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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된 시각 대신 이해로

겉은 강한데 속은 약한 사람들 -조직 속 ‘겉강속약’ 성향의 심리와 대처

by 두드림

직설적인데 왜 쉽게 상처받을까?


회사에서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회의 시간, 그는 주저 없이 손을 들고 말합니다.

“이건 별로예요.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말투는 단호하고 때로는 무례하게까지 들립니다. 듣는 사람은 순간 움찔하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회의가 끝나고 동료가 “조금 표현이 강했어”라고 말하면 그는 크게 위축됩니다. 심지어 집에 가서도 그 한마디가 마음에 걸려 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겉으로는 자기주장 강하고, 속으로는 남 눈치를 많이 보고, 작은 비판에도 크게 흔들리는 사람. 우리는 이들을 “겉강속약”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단순한 성격 문제일까요? 아니면 조직 안에서 자주 발견되는 하나의 심리적 패턴일까요?


이 글에서는 심리학, 조직행동학, 임상심리학 연구와 함께 실제 사례를 엮어 이 현상을 분석하고, 조직 차원의 개선 방안을 제시합니다.


겉강속약 성향의 심리적 기초


1. 불안정한 자존감 (Insecure Self-Esteem)


Baumeister와 Bushman(1998)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존감이 낮아서가 아니라 자존감이 불안정할 때 공격적으로 변합니다. 즉, 평소에는 자신감 있는 듯 보이지만, 작은 비판에도 자존감이 쉽게 흔들립니다.


이를 ‘위협받는 자존심(threatened egotism)’이라고 부릅니다.

겉모습: 자기주장이 강해 보임

내면: 인정받고 싶지만 비판이 두려워 과잉 반응


사례
스타트업 A사의 기획자는 매번 회의에서 “그건 틀렸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하지만 CEO가 “조금 더 근거를 보완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지적하자, 얼굴이 붉어지고 이후 며칠 동안 팀원들과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2. 취약한 자기애 (Vulnerable Narcissism)


자기애적 성향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과시적 자기애(Grandiose Narcissism): 거침없는 자신감, 외부 비판에 둔감

취약한 자기애(Vulnerable Narcissism): 불안정한 자존감, 남의 평가에 과민


Miller 등(2011)은 후자를 취약형 자기애라고 부르며, 이 유형이 바로 “겉강속약”에 해당한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특징

외부에는 자신감 있는 척, 강한 척

내부에는 불안, 상처, 인정 욕구


사례
B기업 마케팅 팀장은 클라이언트 미팅에서 매우 공격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발표 후 클라이언트가 “설득력은 있지만 조금 부드럽게 하면 더 좋겠다”라고 말하자, 그날 밤 회사 단톡방에 “제가 너무 했던 것 같아요. 괜히 기분 나쁘셨죠?”라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3. 불안형 애착 (Anxious Attachment)


애착 이론에 따르면, 어린 시절 관계 경험은 성인이 된 후 대인관계 패턴에 영향을 줍니다. 불안형 애착을 가진 사람들은 늘 거절을 두려워하며, 관계에서 과도하게 눈치를 봅니다.


특징

말을 세게 하면서도, 상대의 표정 하나하나를 살핍니다.

사람과 눈을 제대로 못 마주치거나, 어색한 웃음으로 불안을 감춥니다.


사례
C사 개발자는 코드 리뷰에서 “이 방식은 비효율적입니다”라고 직설적으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회의 후 팀원이 한숨 쉬는 걸 보자, “혹시 내가 상처 준 건 아닐까?”라며 불안해하며 며칠간 대화도 피했습니다.


조직 속에서 나타나는 행동 패턴


1. 수동-공격적 커뮤니케이션

겉으로는 직설적이지만, 그 안에는 불안과 방어가 섞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회의 자리에서 누군가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표면적으로는 확신에 찬 발언이지만, 속마음에서는 “혹시 내가 틀린 건 아닐까?”, “이 말 때문에 미움받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죠.


2. 방어적 태도

조직학자 크리스 아지리스(Chris Argyris, 1991)는 이러한 모습을 방어적 추론(Defensive Reasoning)이라고 설명합니다. 비판을 받는 순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더 단호하거나 때로는 무례해 보일 정도로 강하게 반응하는 패턴입니다. 이 과정에서 상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대화가 점점 긴장 국면으로 흐르기도 합니다.


3. 반복되는 갈등 구조

이러한 성향은 조직 내에서 자주 반복적인 문제를 일으킵니다.

동료들의 시선: “저 사람은 무례해서 같이 일하기 불편하다.”

본인의 속마음: “나는 왜 이렇게 작은 말에도 상처를 받을까?”


이 두 가지 인식이 맞부딪히면서 팀 안에서는 불필요한 갈등이 쌓이고, 결국 신뢰가 약화되는 악순환이 만들어집니다.



왜 이런 사람들이 많은가?


1. 보편적 인간 심리

인간은 누구나 인정 욕구와 거절 두려움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겉강속약 성향은 이 두 가지가 극적으로 드러난 경우입니다.


2. 한국적 맥락

체면과 눈치 문화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는 “자기 표현을 강하게 해야 존재감을 인정받는다”는 학습이 흔합니다. 동시에, 거절당하거나 관계가 틀어질까 두려워 불안이 커집니다.


3. 조직 환경

스타트업·연구소·창의조직: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 이런 성향이 더 눈에 띔

대기업·관료조직: 규범이 강해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음


Ⅴ. 개선 방안 – 팀 차원에서 어떻게 다룰까?


1. 피드백 방식

비공개, 일대일 피드백: 공개석상에서 지적하면 방어벽이 세워집니다.

행동 중심 피드백: “너는 무례해” 대신 “회의 때 ○○라고 말했을 때 다들 불편해했어.”

긍정과 교정의 균형: 작은 변화에도 칭찬을 곁들여야 합니다.


2. 역할 배분

직설적 성향은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 문제 제기에선 자산이 됩니다.

대신 대외 발표, 클라이언트 미팅에서는 보완 역할 필요.

“완충자”를 지정해 부드럽게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구조도 효과적입니다.


3. 성장 기회 제공

자기 인식 훈련: “왜 나는 이렇게 말할까?”라는 성찰 기회 제공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훈련: 시선 맞추기, 표정 관리 연습

책임 있는 역할 부여: 작은 프로젝트 리더 경험 → 자기 말투·행동의 파급 효과를 학습


4. 팀 차원의 대응

팀 규칙 합의: “비판 대신 제안하기”, “피드백은 존중하는 어휘 사용”

분위기 점검: 주기적 회고로 불만이 쌓이지 않게 조율

리더의 브리징: “○○의 의도는 이거였어. 다만 표현이 조금 거칠게 들렸을 수 있어.”


실제 사례 – 한 스타트업의 변화


D스타트업에는 겉강속약 성향의 팀원이 있었습니다.

초반: 회의 때마다 직설적 발언으로 팀 분위기를 자주 깨뜨림 → 팀원들 불만 누적

중반: 대표가 비공개 피드백을 시도, “너의 아이디어는 좋은데, 표현이 다소 거칠게 들린다”고 설명

후반: 팀 전체가 ‘비판 대신 제안’ 규칙을 합의 → 같은 팀원이 “이 방법보다 이런 방법은 어때요?”라고 말하기 시작 → 팀의 신뢰와 협력 수준이 눈에 띄게 향상



고정된 시각 대신 이해로


겉강속약 성향은 특이한 예외가 아니라, 많은 조직에서 흔히 발견되는 인간적 패턴입니다.

겉으로는 직설적이지만 속에는 불안이 자리하고, 강하게 보이고 싶지만 동시에 상처받는 것이 두려운 내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저 사람은 무례하다”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그 성향을 어떻게 이해하고 팀 안에서 건강하게 조율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올바른 피드백, 책임 있는 역할, 그리고 심리적 안전감을 만들어줄 수 있다면, 이들은 오히려 팀의 솔직함과 문제 해결력을 높이는 소중한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Baumeister, R. F., & Bushman, B. J. (1998). Self-esteem, narcissism, and aggression: Does self-love or self-hate lead to violence? Current Directions in Psychological Science, 7(1), 26–29.

Miller, J. D., et al. (2011). Grandiose and vulnerable narcissism: A nomological network analysis. Journal of Personality, 79(5), 1013–1042.

Bowlby, J. (1969). Attachment and Loss. New York: Basic Books.

Ainsworth, M. D. (1979). Infant–mother attachment. American Psychologist, 34(10), 932–937.

Argyris, C. (1991). Teaching smart people how to learn. Harvard Business Review.

Johnson, N. J., & Klee, T. (2007). Passive-aggressive behavior and leadership styles in organizations. Journal of Leadership Studies, 1(3), 4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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