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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하 Jul 03. 2024

전상서.

사랑을 고백하다. 

지금은 TV 시리즈가 많이 죽었지만 

어린 시절 떠올리면 평일 오후 드라마 시간, 주말 드라마 보는 낙으로 TV 앞으로 모였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중 아직 기억에 남는 '부모님 전상서'

애기 시절의 저에게는 전상서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습니다. 


이제 나이가 차고 제 주변에 사랑하는 분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면서 

점차 깨닫게 된 '전상서' 


고인에게 전하는 마지막 마음고백.


20년 가까이 함께 지내며 키워주셨던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동안 할머니에게 나는 어떤 손녀였을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고,

내가 할머니에게 사랑한다는 것을 말했던 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떠올려보는 순간이었습니다. 


할머니께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지내신 뒤로 매일 같이 전화드리지 못했던 저의 모습에 속이 상하기도 하고, 할머니가 좋아하는 것들 챙겨드리지 못했던 것들이 떠올라 못난 손녀라고 자책했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고인이 되신 분에게 나의 잘못과 아쉬운 부분을 이야기한들 내가 더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 더 슬펐습니다. 

살아계실 때 더 잘해드릴걸. 이런 후회를 최대한 하지 않기 위해 그토록 연락드려 먹고 싶다고 하는 것들 챙겨 드리려고 했었나 싶습니다.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석류, 용과, 미숫가루, 더위사냥, 수박 더위와 땀이 많으셨던 할머니를 기억하며 시원하게 여름을 나기 위해 등목을 해주셨던 할머니, 더운 날 샤워하고 나온 뒤로 선풍기 틀어 주시며 머리 말려주시던 손길이 떠오릅니다. 


이 세상에 할머니의 숨결이 남아 있지 않지만, 저에겐 할머니를 기억할 손길이 많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20년의 시간이 적지 않았던 만큼 저에게는 할머니를 다시 보러 가기 까지 곱씹어 보며 웃음 지을 이야기가 많이 있음에  눈물 흘리지 않고 씩씩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면서, 할머니가 멋지게 키워 주신 것을 이 세상에 보여주면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좌절하고, 슬퍼하고,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해지고, 튼튼해져서 더 멋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그리워질 때면 내 안에 남아 있는 할머니의 웃음 한 조각, 손길 한 번을 떠올리며 제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할머니가 저와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인간이 정말로 죽는다는 것은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고, 떠올리지 못할 때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진과 영상으로 많이 남겨 놓는 것이겠죠. 

할머니의 추억은 생생하게 저의 안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점점 기억 속 할머니를 닮아 갈 때까지도 저는 기억할 것입니다.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 것과 이쁘게 미소 지을 수 있게 된 것은 할머니의 헌신과 사랑 덕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저의 외할머니를 위한 전상서입니다.

저는 할머니를 기억하며, 매일 같이 함께 살아가며, 또 할머니가 보시기에 좋은 일들을 하며 건강하게 살 것입니다. 걱정 끼치지 않는 든든한 사람이 되어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제가 간직하고 있는 즐겁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할머니의 말동무가 되어 풀어낼 때까지 간직하며 살아가 보려고 합니다.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사는 것은 힘듭니다. 

하지만 매일 그 사람의 기쁨에 함께 하고 떠올리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닐까요?

저의 매일매일이 기대가 되고 즐거워지고 또 행복한 이유는 내일 또 할머니에게 이야기할 즐거운 일들을 만들어 갈 것이라는 기대 덕분입니다. 


아프지 마세요. 슬퍼하지 마세요. 눈물 흘리지 마세요. 이런 말이 위로가 되지 않고 힘이 되지 않습니다. 

천천히 회복하세요. 무너지지만 마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세요. 나의 활짝 웃는 얼굴을 쓰다듬으면 이쁘다 하셨던 할머니의 손길을 기억하며 오늘도 웃음 짓습니다. 


그곳에서는 할아버지와 사이좋게 지내시고, 아프지 마시고, 좋아하는 것 하시면서 편히 쉬셨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보고 싶을 때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석류, 용과, 수박 들고 찾아갈게요. 


49제의 기간 동안 찬찬히 할머니를 보내드릴 수 있어서 너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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