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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골소년 Jun 03. 2020

식물과 보내는 시간

 식물의 종류에 따라 조금은 다르지만 보통의 물 주기는 일주일에 한번, 월요일이면 약속된 시간에 시작된다. 식물과 시간 약속을 한 건 아니지만, 왠지 기다리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나 스스로 정한 약속에 의해 식물의 성장 속도와 생명 연장의 꿈이 걸려있다.

 언젠가는 텃밭에 야채를 심고 자급자족의 삶을 사는 것이 꿈이니, 나의 식물 친화력을 시험해 보는 좋은 경험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식물의 성장과 생명에 직결되는 것이니 절대 귀찮아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런데 여러 가지 식물 중에서 눈길이 더 가는 녀석이 있다. 손이 조금 더 많이 가는 이유에서 그랬을까. 그리고 보기보다 잎이 쉽게 부러진다는 사실을 몇 번의 실수를 반복해서 알았고 그제서야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게 되었다.


 공중에 매달려있으니 이오난사와 수염틸란드시아에 물을 주는 것이 귀찮을 때도 있고, 그런 마음으로 시작하는 일은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상처투성이다. 매달려있는 것을 내려서 물에 담갔다가 물기가 어느 정도 마르면 다시 매달아 놓는다. 별일 아닌 것이 귀찮을 때가 있다.

 귀찮게 여김은 일의 강약이 아니라 마음에 달려 있었으니, 그 결과는 상처를 남기곤 했다. 그런데 허공에 매달린 것을 내려서 물에 담그는 순간부터 기분은 달라진다. 흙에 뿌리는 둔 것도 아닌것이, 오직 수돗물의 수분만 섭취해가며 커가는 걸 보면 생명의 놀라움과 신기함이 더해진다.

 그래서 식물과 함께 있는 일상에서 비가 오는 예보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맹물 같은 수돗물에 비하면 비는 달콤한 외식이겠지, 비가 온다는 예보에 퇴근 전, 이오난사와 수염틸란드시아를 밖에 있는 남천나무에 매달아 놓았다. 그런데 그동안 물에 담가두는 과정에서 잎끝이 상한 것을 보니 조심성 없이 저질렀던 지난 일에 마음이 불쾌했다.

 아무리 조심을 한다고 해도 손에 의해 잎끝이 많이 상했다. 상처를 주었으니 그래서 눈길이 더 가는 녀석들이다. 집에 가는 길에 비가 내리기를, 식물들이 빗물을 맘껏 받아먹기를 기대하며 일기예보를 검색했다. 비로 인해 기분의 처짐만 생각했던 것에 비하면 비를 기다리는 것으로 기분이 좋아짐을 느끼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퇴근이 늦은 아내의 모습을 보며 고생했다는 말보다 비가 오냐는 질문을 먼저 했다. '지금은 안 오는데, 아마 안 올걸', 아내의 예감이 빗나가길 바라며, 뉴스의 일기예보를 지켜보았다. 비를 기다리며 남천나무에 매달려있는 이오난사를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식물에게 나의 생각과 기다림을 할애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구나...

 결국 아내의 말처럼 밤사이 기다리던 비는 내리지 않았다. 뜨거운 햇볕을 쬐며 남천나무에 매달려 아침을 맞이하고 있는 이오난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기다리던 빗물 외식은 못했지만, 바깥공기에 흠뻑 젖은 외출이라도 진하게 했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지', 그리고 늘 먹던 수돗물을 빗물처럼 흘려주었다.

 햇볕이 따가운 맑은 하늘을 보며 다시 비가 오기를 기다린다. 어떻게 시작된 인연인지 기억은 없다. 작은 식물이지만 운명처럼 내 손으로 들어왔으니 일주일에 한 번씩 있는 교감을 즐겨본다. 거창한 성장을 기대하며 기다리지 않는다. 상처 준 잎이 아물기를 기다리며, 미세하지만 새로운 것이 싹틈을 맞이하는 맘으로, 오랜 시간을 같이하고 싶을 뿐이다.

#이오난사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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