 깊은 잠을 잘 수 없었을 텐데, 요즘은 눈만 감으면 잠이 들고 새벽에 느닷없이 깨어 힘들어하던 잠버릇도 없어졌습니다. 일거리와 걱정거리로 가득했던 근로자의 삶이 속세였다면, 몇 가지 나물의 찬과 밥이라도 감사하며 삶을 노래하는 것이, 단지 로망에 불과하더라도 기꺼이 속아주며 살아가겠다는 뜻으로 굳어져 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다시 돌아갈 길도 없고 방법도 없어졌습니다.

근로자의 삶이 아닌 새로운 삶은 직장 생활 내내 따라다녔던 사회생활 부적격과 같은 패배감을 만끽하며 살아갈 여유를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 몸 안에 잠들어 있는 가능성과 새로운 행복을 발견하게 하는 존재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나물을 뜯어 먹는 삶이란 게 속세를 버티지 못하고 떠나버린 나약한 패배자의 정신승리로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었지도 모릅니다.

미친 듯이 고속도로만 달렸기에 엔진에 무리가 왔습니다. 결국에는 내려와야만 했습니다. 누가 먼저 내려오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쾌속질주의 달콤함을 결코 멈추기가 쉽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근로자의 날과 영영 이별하며 자영업자의 일상으로 회귀합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기분을 비포장길을 달린다고 해서 망칠 수는 없습니다. 덜컹거리고 속도감이 떨어지더라도 유유자적한 이름 없는 시골길을 산책하듯 달릴 것입니다.

그리고, 늦은 오후, 아내의 지인이 카페에 들렀습니다. 홍대 앞에서 취미생활 겸 부업 삼아 타로점을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카페의 자리 한편을 허락해 준다면 주말을 이용해서 카페에 오시는 손님들을 상대로 타로와 사주, 별자리 운세를 봐줄 생각으로 들렀던 것이었습니다. 인사를 주고받고 얘기를 나누는 사이 재미 삼아 사주와 궁합을 봐주셨습니다.

아무리 재미 삼아 본다고 하더라도 만약 듣고 싶지 않은 결과라도 나온다면 부정적인 결과의 괴롭힘에 다시 휘둘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앞두고 궁합의 결과로 흔들렸던 지난 일을 생각하면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검증을 받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부부의 궁합을 보기로 했습니다.

아내와 연애를 시작하고 부부로 같이 살게 된 것이 어느덧 20년이 훌쩍 지난 시간이 흘렀습니다. 결혼 전에는 장인, 장모님의 절친이자 은퇴한 한의사였던 분이 궁합을 봐주셨습니다. 그분은 아내를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딸처럼 이쁘게 생각하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남자친구이자 결혼 상대인 내가 그분을 대하는 기분은 왠지 아내의 아버지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궁합을 보는 내내 아내에 대한 생각이 사뭇 남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왠지 나 같은 놈에게 시집보내기는 아깝다는 뉘앙스의 말투와 함께 궁합의 결과도 정말이지 듣기에 거북할 정도의 불편함으로 들어야 했습니다. 그 순간 궁합의 결과는 뒤로 한채 오기가 생겼습니다. 더한 결과의 말을 하시더라도 절대 헤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좋지 않은 결과를 극복하기 위해, 한동안 궁합이란 것이 한 사람에 의한 주관적(?)인 결과에 의해, 결혼생활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참담한 궁합의 결과를 잊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계속 다짐을 하였습니다. 다시는 상처를 준 노인네를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결혼 후 장인어른의 한약을 짓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분을 오랫동안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분을 만날 때마다 궁합의 안 좋은 결과만 기억에서 상기되어 튀어나왔습니다.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삶의 의식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말의 괴롭힘은 오히려 궁합의 결과를 내었던 사람을 미워하게 되었고 궁합의 결과를 부정하며 보란 듯이 살게 해준 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시 본 결혼 18년차 부부의 결과는 찰떡궁합이었습니다. "아, 20년전 궁합은 뭐지...", 그래서 지금껏 기억하고 있었던 궁합의 결과를 새롭게 해석하기로 했습니다. 아니 이제야 좀 알 것 같았습니다. 결혼 전 궁합의 의미는, 궁합의 결과로 행여나 안 좋은 일이 닥치더라도 당사자를 미워하지 말고 궁합을 봐준 사람을 미워하되, 당사자를 감싸 안으며 살아가라는 의미가 아니었던 것일까...

부부의 궁합을 보는 이유는, 결과가 좋게 나왔다면 그대로 행복하게 살면 될 것이고, 행여나 안 좋게 나왔다면 안 좋은 얘기를 들려 준 사람을 미워하되, 한 이불 덮고 있는 사람을 미워하지 말 것이며, 그리고 부부가 같이 안 좋은 결과를 좋은 쪽으로 바꾸며 현명하게 살아가라는 의미라는 것을, 오늘 다시 정리를 해보게 되었습니다.

#부부 #아내 #결혼 #궁합 #커피인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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