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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골소년 May 05. 2020

하기 싫지만 해야 되는 일

3가지 유형의 아이들

아빠와 같이 카페로 들어서는 어느 딸아이의 학년을 맘속으로 짐작해 봅니다. 키와 덩치로 보아서는 초등학생 고학년이나 중학생 저학년쯤 돼 보였습니다. 중학생 저학년이라면 애교를 부려가며 어린이라고 우기면 아직은 어린이날 선물을 받거나 놀이공원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날 아빠와 같이 놀이공원이나 아이들이 올만한 곳이 아닌 카페로 오는 아이가 조금은 궁금해졌습니다. 어린아이의 티를 벗어내고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숙녀가 되는 연습이라도 할 요량으로 왔을까. 마주하고 앉은 아빠와 데이트를 즐기러 온 것인 양 주문을 하는 꼬마 숙녀의 얼굴엔 아직은 앳된 어린아이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분명 어려 보이는데..., 어린이날, 그런 어린 손님이 반가워서 그랬던 것일까. 꼬마 숙녀의 나이를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 궁금증이 더해 갔습니다. 그런데 음료를 가져다주며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물건들이 눈에 보였습니다. 가방에서 꺼내 놓은 참고서를 보고서는 중학교 1학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린이날 어린아이가 아빠와 같이 공부하러 오다니, 참으로 진귀한 장면이었습니다.

왜 이 아이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어린이라고 우길 수 있는 기회를 박차고 문제집을 들고 아빠와 단둘이 카페로 향한 것일까. 하지만 중학교 1학년이라면 새로운 학교에 가지 못한 채 5월을 맞이한 아픔(?)이 있는 아이구나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새로 맞춘 교복을 입고 새로운 학교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아이였을지도 모릅니다.

코로나19는 중학교 1학년 아이의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과 기회를 너무 많이 갉아먹은 듯했습니다. 학교 가기를 싫어하는 우리 아이들을 생각해서 그랬던지, 학교에 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어린이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는 곧 개학이 다가오는 설렘이 긴장감으로 변했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빠와 같이 수학 문제집을 들고 카페에 온 것만으로도 대충은 맘대로 짐작할 수 있었던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빠와 한참 동안 문제풀이 데이트를 즐겼습니다. 코로나19의 충격은 공통적인 아픔도 있는 반면에 처한 입장에 따라 아픔의 종류도 다양하고 크기가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교도 가고 싶고 친구들도 보고 싶은 첫 번째 유형의 아이라 생각했습니다.

누리고 있었던 것이 잠시 멈춘 것과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빼앗긴 기분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조금은 늦었지만 중학교 1학년 꼬마숙녀의 새로운 시작을 맘속으로 응원해 봅니다. 즐거운 어린이날, 5월의 시작과 함께 디어 새롭게 시작되는 것들이 하나 둘 보입니다. 오늘 개막한 프로야구 경기도 너무 반갑고, 내일부터 시작되는 생활 방역도 반가운 뉴스입니다.

순차적 개학을 알리는 뉴스에 아이들의 얼굴이 굳어지는 모습과 얼굴이 펴치는 부모의 얼굴이 대조적이었습니다. 어제저녁, 뉴스에서 인터뷰하던 초등학생의 말을 듣고 아내와 한참을 웃었습니다. "학교는 가기 싫은데 친구들하고 만나서 빨리 놀고 싶어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아이가 어디 너뿐이겠니, 대부분 그런 맘이니까, 어때, 공평하지'.ㅋㅋ, 학교는 가기 싫지만 친구들은 만나고 싶은 두 번째 유형의 아이를 보았습니다.


뉴스를 보고 있던 아들내미도 한마디 합니다. "난 학교도 가기 싫고 친구들도 만나기 싫어!", 엄마가 화답을 합니다. "엄마는 다시 학교에 가고 싶고, 친구들도 다시 사귀고 싶어!", 지금의 아들내미는 절대 공감하지 못하는 말이지만 언젠가는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될 때가 분명 오겠지요. 학교도 가기 싫고 친구들도 만나기 싫어하는 세 번째 유형의 골치 아픈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ㅠㅠ

아빠가 한마디 더합니다. "얘들아!, 빨리 어른이 되어서 돈 벌고 싶지 않니?, 그때가 되면 분명 이런 대화를 하고 있을 거야, 회사는 가기 싫은데 돈은 벌고 싶어!, 무슨 말인지 알겠지!",ㅎㅎ. 살면서 계속 꼬리를 무는 것처럼 떨쳐버릴 수 없는 고민입니다. 무엇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어린이날 #개학 #학교 #학교가기 #커피인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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