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옛골소년 Jun 01. 2020

골방, 자취방의 추억

토요일 늦은 밤, 가끔씩 아들내미의 방은 가족들의 이야기 방으로 변신합니다. 낮 시간에 햇볕이 잠깐 들다가도 금세 어두운색으로 변해버리니 엄마, 아빠의 낮잠 자는 곳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다행히도 아들내미는 자기 방이라는 주장을 완강하게 표현하며 가족들을 내쫓아 버리지 않습니다. 구석진 방이 주는 묘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어릴적 동네 친구집에 놀러 가면 보통은 누나나 여동생의 방은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있었고, 친구들의 방은 안쪽에 으슥한 귀퉁이에 있었습니다. 특유의 남자 냄새로 가득 채워진 곳, 친구들의 방은 늘 어두운 기운과 함께 터널을 지나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친구의 누나가 들려주는 귀신 이야기는 참으로 다양했고, 아늑함이 느껴지는 특유의 골방 분위기와 함께 공포감도 최고조에 다다랐습니다. 그 많던 귀신 이야기는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동생들을 놀려주는 재미에 한창 빠진 채, 장난기 가득했던 얼굴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가끔씩 아이들이 아빠에게 귀신의 존재를 믿느냐는 질문을 하면, 귀신은 누나들이 남동생들을 골려주거나 담력을 키워 주기 위해 탄생시킨 창조물이라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동네 형들에게 귀신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창조자인 친구 누나들의 표현력은 아주 섬세했고 사실적이었습니다.

 공포감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야말로 끔찍했습니다. 걸어서 잠깐이면 도착하던 집이 왜 그리 멀게만 느껴졌던 지, 그리고 친구 누나의 결정적이 한마디..., '집에 갈 때, 절대 뒤돌아보면 안 돼'ㅋㅋㅋ, 그리고집에 도착하자마자 달려갔던 마당 외진 곳에 있는 화장실은 밤이면 왜 그리 멀게만 느껴졌던지, 모든 것이 멀게만 느껴졌던 거리감, 그 후로도 며칠 동안은 밤에 가는 화장실은 단단히 마음의 무장을 하고 가야 했었고, 귀신의 대부분은 깊은 산속이 아니라 학교나 동네 뒷산, 그리고 낡고 냄새나는 화장실에서 아주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귀신 이야기의 후유증은 상당했고 오래갔습니다.

 그리고 누나가 둘인 친구 집에서 귀신 이야기를 듣는 날에는 두 사람의 입에서 번갈아가며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생생하고 완벽하게 묘사되는 표현에 의한 극강의 공포심 때문에 집에도 가지 못한 채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미안해서 인지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주기도 했었는데, 그 당시 누나들은 김치볶음밥에 무엇을 넣었는지, 아무튼 공포감을 잊게 하는 최고의 기분전환 메뉴였습니다.

 지금은 아무리 흉내내 보아도 그 맛이 나지 않습니다. 공포감과 함께 했던 배고픔 때문이었을까, 그 시절의 누나들이 해 주었던, 친구의 으슥한 방에서 먹었던 김치볶음밥은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면 맛볼 수 없는 맛이 돼버렸습니다. 지나고 나니, 그 시절 골방이 주었던 포근함과 인터넷이 없었던 시절의 이야기 놀잇감으로 가능했던 정감 어린 추억이 되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생활했던 자취방도 정감이 가는 곳으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운이 좋은 친구나 형편이 좋은 친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자취집은 골목길 깊은 곳에 위치하였고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도 점점 더 깊고 습하고 햇볕과 거리가 먼 어두운 곳으로 방을 찾아 들어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계모임 친구들 모임에서 다음에 같이 가보고 싶은 여행지로 친구들 자취방 투어를 제안했던 적도 있습니다. 하룻밤 묵을 수는 없지만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20여 년이 훌쩍 가버린 지금, 그 시절 친구들과 같이 했던 공간이 남아 있기는 할까, 가끔씩 친구와 함께 머물렀던 자취방이 생각나는 건, 청춘을 잠시 가둬 놓았던, 그 냄새 나는 곳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던 향수 때문일까, 같은 공간이지만 주인이 거주하는 곳과는 조금 동떨어졌을 뿐인데, 좁은 집 마당을 멀리 돌아 외진 느낌, 하지만 아늑함이 있는 친구의 자취방은 그런 곳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햇볕 쨍쨍한 앞날을 꿈꾸었고, 햇볕이 드리워진 안방에 누워있는 임대인의 꿈을 키웠을 지도 모릅니다. 그곳에서 오고 갔던 이야기들은 인생의 무게를 짊어질 묵직함으로 가벼운 이야기들도 무게가 더해졌고 때론 소주처럼 쓰기도 했습니다. 널브러진 소주병과도 잘 어울렸고 병에 가득한 담배꽁초들의 역한 냄새로 가득했지만 젊으니까, 그 시절의 부족함은 절대 궁색하지 않음으로, 그래서 추억으로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환기시켰던 곳이었습니다.

 토요일 저녁, 그때의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같이 먹던 순대와 어묵, 꽁치김치찌개를 대신해 컵라면을 접이식 밥상 위에 차려 놓고 아이들과 가족들의 이야기방으로 꾸며졌습니다. 친구인양 아이들의 고민거리를 들어주고 방법을 찾아보자 하며, 소주가 빠져서 다소 밋밋하지만 아들내미의 방은 그 시절의 친구의 골방처럼, 골목길 외진 자취방처럼 변해갔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들내미의 방을 들어서면 그 시절의 냄새와 향수가 납니다.

#골방 #자취방 #추억

작가의 이전글 사랑하며 마시는 커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