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민들이 만개한 벚꽃을 구경하기 위해 여의도에 간다면 파리지앵들은 벚꽃 놀이를 즐기러 쏘 공원Parc de Sceaux을 찾는다. 16구에 위치한 집에서 출발하면 6호선과 RER B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쏘 공원에서 만난 벚꽃의 향연은 그만한 값어치를 충분히 하고도 남았다. 서울에서처럼 파리에도 벚꽃이 활짝 펴있는 시기가 아주 짧기에 벚꽃이 절정을 이룬 지난 4월 학기 중 방학 때 쏘 공원에 다녀왔다.
쏘 공원 입구에 들어서니 멋스럽게 다듬어져 정렬된 나무들과 더불어 널찍한 운하가 절경을 이루었다. 베르사유 정원을 디자인한 앙드레 르 노트르André Le Nôtre라는 프랑스식 정원을 처음 설계한 사람이 이 쏘 공원의 정원도 디자인했다고 한다.
결혼 5주년 기념으로 생애 처음 프랑스 여행을 다녀왔을 때 제일 좋았던 장소가 어디였냐고 물으면 단연 베르사유궁전과 정원을 꼽았다. 특히 베르사유 정원에서 오후 한나절을 보내며 기하학적 모양의 정원수, 평화로운 호수와 그 위에 떠다니는 각종 새와 노 젓는 배, 자수 화단과 토피어리, 화려한 조각 분수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고풍스러운 궁전과의 완벽한 조화와 아름다움에 매료돼 한국에 오고 나서도 한동안 프랑스 앓이를 했더랬다.
하지만 입장료도 만만치 않고 가는 길도 복잡하여 날씨가 따뜻해지면 한번 가야지 하고는 못 가고 있었던 찰나에 베르사유 정원을 대체할 쏘 공원에 가게 된 것이다. 심지어 쏘 공원은 거리도 더 가깝고, 입장료도 없고, 관광객들로 붐비지도 않으니 훨씬 더 좋았다. 우리는 주먹밥과 과일만 달랑 싸왔는데 더 많은 간식을 가져오지 않은 걸 후회했다.
햄버거, 칩스, 빵, 치즈, 피자, 와인, 맥주, 중국 음식 등 다양한 먹거리와 주전부리를 듬뿍 가져와 여유롭게 피크닉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드넓은 잔디밭을 보며 산책 나온 강아지들처럼 신이 났다. 잔디를 보자마자 바로 축구화로 갈아 신고 집에서부터 메고 온 가방에서 공을 꺼내 풀밭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이런 게 참 좋다. 서울은 잔디를 보호하기 위해 사방에 철조망을 쳐 놔서 소풍 할 장소가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에 있을 때 잔디가 그나마 많은 일산 호수공원과 상암 월드컵공원을 자주 갔었는데 주말마다 몰리는 인파로 운이 좋아야 배드민턴 정도 칠 수 있는 공간만 겨우 확보할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처럼 남에게 피해 안 주며 자유로이 축구할 수 있는 넓은 잔디 공간을 서울의 공원에서는 찾기 어렵다.
프랑스 공원에서 피크닉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건 대부분의 프랑스인은 정말 남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한국 공원에서는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함께 피크닉을 왔음에도 불구하고 시선이 외부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으니 서로를 의식하며 견제하는 분위기 또한 존재한다. 물론 그 관심에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배려하는 우리네 문화도 어느 정도 있을 게다.
반면에 이곳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과 자신들의 그룹에만 집중한다. 자기네가 싸 온 음식을 열심히 먹고, 함께 온 사람들과 열심히 수다를 떤다. 아니면 책을 읽거나, 태닝을 하며 명상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보드게임을 하거나, 진한 스킨십을 하며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타인의 시선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취향껏 하고 싶은 대로 여유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와 내 그룹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고 곁눈으로 쳐다보거나 관찰하는 사람은 정말 나 하나뿐인 거 같았다. 이런 사실을 몇 번 확인하고 나니 어느새 나도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걸 느낀다.
한국에 있을 때는 우리를 주목하는 불편한 시선들을 참 많이 경험했다. 겉모습만으로 선입견을 품고 판단하고 싶어 안달인 눈초리를 심심치 않게 받기도 했다. 짝지의 양팔과 두 종아리와 발목에는 배를 타던 선원들에게서 유래된 올드스쿨 장르의 크고 작은 타투가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어깨에는 헐리우드 영화배우 드웨인존슨처럼 폴리네시안 타투가 있다. 결정적으로 짝지의 왼팔 안쪽에는 ‘MY ONE AND ONLY’라는 문구와 함께 내 얼굴이 왕따시만하게 아로새겨져 있다. 이런 독특한 짝지의 외모가 한몫했겠지만, 어딜 가나 우리를 대놓고 쳐다보는 사람들은 도처에 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남의 눈치를 살피거나 우리를 어떤 시선으로 볼까 의식하느라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온 집중을 쏟으며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짝지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소위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에 다녔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정관념 안에 짝지의 직업을 꿰맞추며 으레 짐작했다. 같은 어린이집의 어떤 학부모는 짝지의 외모만 보고 자신의 아이를 우리 아이와 어울려 놀게 하지 않았다. (보수적인 기업이라 주중 회사에 갈 때는 한여름에도 긴 와이셔츠 안에 팔토시를 하고 다녔지만, 주말에는 자유롭게 다녔다.)
프랑스에서 우리를 대놓고 쳐다보는 대부분 사람은 우리에게 먼저 다가와 이야기한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물어보고 아이들이 귀엽다고 칭찬하거나 짝지의 스타일을 추어주거나 말을 건넨다. 어깨까지 내려와 찰랑이는 곱슬머리, 까맣게 태닝한 근육질의 몸과 아시안치고 제법 큰 키, 각종 타투로 독특한 외모를 자랑하는 짝지을 보고 한국에서처럼 불쾌한 시선을 훅 던지고 휙 사라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프랑스에는 워낙 다양한 사람들과 스타일이 존재하기도 하고, 파리지앵들 자체가 워낙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다 보니 우리도 점점 파리지앵화가 돼갔다. 모두가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있는 걸 아니 우리도 한국에서처럼 남을 의식하는데 과한 에너지를 쏟지 않게 되고 저절로 순간을 즐기며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자의식이 높은 나에게만 해당할 수 있는 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하는 얘기다.)
쏘 공원의 하이라이트인 벚꽃을 보러 운하를 따라 광활한 공원을 10분 정도 걸어갔다. 먹음직스럽게 탐스러운 분홍색 알사탕이 주렁주렁 가지에 매달려 있는 듯한 만발한 벚꽃 나무들이 즐비해 있었다.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나 봄 직한 장면, 지천으로 깔린 핑크빛 벚꽃 나무에서 눈보라처럼 흩날리는 벚꽃 잎들이 살랑이는 봄바람에 실려 가는 곳마다 향기를 남기는 로맨틱하고 판타지스러운 광경이 실제로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듯하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날은 중국인 커뮤니티에서 대대적으로 벚꽃 놀이 행사를 치르고 있었다. 중국 전통 복장을 한 사람들이 다트 비스름한 전통 게임도 하고, 물품도 판매하며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파리에 사는 모든 중국인이 다 이곳에 모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상당한 인파가 이미 상당한 수의 모든 벚꽃 나무를 독차지하고 있어 우린 아쉽게도 그곳에 오래 있지 못했다. 하지만 함초롬한 생김새의 프랑스 벚꽃도 어여쁜 한국 벚꽃 못지않게 달콤한 꽃내음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던 시간이었다.
쏘 공원은 한국에서 가족이나 지인들이 오면 꼭 데리고 함께 가고 싶은 수많은 장소 중 하나다. 그만큼 관광객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아주 아름답고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쏘 공원에서 바라보는 노을 지는 풍경도 일품이라는데 우리는 먹을 게 다 떨어져 아쉽게도 저녁이 되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내년 벚꽃이 한창 피었을 때는 우리도 먹을거리를 한 아름 싸 와 벚꽃 나무 하나를 차지하고선 온종일 피크닉을 하며 쏘 공원을 만끽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