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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골소년 May 04. 2020

아들이 아빠에게, 아빠가 아들에게

자영업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밥벌이가 최대의 고민이 된 요즘, 형편에 맞게 살고 형편에 맞게 생각하기 위해 마음을 다스리는 글을 읽고, 글을 쓰고 누군가의 공감을 받으면 행복해하고, 비슷한 생각의 이웃을 만나면 그냥 반갑고, 어떤 날은 연락처라도 주고받아, 잘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도 한잔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어느 날 아침, 아들이 친구의 새로 산 자전거 얘기를 해줍니다. "아빠, 친구가 자전거를 새로 샀는데, 가격이 삼백만원이래", 친구의 자전거 한대의 가격이 집에 있는 차의 중고가를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자전거 한대의 가격이 전해준 충격은 아빠의 입에서 나와야 될 단어의 조합을 복잡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아빠 : "뭐가 그렇게 비싸냐?, 비싼 이유가 뭐야?"
아들 : "일단, 소재가 튼튼하고, 가벼워!,
             전문 회사 브랜드야!"
아빠 : "가볍다고?,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지,
             들고 다니니?,
             튼튼하다고?, 머리에 쓰는 헬멧이
             튼튼해야 되는 거 아냐?",
             그리고, 쌩하고 금세 지나가는 자전거의
             브랜드를 누가 알아주니?"
아들 : "아무튼, 가볍고 소재가 좋을수록 비싸!...,

             그리고 자전거 좀 타는 사람은 브랜드를

             바로 알아봐"

단순히 타고 다니는 바퀴 달린 물건이라기보다는 움직이는 자존심 같다는 얘기로 들렸습니다. 그리고 고급스러운 소재를 이용해서 제작된 자전거의 브랜드 가치는 상당하다고 했습니다. 자전거뿐만 아니라 과하다 싶은 물건을 가지고 싶어 하는 아들과 오고 갔던 오래된 대화법이었습니다. 아들의 얘기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몸에 지니고 있고 소유하고 있는 것에 의해 격이 높아 보이는 세상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아들은 아빠의 말 하는 의도를 알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자전거 흠집 내기가 아니라 딴지를 걸어서라도 쉽게 살 수 없는 물건에 대한 마음의 미련과 상처를 수습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서로의 평정심을 찾기 위한 수순인 것을. 아들에게 자전거는 타는 것이지 한 손으로 들고 다니거나 정지된 물건에서 나오는 과시용이 아니라고 얘기해주었지만, 형편에서 우러나오는 위로용 멘트로 사용하기엔 너무 상투적인 표현이었습니다.

아들이 살아가면서 단지 타는 용도로만 알았던 자전거가 느닷없이 마음을 흔들게 하는 물건으로 변하는 것처럼 다른 것들도 하나씩 늘어날 것입니다. 아이가 점점 커갈수록 부모의 눈에는 어린아이의 잔상이 보입니다. 순수함이 세상의 때로 물드는 시간을 늦춰 보려는 마음 때문일까..., 작은 선물에도 만족하던 어린아이처럼 철부지였으면 하는 부질없는 바램 때문일까.

다행히, 늘 철부지 같았던 아들은 몇백만원하는 자전거를 사달라며 떼쓰는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어린아이였다면 당장 마트로 달려가 세발자전거라도 새로 하나 사주고 싶었지만, 현실은 엄청난 격차로 벌어지는 삶에 대해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뭐라고 꼭 짚어 말하기가 어렵게, 비싼 자전거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찬 머릿속은 점점 희미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형편을 고려해서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멋진 말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하지...

눈치라도 챈 것처럼, 아들이 얘기합니다. "그냥, 그렇다는 거야, 전혀 부럽지 않아!, 그 자식은 그런 것 가지고 아침부터 자랑질을 해대는 거야". 아빠는 생각합니다. "아니, 그냥 그럴리가 없어, 부러운 눈빛이 잠깐 보였거든", 부러움은 생각해보고 느끼는 게 아니었습니다. 웬만한 사람이면 귀로 들리는 순간 뇌로 전기처럼 전해지는 신호와 같습니다. 사실은 아빠도 지금 세상에 부러운 것들이 한둘이 아니거든...

아빠와 아들은 거실에 있는 자전거로 눈이 향했습니다. 한때 아들이 간절히 원하던 자전거는 거실 한쪽에 고이 주차되어 있습니다. 몇 년이 지났지만 마치 사람처럼 아들과 같이 살고 있으니 새것처럼 상태가 온전했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새로운 자전거로 인해 아들에게 사준 자전거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하락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의문의 일패?

"아빠, 그런데, 그 친구는 아빠랑 사이가 엄청 안 좋아!, 아빠가 맨날 공부하라는 얘기만 해서 서로 얘기도 안 한데!", '아빠는 반항기 가득한 아들에게 자전거를 선물해 준 친구 아빠와는 다르다는 듯', 분위기 반전용 멘트를 날립니다. 장난삼아 아들에게 물어봅니다. "아빠도 공부만 하라고 강요해 볼테니까 너도 한번 찐하게 반항해봐!, 혹시 알아, 너도 고가의 자전거를 득템할 수 있을지 모르잖아!",ㅎㅎ

그날은 그렇게 웃음으로 마무리했지만, 오늘은 집에 가서 그날 못다 한 말을 꼭 해주고 싶습니다. "아들아!, 너는 아빠 아들로 커가는 것만이 아니라, 사실은 아들 덕분에 아빠도 여전히 커가고 있단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자전거가 얼마짜리인 뭐가 중요하니, 아빠의 형편에 맞게 최고의 가격으로 산 거니까, 혹시 그 친구랑 같이 자전거를 타게 되면, 아빠의 얼굴을 생각해봐...,


그리고 팔굽혀 펴기 운동을 열심히 해서 자전거가 가벼워지게 만들고, 몸을 자전거 소재처럼 튼튼하게 만들어..., 자전거 가격이 올라갈수록 너의 몸과 마음이 튼튼해질 거야!. 마지막으로, 그렇게 비싼 자전거를 정말 사고 싶으면..., 돈 벌어서 네 돈으로 사!~~". 지금의 형편을 고려해서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멋진 말을 생각해냈습니다.

#아들 #형편 #자전거 #아빠 #커피인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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