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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랑 Oct 16. 2023

프랑스 치유 일기-자의식 과잉

남들 앞에서 자기 자신을 과도하게 의식하며 지나치게 검열할 때 쓰이는 말 자의식 과잉.

프랑스 안식년 전에 나는 명백히 자의식 과잉 상태였다. 지금도 자의식이 높은 편에 속하지만 적어도 ‘내가 지금 많이 의식하고 있구나.’ 내 상태를 인식할 수 있게 됐다. 때로는 ‘왜 내가 지금 이 정도로 자의식 과잉 상태가 됐지?’라고 자문하며 ‘아, 내가 지금 저 사람한테는 인정받고 싶구나, 내가 이 사람한테는 지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구나.’ ‘왜 이런저런 사람한테 이런저런 기분이 들지?’라며 파고드는 훈련이 됐다. 그렇게 가다 보면 어김없이 어린 시절이 나온다.


내 경우 자의식이 높은 이유는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족해 보이는 나 자신이 싫고 스스로 인정할 수 없으니 남이 세운 기준에 부합하려 하고 남의 눈에 드는 인정을 바랐다. 아니면 내가 추구하는 완벽에 가까운 기준에 나를 맞추려고 끊임없이 병적으로 나를 몰아세웠다.(맞다, 이건 신제척 질병에 속하는 의학적 문제다.) 그러기에 시선이 밖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난 웃지 않으면 도도해 보이고 새침한 인상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 새로운 만남 앞에 늘 긴장하는 편이다. 웃음이 예쁘거나 자연스럽지도 않다. 웃으면 얼굴 근육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입술 꼬리는 부르르 떨리며 삐죽 올라가고, 이마와 미간 주름은 퍼그처럼 겹겹이 접히는 데다 눈 주변 근육은 오히려 경직돼 퀭한 펭귄 눈 이 돼 버린다. 한마디로 웃으면 더 못생겨진다. 어린 시절 웃을 일이 별로 없어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유전의 힘인 건지 부자연스러운 미소 덕에 내 얼굴은 웃는 상이 아닌 뾰로통한 상이다. 그래서 웃으면 더 예뻐지고 미소가 매력적인 사람한테 동경과 질투심을 동시에 느낀다.


아이들 학교에서 학부모 모임이 있었다. 반대표를 맡아달라는 첫째 아이의 성화에 학부모회까지 속하게 됐다. 임원진까지 총 20명의 학부모가 학교 강당에 모여 첫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 전 첫 만남이라 돌아가며 자기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의식이 높고 새로운 만남에 좋은 인상을 준 기억이 별로 없는 나는 단체에서 진행하는 자기소개가 유독 부담스럽다. (특히, 한국에서는 더 그렇다. 모두가 서로를 주시하며 지나치게 예의를 갖춰야 하고, 층층이 눈치껏 배려를 실행해야 하는 경직된 분위기는 더 힘들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분위기가 사람을 판단할 때 즉각적인 기준으로 사용된다는 사실 또한 알기에 학부모 모임에 입고 갈 옷도 무심코 툭 걸친 듯 보이면서도 세련미와 고상미를 갖춘 패션으로 신경 썼다. 깔끔한 퍼프소매의 새하얀 티셔츠에 은은히 빛나는 큐빅 펜던트 은 목걸이, 귓불에 착 달라붙는 데이지꽃 모양의 작은 은귀걸이를 더한 후 분홍색 와이드 면바지로 코디해 과하진 않지만 적당히 성의 있는 옷차림을 연출했다. 

자기소개는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불시에 찾아왔다. 


'몇 학년, 몇 반 누구의 엄마 누구입니다'라고 소개해달라는 지침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못 할 정도로 갑자기 블랙아웃이 돼버렸다. 순간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당시에는 왜 분위기가 어색해졌는지도 모르고 멍했다. 내 순서가 지나가고 다음 사람이 소개하는데 그때 알았다. ‘아, 내가 내 이름과 아이의 이름은 말 안 하고, 몇 학년 몇 반의 엄마라고만 말했구나.’ 아이의 학년과 반만 생뚱맞게 말해놓고 후다닥 제 자리에 앉아버린 것이다. 나를 제외한 내 앞 뒷사람 모두 똑같은 형식의 소개를 했는데 나 혼자 자기소개에서 제일 중요한 정보는 쏙 빼버리고 엉뚱한 소개를 했다. 뒤늦게 창피함과 수치심이 몰려왔다. 이게 외우지도 못할 만큼 긴 호흡의 대본도 아니고 내 이름과 아이의 이름을 말하는 짧은 소개 한 마디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이게 뭐라고, 여기 있는 사람들이 내 생계를 뒤흔드는 임원진도 아니고, 국제회의도 아니고 왜 내가 이런 작은 모임에서조차 긴장해서 바보 같은 자기소개를 했는지 나 자신이 너무나 한심스러웠다. 자기소개 이후 한 시간가량 여러 안건으로 토론이 진행됐지만 머릿속은 온통 자책과 자조로 가득 차 회의에 집중할 수 없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고 이런 자기소개는 별거 아닌 양 자신 있게 말하고 싶었다. 내가 긴장하고 떨고 있다는 걸 들키기 싫었다.


예전에는 이런 상황을 겪으면 내가 얼마나 찌질한지 비아냥거리며 스스로를 혼낸 후 잊어버리려고만 했다. 그 사건과 함께 온갖 종류의 자기 비하를 전부 다 내면 깊은 곳에 파묻어버렸다. 그래야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 수 있으니까. 지금은 나 자신을 스스로 나무라다가도 ‘왜 그랬을까?’, ‘왜 그 순간에 블랙아웃 돼버린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통해 찾아간다. 그러다 보면 내면 깊숙한 곳에서 초라하게 웅크리고 있는 어린 나와 마주한다. 그 아이의 눈망울에는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소리 지르며 다그치던 무서운 엄마의 얼굴이 비친다. “딸이 참 예쁘네,” 라며 칭찬하는 처음 보는 낯선 엄마의 지인들 앞에 나의 외모를 비하하고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예쁘긴 뭐가 예뻐,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애가 야무지긴 해.”, “쟤는 애가 왜 이렇게 단순한지 모르겠어.”


초등학교 시절 매년 4, 5월쯤 이사 간 낯선 동네와 학교, 물선 학급 앞에 홀로 나가 수십 개의 눈망울이 호기심 반, 거부감 반으로 쏘아대는 시선에 압도돼 널뛰기하던 심장 박동과 가빠진 호흡이 느껴진다. 그런 위화감이 드는 분위기 속에서 주눅 든 채 겨우 읊조렸던 자기소개가 떠오른다.


모든 자의식 과잉에는 이유가 있다.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는 오프라 윈프리와 정신의학 및 행동과학 교수인 브루스 페리 교수가 다양한 임상 사례를 토대로 개인의 트라우마를 뇌 과학적인 측면에서 세세히 이해하고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대담 형식으로 담은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내 뇌가 자의식 과잉인 순간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의 뇌는 서로 연결된 네 개의 영역인 피질, 변연계, 간뇌, 뇌간으로 나뉜다. 시간, 청각, 촉각, 후각 등 우리에게 입력되는 모든 감각은 뇌의 제일 아랫부분인 상대적으로 단순한 영역의 뇌간으로 먼저 간다. 뇌간은 체온, 호흡, 심박수 등을 통제하고 조절한다. 그런 다음 위로 갈수록 구조와 기능이 더 복잡해지는 간뇌와 변연계를 거쳐  말하기, 언어, 추상적 인지, 시간, 가치관, 신념같이 인간의 특유한 기능을 매개하는 피질에 도달한다. 그런데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피질의 작동이 멈춘다. 특히 어떤 것이 과거의 일이고 현재의 일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현란하게 돌아가는 80개의 눈동자가 오로지 나에게만 꽂혀 내가 입은 옷, 말투 모든 것이 스캔당한 후 촌스럽다거나 잘난척한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새로운 집단에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때 느꼈던 몸의 반응들, 얼굴이 새빨개지고 심장이 요동치며 식은땀이 나던 순간들. 내 존재가 부정당했던 기억이 현재의 어른이 된 후에도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자기소개에 새로운 무리와의 만남 앞에 영향을 준 것이다. 피질의 기능이 닫히니 위축되고 혼란스러운 초등학생이 더 이상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의 뇌는 그때처럼 뇌간만 활성화돼 몸이 먼저 반응하여 블랙아웃 돼버린 거다.


어린 시절의 나를 붙들고 말했다.

“넌 그때 정말 어렸어. 그렇게 어린 네가 매년 새로운 환경으로 이사 다니고 적응하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니? 친한 친구들과 졸지에 헤어져 새로운 교실에 들어가 거부당했던 일은 결코 네 잘못이 아니야, 네 존재가 무가치해서 당한 일이 아니었어.” 과거의 내가 참아왔던 눈물을 아이처럼 터뜨리며 꺼이꺼이 울었다.

그리고 현재의 나에게도 말했다.

“떨지 않고 매력적인 웃음을 적재적소에 지으며 별거 아닌 양 시크하게 자기소개를 못 했어도 괜찮아. 새로운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고 완벽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도 충분히 이해해. 벌벌 떨며 자기소개를 했어도 엉뚱한 사람으로 비쳤어도 그게 절대 네 존재를 규정하지 않아. 넌 가치 있는 존재야.”어린 시절 간절히 듣고 싶었지만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었다.


파리에 살 때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는지 일일이 검열을 거치지 않으니 서울에 살 때보다는 마음껏 나 자체를 드러내며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었다. 서울에 살 때는 애 둘을 데리고 다니며 앞뒤가 깊게 파진 상의나 짧은 하의를 입을 수 없었다. 괜한 손가락질이 받기 싫어 모유 수유로 납작해진 가슴과 두툼한 종아리를 가진 아줌마란 정체성으로 스스로를 검열했다. 내 나이 또래 엄마 중 그런 종류의 옷을 입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찾을 수 없었다. 대부분 발목까지 내려와 몸매를 감추는 프리사이즈 롱원피스나 편한 일자 스판 청바지 또는 츄리닝을 즐겨 입었다.


파리에서는 처녀든 엄마든 할머니든 나이에 고정된 전형화된 옷차림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덕분에 나도 그날그날 날씨와 기분에 따라 옷을 골라 입었다. 찌는 더운 날에는 배꼽이 보일랑 말랑한 나시티 하나에 팬티가 보일랑 말랑 하는 핫팬츠를 입었고, 등이 훤히 드러난 옷도 과감히 시도할 수 있었다. 실제로 맨몸에 나시티 하나만 달랑 걸치고 다니는 파리지엔느도 많았다. 브라 없이 외출을 감행한다는 걸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소심한 대한민국의 아줌마에게 그런 모습은 가위 충격 그 이상이었다. 그 영향을 받아 나도 몸매가 어떻든, 나이가 어떻든 뭐라 하는 이 하나 없으니 마음 가는 대로 입고 다녔고 거기에서 오는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파리에 있을 때의 나와 서울에 있을 때의 내가 왜 이렇게 다를까?’란 질문을 시작으로 ‘내가 나를 가치 없는 존재로 여겼구나, 다른 사람을 너무 과하게 신경 쓰느라 나의 내면을 돌보지 않았구나.’라는 생각까지 미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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