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역사
여태껏 작업을 해오면서 가장 숨기고 싶고, 부정하고 싶은 작업에 대해 얘기를 해볼까 한다.
지난 첫 공모에서 입선 결과를 받고 난 후, 멘털이 터질 만큼 터진 나는 다음 작업을 준비하기로 한다. "이번엔 꼭 대상을 받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뭘 만들면 좋을까 고민을 시작했고, '이번엔 여자를 만들어보자'라는 생각과 동시에 작업을 시작한다.
작업 첫날부터 고생을 했는데, 1t (1mm) 철판으로 작업을 해야 하는데, 2.6t (2.6mm) 철판을 사버렸다. 두 배 이상 두꺼우니 무게도 그만큼 늘어났고, 가격도 비싸지고, 자르기도 힘들어졌다. 내가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 봐도 이유를 모르겠다. 술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주문했나 싶다.
아무튼 굉장히 개인적인 취향의 몸매를 가진, 아줌마를 만들게 된다. 이걸 왜 만들었냐 묻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는데, '철은 결국에 녹슬어 삭아 없어지는 것이니, 아무리 욕심을 부리고 사치를 하며 꾸며보아도 철보다 먼저 삭아 없어져버릴 인간인데 무슨 의미가 있냐' 이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실물 심사날, 눈이 미친 듯이 내리고 있고, 작년처럼 임 형이랑 덜덜 떨면서 공모전 현장으로 가게 되었고, 나란히 특선을 받고 돌아오게 된다. 누군가는 "작년엔 입선이고 올 해는 특선이니 성장한 거 아니냐"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성장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발전이 없었길래 이럴까'라는 생각만 들었다.
아무튼 이 번 공모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가 맞는 말 같다. 작업을 하다 보니 '물성에 대한 이해도가 심각할 수준으로 낮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물성에 대해 간단하게 말해보자면, 내가 사용하는 '재료의 성질'을 물성이라고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랑 이 재료가 어울리는가, 아니면 어떻게 사용해야 재료의 특징을 잘 살리면서 어울리게 만들 수 있는가'를 연구해야 하는데, 난 그냥 시간, 돈, 재료만 날려먹으며, 형태만 만들어 내는 것에 집착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다음 공모를 준비하기로 하면서 2014년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