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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지 씀 Oct 20. 2023

스물넷, 나는 한번 죽은 적이 있다 | 하수연


같은 일상이 반복되고 지루하게만 느껴질 때, 그 감정에 너무 매몰되면 안된다.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소소한 대화, 나에게 주어진 기회들을 되새기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만 한다. 어제의 나는 같은 주제를 연구하는 팀원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실험을 같이 진행했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실험을 하고, 데이터를 공유할지 의논하기도 했다. 또 다른 선배와는 인사를 나누었고, 주제와 관련된 논문을 찾는 것을 도와드리기도 했다. 몸은 더 바빴고 피곤했던 하루였지만, 그 시간 속의 나는 보람차고 행복했다. 하루 속에 어떤 행복이 숨어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그 행복을 스스로 잘 찾아내고 만끽해야한다. 꼭 여유를 느끼는 순간에 찾아오는 기쁨만이 행복이 아니며, 바쁜 일상 속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불행은 요란하고 행복은 조용했다. 불행은 갑작스럽게 닥쳐오지만 행복은 그렇지 않다. 행복은 다가오는 게 아니라 이미 삶 곳곳에 조용히 머무르고 있었다. 환상 같은 기대가 눈을 가리고 있어서 발견할 수 없었을 뿐이다. 나는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는 욕심과 기대를 버려야 했다. 그리고 멀뚱멀뚱 기다릴 게 아니라 직접 찾아 나서야 했다.



오랜 시간동안 나아가지 않고 제자리만 맴돌고 있는 기분이 들 때, 늘 그 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그 일을 포기하고만 싶었다. 그 때의 난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날에 나의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닌 그저 걸어가는 날들 중에 하루일 뿐이었음을.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노력을 하지만, 그 노력에 부응하는 결과가 바로 나오기는 쉽지 않다. 무너지고 일어나고를 반복하면서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일이다.



늘 성공하는 사람도, 이루고 싶은 일을 계획에 맞게 척척해내는 사람도 없다. 우리는 끝없이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한다. 그래야 다음 시행착오에 면역이 생긴다. 삶을 지탱하는 건 무너졌을 때 다시 털고 일어난 감각이다.

자신에게 단 한 번의 실패조차 허용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실패자라 낙인 찍고 삶을 정산해 버린다면 우리는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다. 잊지 말자. 살아가는 한 모든 순간이 과정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 삶은 완결될 수 없다.



계속해서 제자리를 걷고 있는 것만 같아서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나아갈 방향을 뚜렷하게 아는 것도 아니고, 또 다른 길을 찾아가자니 너무 늦은 것만 같아 망설여졌다. '지금 나는 어딜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내가 있는 자리에 머무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떠나는 것이 좋을까?'에 대한 고민은 항상 머릿속에 맴돈다. 그 고민을 계속해서 하니 머리가 오히려 아파졌다. 애써 계속해서 생각하지 말고, 그저 이 시간을 흘려보내면서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로 했다.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나의 길은 내가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걸어가다가 길을 잃게 된다면 그 길에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걸어가고, 너무 힘들어서 걸어갈 힘이 없을 땐 그곳에 잠시 누워있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디에 재능이 있는지 알기 위해서 필요한 건, 타인으로부터 간접 경험한 정보가 아닌 내가 직접 경험한 실제 사례다. 주관은 경험의 주체인 '나 자신'이 직접 겪어야만 생긴다. 타인의 의견은 말 그대로 그 사람만의 의견일 뿐이다. 내 앞길을 막아서는 이들을 뿌리치기 위해서는 주체성을 가지고 다양한 시도를 해야한다.



삶이 무너져 버린 것만 같을 때, 나는 항상 그 사실을 부정하고 '나는 괜찮다.'고 자기 최면을 걸어왔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현실을 외면하고 도망가고만 싶었다. 사실 우리를 강하게 하는 것은 단단한 마음이 아니라 무너진 마음을 다시 쌓는 것이다. 무너지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아는 것은 우리에게 큰 힘을 가져다줄 수 있다.


안 좋은 상황이 계속 지속될까 봐 두려울 때, 잠깐 쉬어가도 좋으니, 현재의 상태에 너무 고립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항상 좋은 상황이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 나와 주변 상황에 대해 조금 더 유연하고 말랑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제는 단단한 사람이 아니라 말랑한 사람이고 싶다. 삶의 무언가가 무너지면, 나도 덩달아 무너질 것이다. 잔해를 가슴 위에 얹은채 마음껏 슬퍼하고 엉망진창으로 지내다가 또 일어날 거다. 깨지고 부서지는 데서 그치고 싶지 않다. 짓이겨지고, 눌리고, 찌뿌러지더라도 다시 회복하는 유연하고 말랑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늘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알아내고 정의하고 싶었다. 내가 세운 기준에 내가 맞지 않는 것 같을 때 '원래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왜 이렇게 반응하는 걸까?'하는 의문이 들었던 적도 많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일하는 것보다는 혼자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연구원이라는 직업이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은 아닐지 하는 고민을 한 적도 많았다. 그렇게 난 나의 정체성에 한계를 만들고 나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을 하면 불행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서 깨달았다. 나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무궁무진한 잠재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모습 중에서는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모습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낯선 환경에 내가 던져졌을 때, 그 상황을 두려워하지 말고 무언가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레고 싶다.


사람은 시간과 경험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몰랐다. 우리에게는 잠재성이 있다. 아직 현실로 끌어올리지 않은 수많은 개성이 내 안에 있다.

새로운 위치와 공간에 나를 배치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로든 갈 수 있고, 어떤 모습으로든 살아갈 수 있다.

'진정한 나'는 없다는 것을 알면 그때부터 삶이 조금 더 즐거워진다. 단지 그 가능성을 아는 것만으로도, 내 정체성은 단 한두 가지로 닫힌게 아니라 무수히 열린 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삶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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