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업
두 번의 공모전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2015년엔 좀 쉬면서 뭘 만들지 고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박 형이 해준 얘기가 있다. "물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라, 네가 하는 추상적인 물성이 아닌, 직접적인 것을 찾아봐라"
나는 '철이 가지는 의미를 이렇게 저렇게 꾸며내서 작업에 부여한다.'와 같은 추상적인 것만 생각을 했다. 근데 잘 살펴보면 추상적인 의미를 부여한 작업들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고, 더 좋은 작업을 하려면 이 재료가 가지고 있는 성질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철 그 자체의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단단하고, 날카롭고, 두꺼움이 느껴진다. 기법으로 본다면 이걸 용접을 이용하여 작업을 해야 하는데, 용접의 큰 장점 중 하나가 그 무게가 얼마나 나가든 간에, 모서리와 모서리끼리의 결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리함과 둔탁함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주로 조각가들이 사용하는 흙이나 나무, 석고, 돌, FRP 등은 일정한 각도 이상으로 뾰족하게 가공하거나 일정 힘을 받게 되면 깨지고 파손되는 경우가 많지만, 철은 용접만 신경 써준다면 망가질 일이 없다.
그 당시에 내가 한창 물고기에 빠져있었는데, 무슨 알고리즘을 타고 보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덩치가 큰 해외 물고기들을 보았고, 마침 그 시기에 대형 수족관에 일을 하러 갔다가, 구경하고 가라길래 2미터가 넘는 물고기들을 한참 보다 온 적이 있었다.
이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음에 할 작업은 정해지게 되었다. '대형 물고기의 단단한 비늘과 뾰족하고 각이 진 얼굴의 돌기와, 물살에 따라 흔들리는 자연스러운 지느러미를 표현하기 가장 좋은 재료는 철이다.'라는 생각에 닿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