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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골소년 Jun 08. 2020

어느 일요일의 아버지에 대한 일기

 오랜 기억 속 어느 일요일 이른 아침, 따가운 햇살과 함께 모자를 눌러 쓰고 집을 나섰다. 부모님의 농사일에는 평일, 휴일의 개념이 없다.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부터 부모님의 농사일 돕기는 시작되었고, 농번기 시골의 일요일은 온 가족이 함께 나들이하듯 새참을 준비해서 논과 밭으로 향했다.

 삼형제 중 막내였고 형들과의 많은 나이 차이로 농사일에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그래서 풀 뽑기나 잔돌을 주워서 나르는 일로 농사일 돕기는 놀이처럼 시작되었다. 집중력은 오래가지 않았고 개구리를 잡고 노는 땡땡이를 피운다 해도 아버지의 눈에는 막내아들의 행동이 눈에 들어올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부터 노동의 강도는 점점 커졌다. 나들이, 놀이라는 단어는 자취를 싹 감춰버렸다. 자라면서 아버지의 농사일 돕기의 의미는, 그러니까 손에 흙 묻힐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여기를 벗어나라는 메시지였다. 학업과 농사일 돕기 경험은 직장에서도 멀티플레이어가 가능하게 했던, 아버지의 가르침에 대한 결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쉬는 것에 조금의 자비로움도 없었던 아버지, 대학생이었던 형들은 노가다를 해도, 이렇게 무자비하게 일을 시키지 않는다며,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어 보이기도 했다. 무임금 노동력을 동원한 날에 해치워야 될 그날의 목표치가 있었고, 도달하기 위해서 악덕 고용주가 되어야만 했다. 아버지의 일요일은 아주 짧기만 했다.

 그런 아버지의 무자비로 수업 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부작용이 연출되기도 했지만, 농사일을 거들며 체력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깡다구를 키우게 했다. 그런 깡으로 조금씩 철이 들었고, 아버지의 소원대로 첫 직장은 고향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농사일을 거드는 일은 서울로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삶의 일부였다.

 직장의 스트레스로 인해 일요일의 의미는 점점 달라졌다. 재충전을 위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쉬어야 된다는 확고함으로 얼굴은 점점 굳어져 갔다. 그런 궂은 마음으로 화창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논으로 가는 마음은 맑은 날이 별로 없었다. 반면에 씨앗을 뿌리는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마음은 한결같이 맑고 분주했다.

 그렇게 한참을 화창한 일요일이 농사일을 거드는 것으로 날아가 버린다는 생각으로 괴로워했다. 그 모습은 좁은 논두렁 길을 따라 마음의 무게에 고개를 지탱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는 모습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작은 도랑을 따라 흘러가는 냇물을 철로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며 여전히 일할 마음이 내키지 않음에 현기증을 느끼던 시절,

 철로 위에 피어오르던 아지랑이, 사람을 피해 급히 달아나는 개구리, 논둑길에 억세게 자라고 있는 이름 모를 잡초들을 호미로 머리를 쳐가며 가던, 내 눈앞에 펼쳐진 화면들은 오직 '하기싫음' 하나였던 나의 맘과는 달리 참으로 다양했다. 강아지는 목줄이 풀린 자유를 만끽하며, 그런 나의 마음과는 정반대로 마냥 즐겁게 논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논둑에 앉아 있는 새를 발견하고는 미친 듯이 쫓아가는 모습에,ㅣ 잡을 수 없는 것을 하려는 행동에 '바보 같은 녀석'이라며 주절거리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일요일 화창한 날에 논둑길을 줄지어 가는 모습이 각자의 심리적인 상황을 묘사하고 있었다. 마음이 급하신 부모님, 목줄이 풀린 채 마냥 즐거운 강아지, 그리고 보이지 않는 목줄을 한채 끌려가는 나, 그렇게 논으로 가는 길은 서로의 다른 생각으로 격차를 벌려가며 점점 멀어져 갔다.

 멀리서, 고개를 숙인 채 부모님을 뒤따라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마치 강아지가 앞서서 사람을 당기듯, 보이지 않는 목줄에 의해 끌려가는 것을 알아차린 옆집 아재는 아침부터 막걸리 한 잔을 걸치신 모양이었는지, 다소 과장되게 온 동네가 떠나갈듯한 짓궂은 목소리로, 농사일을 도와주러 가는 모습이 대견하다며, 떠들썩하게 나를 응원을 해주셨다.

 한창 농사일이 바쁜 시기의 논으로 가는 길에는 그런 동네 아재와 아지매로 구성된 응원부대가 줄지어 있는 풍경이 연출되곤 했다. 잠시 후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바다와 같았던 들녘 앞에서, 그날의 심신이 지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부모님을 생각하는 각별한 마음으로 변하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 없다는 각오의 빠른 전환이 필요했다.

 새를 쫓아 달려가는 강아지에게 던졌던 '바보 같은 놈'이라는 단어가 어느새 부메랑처럼 날아와 내 귀에 꽂혔다. 부모님의 시간에 비하면 이런 날은 기껏해야 몇 번만 반복하면 되는 것을, 그나마 다행이었던건 들판에 있는 나의 모양과 같은 친구의 얼굴을 보며, 각자의 대견함으로 다소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계절이 통째로 날아가는 듯한 고통도 어쩔 수 없음으로 날려버려야 했다.

 정말 잔인하게도 농사일을 거드는 날은 맑고 쾌청했고, 바람이 불어 땀이 마르는 느낌이 좋았던, 딱 놀러 가기 좋은 시기와 겹쳤다. 다시 생각해 봐도 놀러 가기 좋은 날씨와 연애의 유혹에 마음이 휘둘린 채, 농사일을 거드는 것에 고개를 숙였던 논두렁길의 기억이, 옆집 아재의 응원에 잠시 묻혔을 뿐이지,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았던 철없음에 숙연해지기도 한다.

 이 무렵이면 그 시절의 모습들이 생각난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내 기억들의 일부 영상들은 가족들과 함께 했던 들판으로 생생하게 달려간다. 그리고 지금은 그 시절의 들판에 대한 추억이, 생각의 꽃으로만 피었다 사라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생생한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왜냐하면 아버지에 대한 몇 안 되는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 싫었던 농사일 거들기의 추억, 지금은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해 괴로워하고 있다. 아니면 젊은 시절 옆집 아재의 응원에 마음을 다잡는 듯한 떠밀림으로 부모님을 생각했던 것에, 여전히 핑곗거리를 찾아가며 날씨가 좋은 일요일에 선뜻 고향으로 향하지 못함을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

#부모님 #아버지 #일요일 #농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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