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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골소년 Jun 05. 2020

자영업자생존자금 지원 안내로 인한 호들갑

  '자영업자 생존 자금 지원'안내를 위해 방문한 종로구청 직원과 나눈 짧은 대화에서 다 잃은 것 같은 지금 이 순간에 확실하게 건진 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구청 직원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래도, 마음은 회사원일 때 보다 편하지 않으세요', 인정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다지 달갑지 않은 현실의 결과였다.

  회사원이라는 직업으로 오랜 세월을 보낸 후 그동안 몸부림쳤던 사무실을 떠나 다른 세상으로 뛰쳐나올 때, 보통은 자신의 그런 행동에 합리적인 이유를 달게 된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금방 알게 된다.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관심을 보인 게 아니라 조직에서 이탈한 나약한 인간의 하나쯤으로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사람이 유명을 달리한다 하더라도 그 아픔이 얼마 가지 않고 곧 사라지는 것처럼, 회사에서 사라져간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였던 나약한 인간의 잔상은 그보다 훨씬 빨리 기억에서 사라진다. 어쩌면 사이비 직업과도 같았던 것을 과감히 버리고 진짜 직업을 찾기 위해 뛰쳐나간 한 인간의 생존기를 구경하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구경꾼들에게 보기 좋은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가면을 썼다, 벗었다를 반복한다. 하지만 그것도 금방 알게 된다. 이미 그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나 혼자, 여전히 그들을 의식하며 궁색하지만 타당한 이유를 찾아가며 구차하게 핑계거리를 달고 있다는 것을, 곧 어리석은 웃음으로 거울에 비친 나를 보게 된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나 자신과 삶에 대한 불만을 없애기 위해서 여기에 뛰어들었으니, 비록 몸과 마음은 나이 들어가고 있지만 어린아이의 호기심과 같은 것을 최대한 끄집어 내야 한다. 새로운 것의 경험을 통해 진짜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꿈꾸고 있다. 코로나라는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으니 실패를 먼저 경험하고 성공을 꿈꾸고 있는 실패유예 상태가 돼버렸다.

  그런데, 실패와 성공이란 단어가 몹시 눈에 거슬린다. 단지 진짜 직업을 찾고 있는 과정이고 얼마간의 시간이 다시 지나야 긴 고통의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실패가 아니라 유예상태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동안 맛볼 수 없었던 삶의 기쁨과 흥미,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미소를 띨 수 있는 자기만족감 정도만 가져갔으면 하는 바람이 진정으로 내가 꿈꾸는 성공이라고 말하고 싶다.

  갇힌 공간이 아니라 살벌하게 노출된 진짜 공간에서도 여전히 다른 사람들과 다시 비교당하고 재평가되기를 거듭할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상처를 입고 다시 아물고 피딱지가 떨어지는 아픔이 수없이 반복될 것이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내 삶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그것이 아마도 나를 행복하게 해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그동안 무언가를 가지기 위해 길고 어두운 고통의 시간으로 터널을 지나, 쾌락을 위해 몸에 인공적인 것들을 들이키며 어른이 되기를 얼마나 갈망했던가, 그렇다고 해서 자신 있게 근본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고, 꿈꾸고 있었던 어린아이의 궁금증을 채웠다는 희열을 느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다시 잠자고 있던 꿈틀거리는 어린아이의 호기심을 흔들어 깨워 본다. 보호막도 없는 낯선 환경에 부딪혔을 때 맹목적이거나 본능적인 방법에 휘둘리지 않고 자발적으로 문제해결방법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사고하고, 행동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 맨몸뚱이로 살벌하게 노출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런 마음을 먹어야만 남은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고, 긍정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살아가는 것이 단순히 무덤덤하게 받아지더라도 그때야 자만심도 모두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앞으로 내가 새롭게 경험하는 것들로 얼굴이 화끈거리는 부끄러운 모습이 보인다 하더라도, 그래도 그 사이에 한 번쯤은 나를 우습게 만들지 않고 나를 인정하고 힘을 북돋워주는 일을 겪게 되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여유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구청 직원의 걱정 어린 말 한마디에 희망적인 호들갑을 떨어 본다.

#자영업자 #자영업자생존자금 #삶 #퇴사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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