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제없어
대학생 때, 졸업을 위해 필수로 현장실습을 해야 할 시기가 있었다. 대부분 한 곳에서 실습을 마치곤 했지만, 나는 그 당시 나의 적성을 아직 찾지 못한 상태였다.
‘여러 곳에서 일해 보면 조금은 알 수 있을까?’
그런 마음으로 세 곳에서 실습을 했다. 혹시라도 나중에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적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지금 생각하면 참 부지런하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그중 한 실습지는 지금 생각해도 꽤 강도 높은 곳이었다. 임금도 없었고, 실습생이라는 이름 아래 거의 직원처럼 일했다. 오전 9시부터 6시까지가 근무 시간이었지만, 나는 아침 7시에 도착해서 밤 10시에 퇴근하곤 했다. 출장도 다녀오고, 잡일도 도맡았다. 심지어 나중에는 정직원들까지 단체로 그만두면서, 실습생인 나 혼자만 남게 된 상황도 있었다.
그때는 나 또한 실습을 그만하고 싶었다. 하지만 교수님께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고, 내가 떠나면 그 실습처에서 우리 학교 후배들을 다시는 안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꾹 참고 버텼다.
(후, 고생했다 내 자신)
그 시절, 매일 아침 회사 앞에 도착하기 전, 나는 꼭 한 곡의 노래를 들었다.
서영은의 ‘혼자가 아닌 나’, 그리고 노홍철이 불렀던 ‘나는 문제없어’.
그 노래들을 들으며 ‘그래, 오늘 하루도 해내보자’고 나 자신을 다독였다.
지금도 종종 그 노래들을 꺼내 듣는다.
그때처럼 무언가에 짓눌리고, 마음이 눌릴 때.
나에게 힘이 필요할때.
어쩌면 나는 그 순간부터, 스스로를 붙잡아 줄 수 있는 ‘내 장치들’을 만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혼자일 때도 나를 버티게 해 줄 노래, 문장, 생각 하나쯤을 품고 다니는 것.
내가 무너질 것 같은 날에도 최소한의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작은 장치들.
나는 이런 순간이 찾아올때마다 내가 설정해둔 장치들을 꺼내어본다.
오늘 힘드셨다면 나에게 힘이 필요하다면 오늘 같이 들을까요?
•노홍철 나는 문제없어
•서영은 혼자가 아닌 나
밴쿠버에서 서울로
B에게
안녕? B야
새해에 쓰는 첫 편지네?! 해가 바뀌어서 연도 숫자가 바뀔 때마다 늘 작년이랑 헷갈리곤 했는데 왠지 2025년이라는 숫자는 금세 적응된 거 같아. 그리고 또 새해라고 특별함을 느끼기도 전에 순식간에 지나와버렸어.
12월 언제쯤부터 해서 아니 아마도 그 전부터 시작해서 며칠 전까지 나는 꽤 길고 긴 터널을 지나온 기분이야. 가랑비에 옷 젖듯 자그만 불만과 사람들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들이 모여서 나도 모르는 세 나에게 안 좋은 영향을 꽤 끼쳤던 것 같아. 아이브 장원영이 한 말처럼 ‘보상 없는 고통은 없다’라는 말이 딱 맞는 거 같아. 물질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든 없든 분명히 어떠한 보상이 나에게 있었을 거야. 그건 정말 확신해. 하지만 늘 하는 말이지만 그 보상보다 고통이 너무 커서 나를 망가뜨린다고 판단될 때는 언제든 나를 지키기 위해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최근 그걸 또다시 실천한 나 자신에게도 고맙다고 생각했어. 사람이 관성적으로 해오던 걸 끊어내는 건 꽤 귀찮기도 하고 웬만하면 그걸 유지하는 쪽을 선택하게 되는 거 같아. 그래서 그 관성적인 일을 끊어낸 거 자체도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꾸역꾸역 힘을 내서 정리했지. 일을 그만두고 나서도 무기력감이 꽤 남아있었는데 며칠 전부터는 기분도 좋고 건강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나를 감돌고 있는 기분이라서 좋아. 그래서 그런지 좋은 일들도 더 일어나는 것 같고. 일단 지금 당장 주변에 안 좋은 사람이 없으니 그 부분이 참 감사하고 좋아. 어찌 보면 나에게 주어진 상황이 마침 딱 회복할 시간을 준 게 아닐까 싶은 그런 타이밍이라니까.
항상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 같아. 내가 선택하거나 결정한 것들이 아닌데 그게 나를 힘들게 하면 참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도 어려운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예를 들면 안 맞는 직장 동료 같은 거 말이야. 그러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잖아 나는 ‘사람’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정말로 ‘좋은 사람’을 옆에 두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게 됐어. 근데 그걸 어떻게 할 수 있는지는 아직은 모르겠어. 어쨌든 일단은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수밖에.
그리고 최근에 B에게도 추천해 준 엔시티 드림의 Broken Melodies의 가사 중 I will never die라는 부분이 있거든? 출근하면서 그 부분이 딱 귀에 꽂히는데 그냥 뭐랄까 되게 위로가 됐다?! 사실 그 울적했던 시기에는 노래도 잘 안 들었거든. 나는 에너지가 좀 많이 다운되면 노래조차 들을 기력이 없는 그런 게 있단 말이야? 그런데 에너지가 좀 올라오고 밝고 희망적인 노래들을 들으면서 기분도 더 좋아지고, 가사도 나에게 용기를 줬고 그래서 좋았어.
B 또한 여전히 고민이 많은 시기라 여러모로 생각이 많을 텐데 모쪼록 어서 고민의 시간이 끝나길 바라.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게 B에게 옳은 선택이라는 건 확신하기 때문에 그저 그 시간이 지나가길 옆에서 바라보는 중이야. 알지? 우린 네버 다이! 밝은 햇살처럼 우리의 미래는 늘 눈부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