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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 Oct 19. 2021

아이의 욕구와 나의 욕구가 충돌할 때

나의 최선은 무엇일까요?



아이들과 지내면서 무언가 하고 싶은욕구가 올라올때가 있어요. 저는 그것이 나를 찾는 시간, 나를 드러내는 당연한 욕구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욕구가 올라올 때 자신을 자책하게 되어요.

'아, 나 애도 있는데 뭐하는 짓이야?

애도 제대로 못 보면서

애나 제대로 볼껄.'


그러면서 자신의 욕구룰 눌러요.

나의 욕구를, 그리고 나를 죽여요.

결국은 아이 때문에 희생하는거예요.


근데 정말 아이 때문에 내가 아무것도 못하는걸까요?

아이는,

핑계 아닐까요?


어떤것을 하고자 마음먹을 때

늘상 우리가 만나는 감정이 있어요.

바로 '두려움'이라는 감정인데요.


그 두려움에서 가장 헤어나오기 쉬운 방법이

환경탓, 남탓인것 같아요.


내가 못하는게 아니니

나는 무능함을 가져갈 필요도 없어요.

환경때문에, 다른 사람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것이니

나는 그냥 온전히 피해자가 되는거예요.


두려운데

두려워서 못한다는걸 인정하고 싶지는 않으니

괜한 사람 끌고와서

손안대고 코푸는 거예요.


할 용기는 없고

그렇다고 못하겠다고 얘기하기는 쪽팔리고

그러니 내가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면서

하지 않는 방법이 바로 남탓인거예요.

무언가 하고 싶은 욕구가 올라오세요?

정말 아이 때문에 못하는게 맞나요?

사실 저 역시 늘 이 지점에서

머뭇대고

멈춰서고

주저 앉아요.


그런데 그렇게 주저앉으면 어때요?

계속 생각나요.

생각만 나면 다행이게요?

그 원망이 다 애들한테 가요.


내가 너희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도 못하면서 살고있는데

이러면서 애들이 말을 안들으면 쳐잡아요.

정말 아이들이 엄마의 손길이 필요할 때도 있어요.

초창기 3년은 정말 그렇죠.

그런데 그 이후 애들 어느정도 자리잡고도 

그런 마음이 올라온다면

그건 그냥 내 두려움에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아닌 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차라리 나 두려워

나 나가기 싫어

그럼에도 선택해서 나가야지

그런 과정이 필요해요.


'두려워'

'두려워'

그 두려움을 인정하는 과정 하나.


그리고 그 두려움에서

내가 어떻할 건지 

택하는 과정 하나.


내가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당연한것 아니겠어요?

그 당연한 욕구에 죄책감 가지지 마세요.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 대로의 삶이 있죠.


그 테두리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나아 갈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엄마도, 일도

'완벽'하고 싶은 그 마음,

그 '완벽'에 걸리면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좋은 걸 줄 수 없는 것 같아요.


내가 가진 테두리 안에서 

최선을 다하며

내 두려움에 주저앉지 않는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어요.


내 마음의 진실이

나를 앞으로 나가게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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