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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골소년 May 07. 2020

외로움이 생산적인 시간이 될 때

외로움도 즐길 줄 아는 삶을 살아야지

  5월의 황금연휴가 지나고 조용해진 삼청동 거리, 늦은 오후, 어둠이 드리워지는 삼청동 거리를 혼자서 걸어보았다. 언제쯤이었을까, 가족들과 같이 거닐었던 거리를 어둠이 짙어 오는 시간에 혼자서 유유히 걸어보았다. 이미 어둠으로 가득 찬 불 꺼진 상점과 누군가 덩그러니 혼자 있는 불 껴진 카페가 벽을 마주하며 자리하고 있었다.

  상점 안에 있는 주인은 밖을 쳐다보지 않았다. 분명 처음에는 밖을 쳐다보았을 것이다. 길을 가는 손님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눈빛으로 주문을 걸었을 것이다. '바쁘지 않으시면 들어와서 커피 한잔하고 가시지요?', 점점 알게 되었을 것이다. 길 가는 사람들은 간절함의 주문에 걸려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마음 내키는 곳으로 자유롭게 향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있는 카페도 있었지만, 손님이 없는 카페로 들어갔다. 그리고 누군가를 기다린듯한 카페를 지키는 사람의 두 눈과 마주했다. 다양한 손님을 경험했을 눈은 미소와 함께 반가움으로 다가왔다. 눈을 마주하며 건네는 인사는 가라앉은 서로의 마음에 에너지를 주는 듯했다. 지독하게 외롭다고 느껴지는 날 손님이 없는 카페를 찾아갔다.

  혼자서는 절대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한 곳을 카운터에 혼자 앉아 있는 사람에 끌려 들어가게 되었다.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혼자 있는 적막함을 깨뜨리고 타인에게 위안이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들어선 곳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의 씁쓸한 맛은 인적이 드문 어둑어둑해지는 길거리의 풍경과 같은 색으로 전해졌다.

  혀에서 빈속을 깎아내리듯 넘어가는 아메리카노의 진함은 아직은 더 살아봐야 하는 맛으로 느껴졌다. 허기짐으로 더했던 것일까, 소주의 쓴맛처럼 강하게 느껴지는 씁쓸함은 아직 삶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듯, 언제쯤 혼자 마시는 아메리카노 커피의 맛이 달달하게 느껴질까. 살면서 소주가 달다고 느껴본 적이 없는 것처럼 커피는 늘 쓴맛이 강했다. 어느 선배가 소주가 달게 느껴질 때 인생의 참맛을 안다고 했지만, 어느덧 인생의 쓴맛에 익숙한 아재가 되어버렸다.

  살다 보면 혼자 있는 시간이 불안을 넘어 두려울 때가 있다. 그래도 마음에 끌려 혼자 찾아 간 카페의 구석진 자리를 찾아, 어두운 조명 아래 짙은 커피 한 잔으로 허우적거리는 모양은 싫었는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가장 잘 보이는 창가 쪽 제일 밝은 조명 아래 자리를 잡고서는 하나 둘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방전된 듯한 마음을 사람에게서 채워보기라도 하듯.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연인들, 친구와 수다를 떨며 걸어가는 사람들, 뭐가 그리 바쁜지 무단횡단을 감행하는 사람, 오늘도 바쁜 시간을 쪼개고 사람들을 만났을 것이다. 바쁠수록 마음이 공허해지는 것과 뜻하지 않은 지나친 여유로움에서 오는 외로움은 뭐가 다를까. 공허함과 외로움은 채워지지 않는, 풀지 못하는 숙제처럼 늘 삶의 가까이에 있었다.

  조명 아래, 짙어지는 어둠 사이로 타고 흐르는 익숙한 노래의 가사가 귀어 들어왔다. 익숙한 노래지만 장소와 시간, 유독 그날의 감정에 따라 다르게 들렸다. 나지막이 다독이듯, 외로움을 채워주듯 적당한 볼륨을 타고 들리는 노래는 대중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가 있었다. 외로운 느낌으로 들리는 노래 가사는 삶의 이야기가 녹아 있었다. 그날의 작사가는 어떤 마음으로 어디에서 노랫말을 지었을까, 지독한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생산된 가사처럼 들렸다.

  뜨거운 커피가 식어 가듯, 뜨거웠던 외로움의 온도도 점점 내려갔다. 어느새 외로움의 쓴맛을 커피잔에 남아있는 양만큼 가슴속으로 삼켜버렸다. 외로움에 익숙해져야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아가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시간을 할애해야 할까. 카페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보이는 데로, 생각나는 데로, 느끼는 데로, 적어 보았다.

  삶의 먹먹함으로 머물렀던 공간에서 느꼈던 생각들이 과연 지금 들리는 노랫말처럼 생산적인 시간의 결과물로 변할 수 있을까. 나와 상관없이 길 가는 사람들을 보며, 누군가의 외로움의 창작물인 노래를 들으며, 외롭다고 느끼는 것을 무엇으로든 표현할 줄 알아야 그것도 일종의 생산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던 외로움이 가득찬 노래 가사가 더욱 멋스럽게 들리는 것처럼 새로운 동력이 되는 것을 느꼈다.

  외로움을 상쇄시킬 목적으로 사람들이 가득 찬 카페를 찾아들어갔더라면 과연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고 나올 수 있었을까. 쫓겨나듯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내가 처해있는 환경보다 상대적으로 나을 거라는 기대감에 찾아간 거리에서, 역설적으로 외로운 공간으로 찾아들어가게 되었다. 희미하게 보이는 별을 쫓아, 밤하늘을 보며 그 가페에 가길 잘했다는 생각으로, 외로움은 그저 견딜만하다는 것을 실험이라도 해보듯, 잠시 외로운 생각에 빠져있던 카페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카페를 찾아 두리번거리던 좁은 보폭과 달리 집으로 향하는 걸음의 보폭은 조금 더 넓게 힘차게 가져갔다. 지금과 같은 보폭과 속도로 걸어가야지, 어깨에 맨 가방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가벼움으로. 나의 외로움에 대한 느낌을 기록할 수 있었다는, 생산적인 시간을 보냈다는 기쁨으로. 그리고 외로움도 노래 가사처럼 누군가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생산적인 소재거리가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외로움도 삶의 일부라면 익숙해야 외롭지 않겠지'라는 마음으로 걸어가야지...

#외로움 #익숙 #생산적 #커피인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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