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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랑 Oct 16. 2023

프랑스 치유 일기-퐁텐블로 Château de Font

아이들 방학 겸 파리를 벗어나 외곽으로 나들이를 다녀오기로 하였다. 중세 시대 상가 지역으로 유명한 프로뱅 Provins, 아름다운 성과 호수로 유명한 샹티이 성 Château de Chantilly 그리고 퐁텐블로 Château de Fontainebleau가 후보로 올랐다. 모두 파리에서 2시간 내로 갈 수 있는 근교며, 아름다운 성과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곳이다. 고민 끝에 그나마 가까운 퐁텐블로로 당일치기 여행길에 올랐다.


처음 가본 리옹역은 베르사유궁에 가기 위해 갔던 몽파르나스역보다 더 예쁘고 환한 분위기라 정감이 갔다. 기차를 기다리며 역사 내 1901년에 문을 연 고급 레스토랑[Le Train Bleu]의 화려한 내부도 한번 둘러보고, 모네가 그린 [생 자르역, 기차의 도착]의 생동감 넘치는 그림을 떠올려 보기도 하였다.

퐁텐블로를 가는 길이 여러 개가 있어 전광판에 명시된 기차 시간, 종착역, 플랫폼 위치를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40분 정도 기차 밖 풍경을 감상하고 퐁텐블로 아봉역에서 내렸다. 아봉역에서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더 가니 퐁텐블로 성으로 향하는 Jardin de Diane 정원이 나왔다.


12세기부터 퐁텐블로 숲은 왕실의 사냥터로 이용됐고, 16세기에 프랑수아 1세가 사냥을 하며 휴양을 위해 머무는 숙소로 왕족과 귀족을 위한 궁전을 세웠다. 그리고 19세기에 나폴레옹 1세가 이 궁전을 복구하고 애용하였다고 한다. 궁전과 정원은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50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지금까지 휘황찬란한 아름다움과 장엄함을 뽐내는 이 예술적 건축물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동력과 혈세가 투입됐을까. 오로지 그 시대 소수의 특권층과 권력층의 향락을 위해 지어진 이 엄청나고 화려한 건물이 흐려진 하늘 아래 서글프게 보인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으리라.


호수를 가르며 다가오는 우아한 백조 무리가 신기하고 아름다워 한참을 쳐다봤다. 백조도 자신을 관찰하는 인간 무리가 낯설지 않은지 아무 거리낌 없이 다가왔다. 이렇게 탁 트인 수려한 자연의 풍광을 배경으로 유유히 떠다니는 백조를 보고 있으니 평온함이 느껴졌다. 한겨울에 와도 이렇게 아름다운 곳인데 따뜻한 계절에 왔으면 푸릇푸릇하고 풍성한 나무와 색색의 꽃으로 치장된 정원이 한결 더 예뻤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런 멋진 곳에서 원할 때마다 산책을 즐겼던 왕족들은 과연 행복했을까.


퐁텐블로 궁전은 퐁텐블로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렇게 숲을 가로질러 운하가 흐른다. 이 들쑥날쑥 빽빽하게 겹쳐 있는 나무들 사이로 올곧게 뻗어있는 운하와 잔디 융단 그리고 구름 덮인 하늘이 신비로움을 자아내며 오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칼바람도 불고 너무 추워서 오랫동안 정원을 거닐 수가 없어 아쉬웠다. 얼음장 같은 바람을 오래 맞으니 따끈한 커피가 당겨 마을로 나왔다. 아기자기한 좁은 골목이 예뻐 사진에 담았다.

프랑스 겨울은 해가 빨리 진다. 가을만 해도 저녁 8시 넘어서까지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어 하루가 길게 느껴졌는데, 겨울은 거의 흐리고 해도 5시쯤 빨리 져 하루가 엄청 짧게 느껴진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파리로 가는 기차를 탔다.


그런데 엄청난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차가 중간쯤 이르렀을 때 별안간 뜬금없이 멈춰 서는 게 아닌가. 영문도 모른 채 우리는 기차에 갇혀 기다려야만 했다. 사고가 있었으니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은 나왔지만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불빛 한 점 없는 시골 기찻길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흐르고 나니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무언가를 수색하고 있는 게 보였다. 알고 보니 한 사람이 기차에 뛰어드는 비극적인 사고가 있었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 기차가 멈춰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여러 생리적인 욕구와 피로함을 누르고, 칭얼대는 아이들을 달래며 감옥으로 변한 기차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을 견뎌야 했다. 3시간가량 지나고 나서야 여러 소방대원의 에스코트와 그들이 비추는 손전등 빛을 의지하며 암흑으로 덮인 울퉁불퉁한 자갈밭 기찻길을 뒤뚱뒤뚱 걸어서 다른 기차로 옮겨 탈 수 있었다.

이제 파리로 가는구나 갈아탄 기차에서 안심하던 차에 기차는 5분 정도 더 가더니 한 역에 또다시 멈추었다. 사고 난 현장에서 다음 역까지 안전하게 가기 위한 것이었고, 여기서부터 다시 파리 리옹역까지 가는 기차를 또 기약 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기차 칸마다 지시받고 차례대로 내렸던 5분 전 상황과 다르게 이곳에서는 수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우르르 건너편 플랫폼으로 이동하였다. 아이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손을 꽉 붙들고선 청명한 시골의 밤공기를 마실 여유도 없이 초조히 걸었다. 정말 처음 겪어보는 생각지도 못한 일에 우리는 난감했고 허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같으면 기차 승무원들이 연신 사과하며 사고 수습 과정을 계속 안내해 주고 신속한 조치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런 문화에 익숙한 우리는 어떤 상황인지 자세히 알려주지도 않고 무작정 기다리라는 대응에 짜증이 치솟았다. 누군가가 죽어 나간 끔찍한 일이 벌어졌음에도 당장 우리가 손해 보고 지치니 망자에 대한 애도도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졌다.

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체념한 듯 그 3~4시간의 지루한 기다림을 묵묵히 버티며 잠잠히 있는 것을 보았다. 주말 저녁 시간대라 중요한 약속이 있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을 텐데 누구 하나 나서서 빠른 대처를 요구하며 소리를 내거나 화를 내는 사람이 없었다.


이미 한계를 넘어 힘들어하던 큰아이가 불평을 표현했다. "엄마, 그 사람 죽기를 잘했어. 그 사람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저녁도 못 먹고 갇혀있잖아." 초반에는 정말 사람이 죽었냐며 걱정 가득한 눈으로 묻던 아이가 자기만큼 지쳐있는 어른들을 향해 아무 생각 없이 쏟아낸 짜증 섞인 푸념이 내 뒤통수를 후려치는 듯했다.

그제야 ‘오늘 밤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이 내 의식 깊이 스며들어 명확히 새겨졌다. 아무리 나와 상관없고 관계없는 사람일지라도 내가 타고 있던 기차에 사람이 치여 죽었다는 사실이 나의 어떤 감각을 늦게나마 건드린 것이다. 이 어쩔 수 없었던 예상치 못한 사고를 과연 그 누구의 탓으로 돌리겠는가. 내가 화장실을 가고 싶어 미치겠고, 목마름과 배고픔에 죽을 거 같고,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내 아이들이 고통스러워한다고 나는 자꾸 이 모든 상황을 분노의 시선으로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려 했다.


자정이 돼서야 겨우 집에 도착해 아이들을 씻기고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이 기차 사고를 나는 아직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그런 사고 때문에 불편함을 겪은 것은 운이 없었고, 그나마 우리 가족이 모두 무사히 집에 도착했으니 다행이었다고 결론짓기에는 막연한 찜찜함이 있으니 말이다.


그날, 내가 타고 가던 기차에 부딪혀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나는 사람의 죽음보다 당장 내 앞에 놓인 불편함에, 기차 승무원이나 소방대원의 느린 조처에 화가 났다. 이런 나의 무감각한 인간성을 마주했을 때 당혹감과 수치감을 느꼈다. 파리 리옹역에 겨우겨우 도착해서는 지하철이 끊기기 전에 빨리 집에 가야 한다는 일념 아래 그러한 복잡한 감정은 어느새 뒷전이 되고 말았다. 고등하게 사고하는 고차원적인 인간이고 싶어 하면서도 내 생존이 위협당할 때 가차 없이 튀어나오는 동물적인 공격성과 이기심, 그 양극단을 오가던 하루였다. 


사실 내 무의식은 당혹감과 수치감을 느끼는 걸로 면죄부를 주어 이 기억을 빨리 지워 버리고 싶었던 거 같다. 그래야 나와 세상을 속이며 아무 일 없었던 거처럼 또 살아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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