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디야커피 속초 로데오점
엄마가 어렸을 때 교동엔 지금처럼 아파트가 많지 않고, 55번 버스도 생기기 전이라 학교까지는 늘 걸어 다녔다고 했다. 영랑호 쪽 언덕 아래엔 누구나 할 것 없이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있었다고도 하니,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바뀔 것을 그때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시내 영화관에서 일하는 간판장이 아저씨를 이따금 마주쳤다. 아저씨 손에는 페인트 통이 들려있었다.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도, 금명의 남편 충섭이 신림동 깐느극장에서 간판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는 모습이 나온다. 충섭의 나이가 우리 부모님 또래로 보이는데, 간판에 영화 포스터를 직접 그리던 때가 지금으로부터 그리 먼 옛날도 아니었던가 보다.
지금은 속초에 영화관이 메가박스 하나뿐이지만, 그때는 소규모 영화관이 몇 곳 있었다고 한다. 동보극장, 중앙극장, 대원극장... 대원극장은 지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곳이었는지, 없어지고도 한참 동안 버스정거장 이름만은 대원극장이라고 남아있었다. 현재 시내 로데오거리 김밥천국이 있는 자리다. 정거장 이름은 <관광 수산시장 입구>로 바뀌었다. 그다음 정거장이 <갯배 입구>다. 이름과는 달리, <갯배 입구> 정거장이 시장과 더 가깝다.
대원극장에서 조금만 걸어오면 디제이가 신청곡을 틀어주는 음악다방이 있었는데, 그 위치가 지금의 <미치과>가 있는 건물 지하다. 골목을 마주하고 <봄베이 레스토랑>이라는 경양식집도 있었는데, 나의 어릴 적 추억도 깃든 곳이다.
초등학생 때 친구의 생일파티가 이곳에서 열렸다. 용돈을 떼어 문구사에서 선물을 사 들고 갔다. 자물쇠가 달린 은색 다이어리였다.
지금처럼 외식을 자주 하는 때가 아니어서, 어른들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두근거림을 느끼며 지하에 위치한 레스토랑으로 걸어 내려갔다.(지하가 아니었을 수도...) 친구들과 같이 메뉴판을 오래 들여다보아도 선택은 모두 돈가스였다.
주문이 끝나면 따끈하게 데워진 모닝빵 또는 접시에 넓게 편 흰쌀밥과 크림슾-이 나왔다. 크림슾-을 먹을 때엔 스푼은 앞에서 뒤쪽으로 떠먹어야 한다는 걸 기억해 내곤, 나름대로 멋을 부리며 먹었다. 봄베이 레스토랑 건물은 비워진 채로 한참 있다가, 최근 재개발에 들어갔다.
엄마 음악다방은 뭐 하러 가는 곳이야?
친구들이랑 대화하러?
< 그렇지,
친구들이랑 가서 얘기도 하고
디제이한테 음악도 신청해서 듣고 >
그 이야기를 나눈 게 어제저녁의 일인데, 음악다방이 있던 건물을 바라보면서 그때의 풍경을 상상하니 새삼 신기해지는 것이다
지금 나는 시내 서독약국과 파리바게트 사이, 이디야 커피에 앉아있다
어제에 비해 더운 날씨다. 바람이 통하도록 활짝 열어둔 입구 가까이에 앉았다. 이디야 모델 변우석 배우 사진이 크게 붙어있는 곳 바로 앞이라, 수시로 눈이 마주쳤다. 해사한 그의 미소가 조금 부담스럽다. 시선을 피해 바깥을 내다보았다.
카페 앞 건널목 신호가 빨간색이었다가 파란색으로 바뀌길 여러 차례. 어느새 이팝나무 꽃이 풍성해진 로데오 거리를 바라보며, 다시 엄마가 해 준 음악다방 생각을 하게 됐다.
초등학생 때 친구가 미치과에서 치아 교정을 했다고 했는데, 그게 어느덧 20년도 넘은 이야기다. 올봄 들어 지나다니면서 뭔가 새로운 느낌이 든다 했더니, 올해가 1995년 개업 이래 3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그래서 브랜딩 겸 건물 리모델링을 해서 외관이 새 건물처럼 변했다.
음악다방은 치과가 생기기 전에 있었던 곳이었다. 언제 문을 닫았는지는 모른다. 그 거리에 경양식집이 몇 곳 더 있었고, 지금의 나보다 어렸던 엄마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 볼 뿐이다.
그러고 보니 미치과 옆, ‘더 바디샵’이 있다가 없어진 자리에는 <시민 서점>이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용돈을 모아 산 첫 책이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었는데, 시민서점에서 산 거다. 이 책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시험 전 날에 특히 집중해서 봤던, 어느 페이지엔 눈물 자국도 남아있는 소중한 보물이다.
이 거리엔 엄마의 추억도, 나의 추억도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