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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희 Dec 15. 2018

예민해진건 나였어?

남과 여, 나의 편견

 안녕하세요! 남들보다 예민한 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쓴 진솔한 이야기입니다. 제 글이 저와 이 병을 앓고 있는 모든 분들께 희망을 심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 글을 써봅니다.







 오늘은 과대증과 성별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다뤄볼까 합니다.

모든 병은 성별에 관계없이 병에 걸린 당사자와 그 주위 사람들 모두에게 힘든 시련이며 고통입니다. 과대증 또한 똑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과대증에 걸렸을 때, 남자가 더 힘든지 여자가 더 힘든지 따지는 것은 의미 없는 논쟁거리라고 생각합니다. 증상의 경중에 따라 각각 다르며,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부끄러움과 치욕스러움이라는 감정을 떠올리게 하고, 무기력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은 변치 않기 때문입니다. 여자인 저 역시도 이런 복합적인 감정들을 느껴왔습니다. 


저의 전 직장은 여초 회사였습니다. 하여, 제 주위 자리에는 거의 여성들로 가득하였고 드문드문 남성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주위 남성들의 반응이 심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과대증 증상이 발현되었을 때, 대각선 자리에 앉아계신 남성분은 코를 훌쩍이거나 기침을 심하게 하였고, 제가 제일 눈치를 많이 보게 되는 사람 중에 한 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바로 뒤에 앉아계신 여성분은 반응이 심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문득 의문점이 하나 생겼습니다. 


"과대증에 걸린 사람들은 성별과 관계없이 모두 힘든데, 왜 유독 주위 이성들이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걸까."


남자가 과대증에 걸렸다면 주위 여성들의 반응이 심해지고, 여자가 과대증에 걸렸다면 주위 남성들의 반응이 심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만의 생각이라고 여겼었지만, 타 카페의 글을 읽어보니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신 분이 여럿 계셨습니다. 주변 이성들의 반응이 심해진다는 것.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5년 가까이 과대증을 앓고 있다 보니 활발했던 성격에서 소심하고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으로 바뀌었고, 자존감도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졌습니다. 예전에는 별일 아니었던 일조차도 지금은 별거 아닌 일로 치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성격이 이렇게 변하다 보니 인간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동성 친구 사귀는 일조차 힘들게 되었는데, 이런 와중에 이성 친구와 엮일 일이 얼마나 될까요. 이렇게 점점 이성을 접할 기회가 사라졌고, 점점 저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 어쩔 수 없이 이성과 마주치게 됩니다만, 그때도 저는 높이 철벽을 쳤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다가오지도 않았지만, 저 또한 다가가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이성에 대한 궁금증을 멈출 수 없었고, 자꾸만 눈길이 가고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저와 다른 성별을 가진 남성분들의 반응에 민감하게 굴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남성의 반응이 예민한 게 아닌 제가 이성의 반응에 예민해진 것이었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성별을 떠나서 더 예민한 사람이 있고 덜 예민한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굳이 여자 남자 나누지 않더라도 기관지가 약하거나 냄새에 예민한 사람은 반응을 심하게 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반응을 덜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의 성격에 따라서도 반응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더 유별나게 반응하는 사람이 있고, 배려심 있는 행동을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듯 개인에 따라 반응이 다 다른데도 불구하고, 저는 유독 이성의 반응에 민감했고, 이성의 반응에 더 상처 받았던 겁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남성은 냄새에 예민하다는 편견에 휩싸여 있던 겁니다.


어차피 반응은 개인에 따라 다를 텐데, 왜 이성이라는 이유로 스스로 먼저 벽을 쌓고 지냈을까..


이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이성에 국한된 얘기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과대증에 걸리더라도 친구를 사귈 수 있고, 평생 함께할 동반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주변인들 누구나 나를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연이 닿는 사람은 끝까지 곁에 남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언젠가 곁을 떠날 겁니다. 과대증을 완화시키기 위해 노력하시는 모든 분들이 인간관계에 너무나 큰 좌절을 느끼신다는 거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대증이라는 프레임에 본인을 가둬두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해오셨던 것처럼 식단 관리, 자기 관리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 극복될 문제이며, 그때가 되면 위축되어 살아왔던 지난 모습들이 안타깝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좀 더 편하게 가지고, 주위를 여유롭게 둘러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다 보니 주제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끝맺음이 되었습니다만, 모든 문장에 저의 진심이 들어갔습니다. 부디 저와 같은 고통을 겪고 계신 분들이 굴레를 벗어나 자유로워 지시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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