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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골소년 May 28. 2020

1인 시위자일 가능성이 농후한 복장

 청와대 앞을 지나 삼청동으로 가기 위해 골목길을 빠져나와, 청와대 사랑채 앞으로 들어서자 낯선 시선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목적지를 물어보았습니다. 순간 낯선 사람이 다가오니 갑자기 몸이 움츠려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스크를 뚫고 나오는 메마른 질문을 받았습니다.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혹시 1인 시위하러 오셨습니까".

 청와대 경비근무자의 질문에 애써 웃음을 보이며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그냥 지나가던 길입니다". 처음 걷는 길이라면 적잖이 당황했을 텐데, 일터로 가기 위해 매일 같이 걷는 길에서 비슷한 질문을 자주 받아본 것도 경험이 되었는지 웃을 수 있는 여유도 생겼습니다. 훅 들어오는 당혹스러운 질문에 멋쩍은 웃음으로 넘겼지만, 사실 속으로는 웃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처음 받아보는 낯선 질문이 한참 동안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단체 집회가 금지되었지만, 여전히 1인 시위자는 눈에 띄었습니다. 집회가 한창일 때는 집회 참가자로 보이고 요즘은 1인 시위자로 비치는 나의 모습을 지나가는 길에 있는 카페의 통유리 창 앞에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슈퍼에 담배 사러 갈 때도 단정한 복장으로 가야 된다는 친구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정돈되지 않은 머리를 한채 운동복을 입고 맨발에 슬리퍼를 끌고 가면, 주인아저씨의 눈빛과 잔돈을 거슬러 주는 태도가 다르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좀 살아보니 그러했습니다. 복장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자칫 선입견에 좌우될 수 있지만, 그러나 첫인상은 복장에 따라 흔히 좌우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디를 보아서 내가 1인 시위자일 가능성이 농후해 보였을까, 검은색 운동화를 신고 검은색 청바지에 남색 점퍼 차림, 그리고 어깨에 국방색 가방을 둘러맨 채 유리창 앞에 서있는 나의 모습을 보며 다음에는 정장을 차려입고 지나가면 어떻게 질문을 할까라는 생각으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발길을 옮겼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나중에 청와대 부근으로 나들이를 오실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복장에 신경을 쓰든지 그렇지 않으면 집회나 시위 참가자인 양 질문을 받더라도 당황하거나 화내지 않을 자신이 있는 분들은 편한 복장으로 오셔도 될 듯합니다(물론 농담입니다). 종종 화를 내시는 분들을 봐왔기 때문에 막상 질문을 받아보면 기분이 참 묘합니다.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경비근무자의 나이에 따라 같은 질문을 받을 때의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연배의 근무자가 목적지를 물어보면, 접대성 웃음을 머금은 채 공손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려 보이는 근무자가 같은 질문을 하면 조금은 짜증 섞인 말투와 얼굴빛으로 변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잠자고 있는 꼰대 기질인가, 어린 사람이 바른 소리를 하면 반항기로 치부되던 '어린놈의 새끼가 감히'라는 말..., 그 말을 수없이 들었고 주채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신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어감에도, 나 또한 너그럽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치는, 거칠고 위험한 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며 서있었습니다.

 그렇게 길들여졌던, 한없이 움츠렸던, 아직까지 몸이 기억하고 있는 꼰대 기질의 잔재가 언제쯤 없어질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이 나이 들어감의 서글픔의 표현이 아니라, 어린 사람의 입바른 표현을 나이로 눌러버리려 하는 꼰대 기질의 꿈틀거림을 서글퍼해야 되지 않을까, 마음이 진짜라는 것을 언제쯤 수긍할 수 있을까...

 잠시 후 청와대 사랑채 앞, 무지개동산 분수대 앞에 서있는 '1인 시위자'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복장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저 평범한 옷차림과 생김새였습니다. 그런데 저들을 저기에 서있게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 무슨 목적으로 혼자서 서 있을까. 1인 시위자와 같은 복장을 한 일반 시민의 눈으로 잠시 지켜보았습니다.

 목적은 달랐지만 꽉 막혀 있는 듯한 답답함을 표시하고 싶은 마음은 1인 시위자와 같이 간절했기 때문이었을까. 그 들의 간절함을 그저 바라보는 방관자로 그냥 지나칠 것을 생각하면 오늘의 웃음은 앞으로 나오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당분간 지나칠 때마다 '1인 시위자'로 비췄던 모습이 떠오를 것 같았습니다.

 1인 시위는 누구나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권리니까, 1인 시위자를 막을 명분이 없다면, 서로 솔직해졌으면 하는 마음에 경비근무자의 멘트를 이렇게 바꿔 보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하며, 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다시 일터로 향했습니다. "날씨가 좋으니 나들이 나오셨나 봐요?", "아니요, 날씨도 좋으니 더 더워지기 전에 1인 시위하러 왔습니다." "네, 그러하십니까!, 딱한 사정이 있다면, 저도 같이 응원해 드리겠습니다!, 힘내십시오"

#시위 #시위자 #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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