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일력 2/11

정화조 청소를 했다.

by Julie
천하가 광대하고
성인의 교화도 끝이 없지만
이는 바깥에서 본 것이다.

사람의 육신이 왜소하지만
광대한 천하와 다르지 않으니
이는 안에서 본 것이다.

이색 <세상의 동쪽 끝에서>



민음사 일력 2월 3일 자의 문장은 ‘이곡’의 글이었다. 오늘은 이곡의 아들 ‘이색’의 글이다.


이 문장이 나와있는 책을 검색해 보니 시립 도서관에 있다. 책을 막 빌려 나온 참이지만 다시 갔다.



272쪽 <세상의 동쪽 끝에서> 유사정기(流沙亭記)


272쪽에 <세상의 동쪽 끝에서>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제목 오른쪽에 한자로 유사정기(流沙亭記)라고 적혀있다.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에 ‘유사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는데, 여기에 적혀있던 기문을 고려 시대 문인 ‘이색’이 썼다.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1361년 홍건적의 2차 침공으로, ‘이색’은 외가가 있는 영덕군 영해면으로 피했다. 당시에는 영해부라고 불렸고, 그곳에 이색의 형님이 살고 있었다.


동네엔 형님이 [유사정(流沙亭)]이라고 이름 붙인 정자가 하나 있었다. 이색은 어느 날 그 정자에 올라 술 한잔 하며 생각에 잠겼는데, 정자의 기문을 지어달라는 부탁을 받아 쓴 글이 바로 <세상의 동쪽 끝에서>다.


글의 초반에 정자의 이름이 어떤 뜻을 가진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유사(流沙)’라는 지명은 유교 경전 중 하나인 <서경>, 그중에서도 ‘우공’ 편에 적혀있는 곳이다. 우공은 지금부터 약 4천 년에 살았던 사람인데, 중국의 고대 국가 하 나라의 임금이었다. 우공은 나라의 골칫거리인 홍수를 해결하기 위해 치수공사를 했고, 넓은 중국 땅 동서남북 어느 한 곳 교화가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고 쓰여있다. <서경>은 역사 기록물이자, 업적을 기리는 글인 것이다. <서경>을 비롯해 흔히 ‘4서 3경’이라 불리는 책을 조선시대에는 임금과 신하가 함께 보며 정치의 교과서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니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소재다.


우공의 교화가 서쪽으로는 ‘유사(流沙)’까지 미쳤다고 나와있는데, 이곳이 중국 서부 사막지대라서 ‘모래가 흐르는(流沙)’ 듯하다는 의미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삼장법사, 사오정 등이 나오는 <서유기>에도 등장하는 이름이다. 지금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 내 사막지역에 해당한다.


보통 정자의 현판에 쓰일 이름을 지을 때는, 이름난 산수나 선조의 고향에서 따온 이름을 쓰기 마련이다. 그런데 ‘유사(流沙)’는 척박하고 이름난 인물도 배출하지 못한 외곽의 사막 지역이다. 이색의 형님은 왜 그런 곳을 정자의 이름으로 삼았을까?


이색은 자신의 형님이 이 정자의 이름을 ‘유사정’이라 지은 이유에 대해, <서경> 속 우공의 이야기를 빗대어 자신의 생각을 써나간다.

천하가 광대하고
성인의 교화도 끝이 없지만
이는 바깥에서 본 것이다.

바깥에서 보면 천하가 아무리 방대해도 우공이 한 것처럼 성인의 교화가 미치게 된다. 그렇지만, 세상이 평화로이 단결되기보다 자꾸만 분열이 생기는 게 아쉽다.

사람의 육신이 왜소하지만
광대한 천하와 다르지 않으니
이는 안에서 본 것이다.

반면에, 안에서 보면 인간의 몸은 한계를 지니지만, 그 가운데 있는 마음은 우주까지도 뻗어나갈 수 있다. 나 한 사람은 그렇게 당당히 존재한다. 더불어 성인의 교화를 입은 가슴으로 살고 있다면, 이 세상 어느 곳에 있든 그 영향 안에 있게 된다.


우공의 교화가 드넓은 중국의 동서남북에 모두 미쳤던 것처럼, 우리나라의 동쪽 끝인 영해부에도, 그리고 그곳에 머물고 있는 나(이색)에게도 여전히 성인의 교화가 미친다. 그러므로 영해의 정반대에 있는 유사(流沙)까지 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색은 형이 이 정자의 이름을 ‘유사정(流沙亭)’이라고 지은 이유가, 현재는 비록 동쪽 끝에 머물더라도 미래엔 서쪽 끝까지도 닿을 수 있다는 뜻을 담기 위해서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 동쪽 끝 정자의 이름을, 서쪽 끝의 상징으로서 ‘유사(流沙)‘라고 정했다. 이 글은 1362년에 쓰였다. 1361년 병란(홍건적의 침략)을 피해 지방에 숨어든지 일 년이 넘었으니 불안하고 기약 없는 미래에 지친 나날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정자에 대한 글이지만, 이색 자신에게도 희망을 불어넣는 이야기다.




날이 따듯해지니 미세먼지 수치가 나빠졌다.

동쪽 끝 바다에 가까운 위치라 하늘이 깨끗한 편이지만, 평소 하늘빛에 비하면 뭔가 한 겹 얇은 천에 휘감긴 느낌이다.



낮에 햇볕을 쬐며 걸으니 비빔국수, 아이스크림 같은 게 저절로 떠오른다. 아이스크림 할인점에 들어가 뭘 먹어볼까 구경했다. 한 번도 안 먹어본 두바이 초코맛 아이스크림이 있다!


나름 겉면의 초코맛+ 바삭한 식감의 피스타치오 크림을 구현해 냈다. 얼마 전까지 사방에서 난리였는데, 2월 들어 슬슬 유행의 끝에 온 분위기다. 이래서 한 가지 아이템이 유행한다고 함부로 공장설비를 신설할 수가 없나 보다. 이 아이스크림은 두쫀쿠 전의 두바이 초콜릿 열풍 때 출시된 건지, 작년 이맘때 제조되었다고 찍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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