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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골소년 May 29. 2020

위기가 당기는 힘에 흔들리지 않는 힘


 지고 나면 초라한 꽃잎처럼 지금 눈앞에 보이는 건, 지난날의 기대로 가득 찼던 허상만이 남아 있는 듯하다. 꽃을 노래하며 힘든 고비가 빨리 끝나기를 소망하였는데, 코로나의 시작은 머릿속에 온통 어려움, 힘듦, 외로움이란 단어들로 점점 채워졌다. 그렇게 코로나는 제2의 삶에 대한 정체성에도 엄청난 혼란과 충격을 가하고 있었다.

 퇴직하는 순간, 동료들과 술 마시고 밥 먹고 하며 했던 얘기는 귓가에서 점점 멀어졌다. '가끔씩 보자', '연락은 하고 살자'라며 끌어안으며 헤어지던 순간, 그 모든 인간관계는 끝이 났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더 이상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소외되고 우울함을 호소하며 심리적으로 급격히 위축되는 시간을 견디고 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수시로 불안하다. 그렇다고 마음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만 볼 수 없다. 그것마저 무너지면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절대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무엇이라도 해야 된다. 정년을 채우지 못하는 퇴직 이후의 삶은 직장 생활보다 길기 때문에 스스로 자각하고 설계하고 길을 찾고 다듬는 과정을 통해 정체성의 위기를 지독하게 홀로 극복해야 한다.

 때론 외로움도 흘러넘칠 정도로 호되게 겪어야 새로운 정체성이 정립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넘어지지 않으려면 균형을 통해 중심을 잃지 않아야 됨을 되새긴다. 흔들리는 정체성을 표현하고 자세히 기록하는 것도 중심을 잡아가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연일 곱씹어 본다.

 한꺼번에 찾아온 위기, 정체성의 혼란과 코로나의 위협, 그리고 사업의 존폐가 걸린 아주 위험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버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흔들리지 않는 힘을 키우기 위한 방법으로 책 속의 글귀와 이웃들의 생활과 생각을 사진과 글로 표현한 곳을 찾아다니며 에너지를 얻는다.

 흔들리지 않는 정신적인 안정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기준점이다. 그리고 버틸 수 있는 수단..., 지금은 위기에서 대단한 기회를 찾기보단 버틸 수 있는 수단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주위의 부추김과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얼마 전 자영업자 긴급자금 대출을 신청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 자격심사에서 승인이 났다는 전화를 받았다. 기쁘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좋게 받아들인다.

 코로나 초기까지만 해도 생존을 위한 대출이 과연 필요할까라는 의구심이 불편한 현실로 닥쳤다. 그것도 신용등급이 좋아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신용이란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오늘 그런 능력을 인정받았다. 신용과 빚이 일정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신용은 빚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이 되고 빚은 삶의 일부가 되어 위기를 감당해 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부의 축적이 아니라 빚을 갚기 위해 살아가야 되는 인정하기 싫은 삶의 원리를 찾은 것 같다. 이것도 어려울 때 잡아야 되는 기회일까, 기회다. 이익을 키우기 위함이 아닌 당장 시급한 생존을 위한 대출금의 크기를 저울질당함에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이런 기회, 수단에 끌리는 것을 무작정 부정할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이다.

 정체성의 혼란, 코로나의 위협, 사업의 존폐가 걸린 아주 위험한 시기에 빚이라는 새로운 부담을 희망처럼 떠안게 되었다. 설령 빚은 부담으로 남더라도 코로나는 영원히 사라질 날을 기대하며, 빚이 빛이 되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자. 자꾸 흔들어 보아라, 누가 먼저 꺾이는지, 흔드는 것만큼 부러지지 않게 막춤이라도 추어댈 테니..., 춤추는 사람들로 가득한 울창한 숲이 보인다. 햇빛도 쨍쨍하고, 오늘도 견딜 수 있음을 기뻐해야 할 날이다.

#정체성 #위기 #대출 #힘 #삶 #코로나 #자영업자 #긴급자금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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