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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옛골소년 Jun 09. 2020

지극히 나의 것에 관한 기록을 쓴다

곤충과 꽃, 작은 곤충이 보이나요?

 길가에 조그마한 꽃이 피어 있다. 땡볕에 홀로 버티고 있는 모습이 몹시 반가웠다. 한 번쯤은 보았을 듯한 작은 곤충도 눈에 띄었다. 너무 작아 눈에 잘 보이지도 않았다. 작은 곤충을 눈에 담고 싶은 마음에, 곤충을 쫓으려는 눈은 빠르게 초점을 맞추려 아무리 힘을 써보지만, 노안이 된 눈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금세 지쳐버린다.

 욕심이 가시지 않았다. 핸드폰을 꺼내 다리가 저려올 때까지 꽃과 곤충을 하나의 사진에 가두려고 쪼그려 앉았다. 카메라 렌즈를 가까이 가져가면 초점이 맞지 않았고, 거리를 두면 너무 작아서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실망의 탄성이 세어 나왔다. '너나 나나 눈이 이래가지고서야', 자연을 느끼는 순간의 행복을 담을 수 있겠나.

 작은 곤충의 역동적인 움직임만 눈으로 가져가야 되는 아쉬움이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웃음으로 흘러나왔다. 6월 초인데 벌써부터 강렬한 빛으로 머리는 뜨겁고 실바람처럼 불어오는 바람도 뜨거웠다. 그래도 핸드폰을 붙들고 한참을 꼿꼿이 앉아 있었다. 그런 광경이 지나가는 사람들 중 꽃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는 몇몇은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모습을 상상하며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꽃밭에 앉아서 사진을 찍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지나치면 꽃을 놓쳐버릴 수 있는 길가에서, 단 한 송이만 피어 있는 꽃을 그것도 한참을 쪼그려 앉아 찍고 있는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길가는 사람들의 시선에 뒤통수가 따갑기도 했지만, 노안의 눈이 발견한 작은 곤충을 사진에 넣으라는 뇌의 지시를 받아, 손으로 열심히 기록하고 있는 즐거움에 푹 빠져있었다. 나의 유치한 목적을 알 리가 없는, 나만 즐길 수 있는 행복감이었다.

 요즘 들어 그런 모습이 스스로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언제부터 내가 식물과 곤충에게 그토록 관심이 많았던가. 그만큼 몇 달 전부터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자연에 대한 관심에 행복한 걸 보면 힘든 시기를 말해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쨌든 어느 순간부터 자발적 지시에 의해 나의 진짜 관심을 기록했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눈치 볼 필요도 없고, 뒤통수의 따가움 따위도 의식할 필요가 없다.

 어릴적 일기를 썼던 기억이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음을 아쉬워 했으니, 지금부터라도 나의 새로운 관심거리가 때론 집착에 가까운 행동으로 보여도 기록하는 재미에 맘껏 즐겨봐야지. 지금은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돼버린, 재미없는 내용으로 빼곡하게 채워진 업무노트 몇 권이 마치 삶의 기록인양 책상 서랍 안에 놓여있다. 그때는 남의 말과 지시를 기록하는 것에만 오로지 전념했었다.

 업무상 필요했었고 망각이라는 뇌의 순기능 때문에 곤란에 처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기록하는데 몰두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시자의 기억에도 없는 생뚱맞은 결과물을 탄생시켰고 뜻하지 않은 질책을 당하기도 했다. 곤란하지 않기 위해 기록한 것들이, 손가락과 목이 부러질 듯한 수고가 무색하게, 때로는 몹시 곤란하게 만드는 결과물을 났기도 했다.

 그런 기이한 경험을 몇 번씩 하면서 오히려 지시자의 뇌기능을 의심하기도 했다. 그리고 소심하게 절대 귀에 들리지 않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당신이 한말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런 지시를 하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게 부끄럽지 않냐며...', 지시자의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속도만큼 순식간에 부작용이 드러났다.

 나의 인지적 측면에 문제를 일으켜 논리적 오류를 낳게 했고, 현실을 부정적으로 왜곡하고 싶었던 역기능적 사고가 솟구쳤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소심함을 뛰어넘는 일종의 반기였다. 망각의 결과는 다름도 아닌 틀림도 아닌 모호한 결과물을 낳아, 속된 말로 '허공에 삽질'하는 일이 잦아들게 했다.

 설령 동일한 상황에 대해 지시자와 지시를 받는자의 해석이 다르게 나타나면 지시자의 역기능적 사고에 따라 일이 처리되고 결과적으로 현실이 부정적으로 왜곡되기 마련이었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사람만 있었던 건 아니다. 부하직원의 논리적인 오류를 막기 위해, 자기가 지시한 내용을 수첩에 빼곡하게 기록하는 상사도 있었다. 그런 기록의 습관은 부하직원의 인사고과 평가지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자기가 말한 것을 기록하고 잊지 않고 있는 사람은 지시를 받은 자가 혹시 다른 길로 가고 있지는 않는지, 중간 점검을 해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잘못된 업무지시를 남발하거나 망각하는 일이 잦은 순간, 서로가 헤어질 준비를 하는 전조가 되기도 했다. 스스로에게 지시한 것도 잊는 게 허다한데 남에게 지시한 것을 까먹지 않으려면, 그 사람을 잃지 않으려면 반드시 기록을 해야 한다.


 지금부터 내가 능동적으로 스스로에게 지시하고 자세하게 기록한 것들은, 시간이 흘러도 스스로를 곤란하지 않도록 성장하게 하는 삶의 소중한 기록이 될 것이다. 수없이 많은 시도 끝에, 드디어 그게 뭐라고, 작은 곤충과 꽃을 하나의 사진에 담은 결과물을 얻었다. 그리고 실물의 꽃과 사진 속의 꽃이 품고 있는 색깔이 같은 지 비교했다.

 최대한 자연의 실물에 가깝게 찍어야 했다. 그것은 앞으로 자연을 수단으로 해서 살아가기 위한 꽃과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나 할까, 힘든 시기에는 자연에 능동적으로 몰두하며 살아가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생각이다. 하나씩 하나씩 소소하지만 나만의 행복한 삶의 표현들이 기록되고 마음속 서랍에 쌓여가고 있다.

#꽃 #사람 #지시 #기록 #행복 #길 #곤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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