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도, 삶도, 정답 없어 좋다

<부산>(2) 우동돼지국밥

by 투가든

휴가 날 때마다 고전영화 보러 간다.

부산 <영화의 전당>에 있는 ‘시네마테크(cinematheque)’를 간다.

새해맞이 첫 휴가지도 부산이다.

영화의 전당을 가기 위해 센텀시티역에 도착했다.


오후 1시경. 영화 상영까지 시간이 남았다.

점심 먹으러 국밥집을 찾았다.

어느 가게 앞에 ‘우동돼지국밥’ 간판이 서 있다.

이끌리듯 들어갔다.

손님들의 신명 난 숟가락질, 대화 소리가 설렘을 일으켰다.

1인용 자리에 앉아 메뉴판 훑고 우동돼지국밥 주문했다.




부산 돼지국밥에는 ‘분단과 한국 전쟁의 기억’이 담겨 있다.


피난의 종착지 부산에는 이북과 전국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뒤섞이며 살았다.

혼란 속에서 나름의 질서를 갖춘 공동체를 뿌리내렸다.

전국의 음식도 모여 섞이고 재탄생했다.

돼지국밥의 뚝배기 그릇은 분단과 전쟁의 아픔으로 달궈진 용광로로 은유할 수 있다.

그 안에 전국의 사람과 기억, 음식, 삶의 의지가 한데 뒤섞여 국물처럼 흘러넘쳤다.

사람과 문화의 뒤섞임으로 탄생한 새로운 문화가 돼지국밥이다.


돼지국밥의 매력은 ‘포용과 섞임’에 있다.

국밥은 어떤 재료든 받아들인다. 기꺼이 섞인다.

새로운 음식과 맛을 창출하는 데 두려움이 없다.


‘우동돼지국밥’도 마찬가지다.

소면이 아닌 우동면이 들어간 것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부산 돼지국밥은 우동면까지 포용한 경지에 이르렀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면과 국물이 은근히 잘 섞여 근사한 어울림을 만든다.

국물이 혀를 강하게 자극할 것 같으면, 두껍고 툭툭 끊기는 무심한 우동면이 자극을 밀어내 균형을 맞췄다.

우동면으로 심심해질까 고추 다진양념을 미리 넣어 간을 맞췄다.

일본 문화 영향권에서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 있는 부산다운 선택과 시도다.


국밥과 삶은 평범한 진리로 연결되어 있다.

국밥과 삶 모두 ‘답이 없다.’


잠시 후 벌어질 일을 알 수 없기에 삶은 ‘불안’하다.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이 찾아오기에 ‘설렘’이다.

국밥도 국물을 뜨기 전까지 어떤 맛인지 알 수 없어 긴장된다.

국물이 입안에 닿는 순간 익숙한 맛과 따스함이 느껴지기에 안심된다.


국밥은 생소한 재료와 만남을 거부하지 않는다.

포용하고 섞이며, 어울림을 찾아 가장 적합한 맛을 만든다.

국밥엔 ‘정답’이 없다.

내가 이 순간 먹는 국밥이 정답이다.


삶도 정답이 없다.

평화로운 삶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문화, 음식, 기억과 만나고 포용하고 섞이는 걸 주저해서는 안된다.

국밥처럼 지금 이 순간 가장 어울리는 정답을 만드는 것이 정답 없는 삶을 사는 지혜다.


우동면까지 받아들인 국밥의 포용, 인내에 감탄하며 배운다.

난 무엇을, 어디까지 받아들여 포용하고 섞일 수 있을까.

점점 주는 국물이 아쉬워 숟가락만 내내 휘젓는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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