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위로와 희망의 도전기

드라마 나빌레라 리뷰

by 투스타우

나이 일흔에 발레를 시작한 덕출과 꿈 앞에서 방황하는 젊은 발레리노 채록의 성장 이야기. 이것이 드라마 <나빌레라>의 시놉시스이다. 이 한 줄의 시놉시스에서 느껴지듯이, 이 작품은 누구나 예상 가능한 스토리와 감동으로 전혀 새로울 것 없는 드라마였다. 하지만 그 뻔한 스토리와 감동이 주는 무게감은 예상을 훨씬 웃돈다. 결국 드라마를 시청하는 동안 당신도 모르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된다.




발레에 도전하는 덕출 할아버지

<나빌레라>는 분명 식상하고 뻔한 스토리의 작품이었지만, 그래도 남다른 포인트가 하나 있다. 바로 발레에 도전하는 덕출 할아버지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가 커다란 울림을 주는 것은 놓쳐버린 꿈에 대한 우리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상기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면서 이루지 못했던, 절대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꿈들을 덕출은 주변의 반대와 육체적 한계 속에서도 끝까지 도전해 나간다. 이러한 부분이 우리의 못다 이룬 꿈들에 대한 대리 만족과 응원으로 바뀌어가면서 커다란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이는 기성세대에게는 '못다 이룬 꿈들'에 대한 위로로, 젊은이들에게는 '아직 늦지 않았어'라는 희망의 메시지로 다가오게 된다.

20210422115105.png 덕출 할아버지의 발레 도전기는 놓쳐 버린 꿈에 대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상기시켜 준다.
20210422162224.png 이는 기성세대들에게는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위로로......
20210422162259.png 젊은이들에게는 '아직 늦지 않았다'라는 희망의 메시지로 다가온다.



발레에 도전하는 박인환 할아버지

더 재미있는 건 바로 덕출을 연기하는 박인환 자체로도 이미 엄청난 도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캐릭터나 철딱서니 없는 할아버지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던 박인환은, 자상하면서도 희생적인 무엇보다 꿈을 위해 도전하는 덕출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 낸다. 여기에 32년 만에 미니시리즈 주연이라는 부담감과 발레라는 쉽지 않은 몸동작까지 연기하면서 말 그대로 황혼기 최대이자 최고의 연기 도전을 감행한다. 우리가 덕출에게 몰입하면서 응원하게 되는 또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210422120116.png 박인환은 32년 만에 미니시리즈 주연으로 황혼기 최고이자 최대의 연기 도전을 감행한다.

연륜과 도전으로 만들어낸 그의 연기는 말 그대로 덕출 그 자체였다. 덕출의 열정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그의 표정과 몸짓은 대단하다 못해 감탄까지 하게 된다. 알츠하이머 연기에서는 또 다른 얼굴과 표정까지 보여주면서, 그의 엄청난 연기 내공을 느끼게 해 준다. 개인적으로 이번 연기 도전에 경의를 표하며, 단연코 2021년 최고의 연기라고 말하고 싶다. (안타깝게도 그 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이런 박인환의 연기를 기억하지 못하였다.)

20210422121158.png 7화에서 보여준 어린아이처럼 흐느끼는 눈물 연기는... 인생의 황혼기에서 보여줄 수 있는 진정한 인생 연기이지 않을까....




과감했던 각색, 그럼에도...

원작 <나빌레라>는 덕출의 발레 이야기와 그 주변의 인물들을 다양한 각도로 그려내면서 위로와 희망을 주는 인생 웹툰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드라마 <나빌레라>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는 걷어내고, 오직 덕출의 발레 도전과 채록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 워낙 자극이 적었던 드라마이기 때문에, 그나마 극적인 재미가 있는 발레와 알츠하이머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룬 것은 나름 현명한 선택처럼 보인다.

20210422114955.png 원작 <나빌레라>에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는 걷어내고, 오직 덕출의 발레 도전과 채록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이러한 각색에도 불구하고 극적인 재미에서는 아쉬운 부분을 보인다. 누구나 예상 가능한 스토리이기에 좀 더 드라마틱 한 요소들이 필요해 보였는데, 진부한 스토리를 발레와 알츠하이머 이야기로만 꾸려나가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이는 작품이 전체적으로 좋은 리듬을 타지 못하고, 루즈해지는 흐름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후반부 하이라이트를 그저 알츠하이머 이야기로만 꾸려나간 것이 상당히 아쉬웠다. 가족 드라마이기 때문에 극의 분위기를 밝게 환기시킬 캐릭터의 부제도 아쉬운 부분이다. 결과적으로 부족했던 극적인 재미는 아쉬운 시청률로 고스란히 나타났고, 원작 팬들의 비난을 받으며 반쪽짜리 작품이라는 비판도 받고 만다.

20210422125453.png 과감한 각색을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그리 극적이지도, 그렇다고 놀라운 완성도도 보여주지 못했다.
20210427112600.png 무엇보다 후반부 하이라이트를 그저 알츠하이머 이야기로만 꾸려진 것이 많이 아쉬웠다.



위로와 희망을 주는...

그럼에도 분명한 건 복수와 스릴러로 일관되었던 2021년 드라마들 사이에서 <나빌레라>는 유독 빛나 보였다는 것이다. 정말로 오랜만에 찾아온 위로와 희망을 주는 드라마였다. 물론 그렇다고 <눈이 부시게>나 <동백꽃 필 무렵>처럼 압도적인 재미와 완성도까지 보여주진 못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와 감동은 오히려 위의 두 작품들보다 명확하고 선명했다. 이러한 메시지와 감동은 역시 원작이 가지고 있는 극본의 힘과 이를 잘 표현한 배우들의 연기 덕분이다.

20210422115247.png 오락적인 재미와 디테일적인 완성도는 아쉬웠지만,
20210422120203.png 명확하고 선명한 메시지와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해 준다.




20210422144007.png 나빌레라 (2021. tvN)

<나빌레라>는 덕출의 발레 도전기를 뺀다면 뾰족한 노림수가 없는 그저 평범한 가족 드라마였다. 하지만 그 덕출의 도전기 만으로도 이 작품은 가족 드라마를 넘어 인생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된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덕출의 모습에서 잊고 있었던 우리들의 꿈을 상기시켜 주고,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로 하여금 내 사람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희미했던 삶의 의미를 디테일하게 그려주고, 각박한 사회에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제대로 된 인생 드라마를 선사한다. 그것이 가능했던 건 긴 세월을 꿋꿋이 살아온 덕출의 삶과 그의 마지막 도전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뜨거운 눈물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나빌레라>는 그저 시청률과 작품의 완성도 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20년대 좋은 드라마들을 리뷰합니다.

위 글은 블로그에 썼던 리뷰들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유려하고 완벽하다!