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끝에 다시 피는 마음
봄이 시작된다는 건 늘 조금 늦게 실감이 난다.
추위는 여전하고, 몸도 마음도 아직 겨울 한복판에 있는 기분이라서.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자꾸만 눈이 가는 작은 새순 하나. 어깨를 스치는 햇살 하나가 말해준다.
‘아, 이제 진짜 겨울이 끝났구나.’
이상하게 3월은 마음도 몸도 함께 움직이는 느낌이다.
계절의 변화처럼 나도 뭔가를 다시 정비하고 움직여야 할 것만 같은 마음.
그런데 또 보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도 조금씩 변하고 있더라.
마음이 예전보다 조금은 더 유연해지고, 불안은 여전하지만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잘 지내고 싶지만 매일 잘 지낼 순 없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지나갔다’는 말을 할 수 있을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그래서 이 계절이 고맙다.
오늘을 살아낸 우리에게, 봄이 오듯 다시 조금씩 괜찮아지기를 바라며.
밴쿠버에서 서울로
B에게
안녕? B야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긴 겨울이 지나가고 3월에 쓰는 편지야. 이 곳 밴쿠버에서 요 며칠 정말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매일매일 느끼며 지내고 있어. 나무에서 새순이 돋고 꽃망울이 맺히는 걸 보면서 길었던 겨울도 이제 진짜 끝이구나 싶었어. 생명의 새로운 활동을 느낄 수 있는 봄이 참 좋아. 아무리 어느 계절이나 날씨에 편애를 안 두고 싶어도 말이야 어쩔 수 없어. 여전히 햇볕이 따사롭게 비추는 날이 좋고, 기온도 포근한 날이 더 좋고 그런 날일수록 조금 더 몸을 움직이기가 쉽고 그렇네. 그래도 그렇지 않은 날들도 덜 싫어하려고는 해서 요즘은 비가 오는 날이든 흐린 날이든 예전처럼 너무 싫지는 않아. 그냥 그런 날이구나 하고 넘어가려고 해. 그런 생각도 살면서 계속해야 할 연습이라고 생각해.
요즘의 나를 돌이켜 보면 사실 여전히 썩 마음에 들진 않아. 내가 나를 좋아하는 게 가끔은 어렵기도 해. 내가 내 마음에 잘 들게 행동하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할 때도 있으니까. 그래도 조금씩 다시 기운을 내서 일상을 회복하려고 하고 있어. 이렇게 다시 좋은 식습관을 들이려고 하고 있고, 적어도 밤늦게라도 먹지 않는 걸로 스스로 칭찬해 주고 있어. 가끔 혼자만의 의지력이 부족할 때는 B한테 고지(?)를 통해서 더 잘 지키려고 하기도 하고! B도 옆에서 도와줘서 고마워ㅎㅎ! 햄스트링 다치고 나서 10일 넘게 쉬다가 운동도 다시 가고! 여전히 아프긴하지만..ㅠㅠ. 사실 여기 통증을 느낄 때마다 너무 속상해. 어서 시간이 흘러서 이 고통을 해결해 주길 바랄 뿐이야. 처음 다쳐보는 부위라서 다치기 전처럼 통증도 없고 움직임에도 문제가 없을지 궁금하면서 사실 조금은 걱정도 돼. 그래도 어쨌든 지금은 운동은 할 수 있는 컨디션이라는 거에 감사해. 운동을 안 하니까 결국 내 하루 루틴이 다시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더라고. 예전에 읽었던 책인지 어떤 글귀에서 회사에 출퇴근하는 그 루틴만으로 사람한테 활력을 주기도 한다고 봤었거든? 그때도 참 공감이 갔지만 의원면직 이후 나는 루틴이 없는 삶을 살고 있으니까 그래서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나에게 운동을 통해서 활력을 불어넣는 게 참 중요해. 요즘 들어 더 많이 느끼고 깨닫고 있어. 이제 날이 좀 풀리기 시작했으니 러닝도 해볼까 싶어^^. 역시 포근한 날씨는 나를 움직이게 만들어 주는 고마운 요소인 것 같아.
겨울 동안 내내 마음도 기분도 상황도 힘들었다가 요즘은 그냥 그런 거 다 잊고 그냥 별생각 없이 지내고 있는 거 같아. 진짜 말 그대로 뭐 굳이 잡념도 잘 안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어떻게 지내자’ 이런 거 없이 그냥 하루하루 사는 느낌?! 뭐 크게 좋을 일도 없지만 딱히 나쁠 일도 없다고 생각하며 지내는 중이야. 가끔은 사소한 것들이 쌓여서 문득 확 안 좋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아무튼 요즘의 나는 이상 무! 우리의 하루하루가 무탈하길 다치지 않길 아프질 않길 바라.
그리고 나보다 조금은 이른 변화를 앞둔 B에게 긍정의 힘이 점점 차오르길 응원할게!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때는 어찌 됐든 간에 긍정적인 태도가 필요한 것 같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처음의 마음가짐도 잊기도 하고 그 새로운 환경에 결국은 또 익숙해져서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기는 어렵긴 하겠지만. 그래도 시작만큼은 당당하고 활기차게 해보자구요! 그래서 나도 4월부터는 슬슬 밴프에 갈 준비를 하면서 긍정 에너지를 천천히 충전해 보려고 해 하지만 3월까지는 밴쿠버의 봄을 느끼며 그냥 그냥 지내보려고 해. B도 뭐든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그저 잠 푹 잘 자고, 아무 걱정도 말고, 하루하루 그저 보내는 날들이 지속되길 바랄게! 내가 항상 B의 하루를 응원할게.
서울에서 밴쿠버로
A에게
안녕? A야
여기는 이제서야 늦은 봄이 오고, 여름이 올 새라 빠르게 달려오는 것 같아. 늘어나는 꽃봉오리와 군데군데 피어난 꽃들이 봄을 알리는거 같아. 시간이, 어느새 이렇게 빨리 흐른 것 같지 않아?
어떤 다가왔으면 하는 기대되는 날을 기다리는 것보다,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나 해야 할 일이 정해진 날들은. 이상하게 더 빨리 다가오는 것 같아. 안 왔으면 싶은 날일수록 더 순식간에 눈앞으로 달려오는 것 같고.
그래서인지 나에겐 작년 12월부터 3월까지, 정말 시간이 훅 지나가버린 느낌이야.
A도 알다시피, 나 나름대로 나에게는 지금 꽤 큰 결정을 내리고 있잖아. 이직이라는 일 말이야. 내가 회사가 너무 싫었어서 이직하려고 하면 맘 편히 할 줄 알았어, 그래서 예전엔 내가 마음만 먹으면 뭐든 금방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인 줄 알았거든? 근데 그게 아니더라. 지나치게 신중한 성격 때문인지, 내가 알지 못했던 안정감에 매달려 있었던 건지..
변화보다는 그냥 이 고요한 상태에서 메아리만 치고 싶었나봐.
이번 일을 겪으면서, 알고는 있었지만 잘 몰랐던 내 모습을 좀 더 분명히 알게 됐어. 막연히 ‘내가 이런 상황이 되면 이렇게 할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 상황이 닥쳤을 때 진짜로 그렇게 행동하는 나를 보면서, ‘아, 진짜 내가 이렇구나’ 하고 스스로를 더 이해하게 된 거야. 현재를 살고 ‘현재를 살자’가 나에게 하나의 큰 좌우명이 되어 살고 있는데 나약한 인간인 나는. 막상 큰일 앞에서는 또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스러움에 미래를 살게 되네. 걱정한다고 될 것도 없고, 결국은 지금 선택한 순간에 충실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
이제는 나도, 현재에서 앞으로 나아가 볼께.
A도 나도, 격변의 4월을 보내고 있네.
이 4월이 지나면, 또 어떤 일들이 우리에게 쌓여갈까? 말해도 말해도 할말이 넘 많은 나의 수다상대 A. 또 멋지게 쌓아보자.
지금도 뭐 마찬가지긴 하지만 예전엔 몸이 멀어지면 이렇게 못 지내게 되는 게 아쉽고 슬펐는데, 요즘은 떨어져 있어도 이렇게 마음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걸, 조금은 알 것 같아.
우리 건강하자 A야. 함께 오래 곁에서 놀수있게!
AB 4월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