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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골소년 May 08. 2020

아빠, 같은 가게가 왜 이렇게 많아

  어제저녁, 늦은 저녁밥을 먹고 아이들과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서 오고 갔던 아이들의 얘기가 잠들기 전까지 귀에서 맵 돌았습니다. "아빠, 버틸만해?", 질문도 간결했고 답도 간결했습니다. "아니, 너무 힘들어!", 아빠의 즉답에 아들은 당황하듯 웃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답변치곤 너무 빨리, 솔직한 마음을 드러낸 아빠의 대답에 당황했던 것일까.

  만약, 다르게 답을 했으면 어땠을까.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아빠가 알아서 할게", 답은 달라도 어쨌든 아빠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했던 투박한 대화법으로 인해 서로의 거리를 멀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 때문에 친구에게 얘기하듯 편하게 답했습니다.

  '얼마나 힘든지 알아, 그만두고 싶고 벗어나고 싶어, 그리고, 정말 하기 싫다고, 그러니까 귀찮게 하지 말고, 좀 내버려 둬...', 한동안 힘들 때마다 다른 사람이 물어보기도 전에 선전포고처럼 먼저 내 뱉는 말들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정도는 아니까, 힘들다고 투정은 그만 부리라는 듯이, 그런 식으로 먼저 뱉어버리지 말라는 의미처럼, 아들이 건넨 말은 친구처럼 위로를 해줄만큼 컸다는 듯, 기특함으로 다가와 잠시 지쳐있었던 심장을 뛰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근데, 너무 걱정하지 마,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어"라는 말을 다하지 못한 여운은 그냥 남겨 두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정도 질문을 할 정도라면,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아는 것으로 믿고. 아들이 했던 얘기를 잊지 않아야 된다는 다짐을 하며, 아이들에겐 고향과 같은 경복궁 서촌의 밤길을 같이 걸었습니다.

  느린듯 하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는 서촌 길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즘엔 얼마나 많이 바뀌어 있을까, 아니 얼마나 더 같은 것들로 채워져 있을까, 아이들이 좋아했던 놀이터 갔았던 장난감 가게와 꽃집은 모두 사라졌고, 대부분 어른들이 드나드는 곳으로 변했습니다. 한때 크레파스 색깔처럼 유기적인 관계인양 놓여 있었던 가게들은 같은 색으로 채워졌습니다. 같은 색깔의 상점들이 즐비해 있는 것을 보며 아들이 질문을 했습니다. "아빠, 같은 가게가 왜 이렇게 많아", "그러게, 오늘 보니까 왜 이렇게 많니",라며 답을 하면서, '다들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전과 같은 길이었지만 사라진 것에 대한 추억으로 변해버린 공간을 그리워하며 걸어갔습니다. '여기는 꽃꽂이를 배우던 꽃집이 있었던 자리였는데 밥집이 되어버렸고, 여기는 장난감을 사기 위해 들렀던 곳인데 술집이 되어버렸네', 아이들끼리 하는 얘기를 듣고 있자니 마치 중년의 친구들이 동창회를 마치고, 초등학교 골목길을 회상하듯 걸어가며 나누는 대화처럼 들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아이들이 먼 훗날 동창회를 한다면 골목길 공통의 추억은 없을 것 같은 생각에 씁쓸함이 느껴졌습니다.

  지금의 속도로 세상이 변해간다면, 어쩌면 '동창회'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이나 네이버 사전에 뜻풀이쯤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아니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듣는 옛날 얘기처럼 전해질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같은 학교를 나온 선후배들이 모여서 친목을 도모했던 모임을 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공부만 하게 되고 학원 친구들하고 더 친하게 되면서, 학교 친구의 얼굴을 못 알아보게 되어 모임이 점점 퇴색되었단다".ㅠㅠ

  아들과 잠시 대화를 이어갔던 상점의 다양화는 점점 더 멀어지는 이상적인 얘기처럼 되어갔습니다. 상점의 색깔은 마치 커가면서 늘어났던 크레파스 색깔처럼 12색에서 24색으로 숫자는 늘어났지만 같은 색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상점의 획일화에 한몫을 하게 된 사람으로서 아이들에게 면목이 없었습니다. 공무원을 최고의 직업으로 선망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양성을 어떻께 설명해야 될까, 왜 이렇게 같은 가게가 많아졌을까, 아빠들이 알아서 한다고 했던 게 죄다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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