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조바심이 아닌 시간이 많은 것을 해결해 줍니다.
한글쓰는 우리 둘째 아들.
아이들은 한글을 그림처럼 인식한다.
첫째 한글뗀답시고 18개월부터 덤볐는데
결국 지가 알아서 떼드만 ㅎㅎㅎ
나는 왜 아이가 한글도 모를 것처럼 불안해 했을까.
그럼에도 내가 또 그 시기로 돌아간다면
나는 아마도 똑같이 불안해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불안한 사람, 여전히 완전하지 않은 사람이
결국 '나'라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그런 사람임을 인정하기에
'불안'을 바라보고 멈추겠다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첫째 아이를 보며 전전긍긍 한글 때문에 마음을 졸이곤 했었는데, 놀랍게도 둘째는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어린이집에서 한글을 배워온다. 같은배에서 나와도 이렇게 성향이 다르구나. 아이의 다름을, 존재의 고유함을 두 아이를 키우면서 배워간다. 남들처럼, 누구처럼이 아니라 '내'가 '나' 그자체가 되어서 나의 길을 가야함을 아이를 통해서 배워간다.
아이를 키우며 나는 늘 같은 포인트에서 무너진다.
'불안', '조바심', '죄책감'
좀 더 나은 엄마임을 바라기에 공부도 하고 깨어있으려 노력하지만, '나'라는 사람 자체는 크게 변화지 않음이 새삼스레 놀랍다. 어쩌면 변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것조차 나의 '고유함'이기에.
불안도가 높은 것도 조차 나의 고유함이라면 바뀔이유도,
구지 변해야 될 이유가 있을까싶다.
(그럼에도 바꿀 수 있다면 바꾸고 싶은게 내 찐마음)
예전 같으면 '늘 똑같은' 나를
비난하며 땅꿀파며 청승을 떨었겠지만,
이제는 그럴 수 밖에 없는 나를 나라도 이해해줘야겠다 싶다.
어김없이 불안이 올라올 때면
아이들은 보채고 나는 폭발하는..
그런 시간들이 수도 없이 반복된다.
지만 그럼에도 그런 나를 바라 볼 수 있으니,
깨어날 수 있으니,
또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나만 아는 엄마일지라도,
여전히 아이들과 힘겨루기를 하는 엄마일지라도,
여전히 내가 편한게 가장 좋은 엄마일지라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설사 말뿐인 괜찮아일지라도,
그래도 괜찮다 나를 토닥여본다.
정말 수고 햇어요.
셀프토닥토닥
그 어떤 것도
완전히 나쁜것도 완전히 좋은것도 없음을.
흘러가는 이 시간에 나를 맡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